<판결요지>
근로자가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이 확정되어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원칙적으로 그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들 중 직업병 진단 확정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의미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2023.6.1. 선고 2018두60380 판결과 관련하여, 위 대법원 판례의 법리는 어디까지나 해당 근로자가 근무한 복수의 사업장들 모두가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만일 이러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사업장이 어느 하나로만 특정된다면, 이때는 당연히 해당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할 것이고,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만연히 마지막 사업장을 적용사업장으로 하여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
【서울행정법원 2024.8.21. 선고 2023구단73161 판결】
• 서울행정법원 판결
• 사 건 / 2023구단73161 평균임금정정불승인등처분취소
• 원 고 / A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24.07.10.
• 판결선고 / 2024.08.21.
<주 문>
1. 피고가 2022.5.31. 원고에 대하여 한 평균임금정정 불승인 및 보험급여차액 부지급처분을 각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 제1항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의 근무경력 및 세부 업무내역, 건강보험 수진내역은 다음과 같다.
1) 근무경력 <표 생략>
2) 세부 업무내역
가) 그라인딩 업무 : 그라인더 등을 사용하여 선박 블록 표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매끄럽게 해주는 업무
나) 신호수 업무 : 실내 조립공정에서 무전기, 호루라기를 이용하여 천장 크레인 등을 통해 자재 및 공정 도구들을 지정된 장소로 운반하는 과정에서의 신호업무
3) 건강보험 수진내역
- 2014.8.27. / 폐기능검사의 이상결과(R942) / B의원
나. 원고는 위와 같이 C 주식회사, 주식회사 D 등에서 약 37년 간 그라인딩, 신호수 등의 업무로 분진에 노출되어 ‘만성폐쇄성폐질환’(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고 한다)을 진단받았다면서, 피고 원처분기관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신청하였다. 이에 피고 원처분기관은 원고의 마지막 분진작업 사업장인 주식회사 D를 적용사업장으로 하여 평균임금을 산정한 후 이를 토대로 산출한 장해급여를 지급하였다. 이 과정에서 피고 원처분기관은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따로 전문기관의 역학조사를 거치지는 아니하였는바, 당시 적용사업장의 판단과 관련하여 피고가 2007.11.21. 제정한 「요양결정시 적용업무 관련 판단에 관한 처리지침(제2007-31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 생략>
다. 이후 원고는 적용사업장을 가장 장기간 근무한 C 주식회사로 하여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평균임금 정정 및 보험급여차액 청구를 하였으나, 피고 원처분기관은 2022.5.31. 원고에게 ‘이 사건 상병 발생과 가장 상당인과관계가 높은 사업장이 확인되지 아니하고 이에 따라 C 주식회사를 주된 사업장이라고 명확히 판단할 수 없으며 마지막으로 유해요인에 노출된 사업장인 주식회사 D가 적용사업장으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평균임금정정 불승인 및 보험급여차액 부지급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을 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 을 제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처분의 적법 여부
가. 관련 법리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5.1.20. 법률 제1304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은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의 보험급여 지급액을 평균임금을 적용하여 산정하도록 하면서(제52조 등), 그 평균임금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평균임금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5조제2호). 구 근로기준법(2014.3.24. 법률 제1252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제1항제6호는 평균임금을, 이를 산정하여야 할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개월 동안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구 근로기준법 시행령(2013.6.28. 대통령령 제2465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제1항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요양하기 위하여 휴업한 기간 등 일정한 기간과 그 기간 중에 지급된 임금을 평균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기간과 임금 총액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균임금 제도의 취지는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사실대로 반영함으로써 통상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하려는 것인 점, 업무상 질병의 발생과 같은 평균임금 산정사유는 근로관계 존속 당시 업무 수행 중 업무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근로자가 퇴직한 후 직업병 진단이 확정되어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의 산정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에는 근로자의 퇴직일 이후 평균임금 산정사유 발생일, 즉 진단 확정일까지의 기간은 평균임금 산정기간에서 제외하여야 한다. 만일 평균임금 산정기간에서 제외되는 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경우에는 그 제외되는 기간의 최초일인 퇴직일을 평균임금 산정사유 발생일로 보아 평균임금을 산정하고, 그렇게 산정된 금액에서 산재보험법 제36조제3항의 규정에 따라 증감을 거친 금액을 그 근로자의 보험급여 산정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으로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4.26. 선고 2005두2810 판결 참조). 한편 근로자가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이 확정되어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원칙적으로 그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들 중 직업병 진단 확정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3.6.1. 선고 2018두60380 판결 참조). 다만, 이는 해당 근로자가 근무한 복수의 사업장들 모두가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만일 이러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사업장이 어느 하나로만 특정된다면, 이때는 당연히 해당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할 것이며, 나아가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만연히 마지막 사업장을 적용사업장으로 하여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진폐와 같이 유해 요소에 장기간 노출되어 발병하고 잠복기가 있는 직업병의 경우 질병에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에서 퇴직한 후 비로소 질병을 진단 받는 근로자가 적지 않고, 그중 일부는 그 사이에 직업병과 관련이 없는 사업장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은 대체로 근로자가 장기간 근무하였던 곳이므로 그 임금수준이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적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단 시점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받은 임금을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하도록 한다면, 동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그 직업병 진단 직전에 근무한 사업장이 어디인지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사업장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업무상 재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어긋난다.
2)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의미하고(산재보험법 제5조제1호),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존재는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험급여의 지급요건이 된다(대법원 2021.9.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업무상 재해를 보상하는 제도는 제정 근로기준법에서 도입되어 산재보험법에 규정되기에 이르렀는데,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은 사용자가 사업장의 업무로 인하여 발생한 재해에 대하여 그 사업장에서 지급받은 평균임금을 기초로 보상하는 것이다. 산재보험법은 업무상 재해와 평균임금 산정 기준이 된 사업장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위와 같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내용과 연혁 등에 비추어 보면, 진폐 등 직업병에 대한 적절하고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을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3) 이렇게 해석하여도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보호에 미흡함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다. 근로자가 직업병 진단일 훨씬 전에 직업병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최종 사업장을 퇴직하였더라도 산재보험법 제36조제3항의 평균임금 증감 규정에 따라 그 퇴직일을 기준으로 산정한 평균임금에 동일 직종 근로자의 임금변동률을 직업병 진단일까지 적용하여 최종적인 평균임금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4) 평균임금 산정 시 특수하고 우연한 사정으로 인하여 평균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이 통상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적거나 많을 경우에는 이를 그대로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로 삼을 수 없으므로(대법원 1999.5.12. 선고 97다5015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근로자가 직업병의 원인이 된 유해 요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에 따라 업무 능력이 저하되고 그 결과 마지막 사업장에서의 임금수준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임금액은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가장 사실대로 반영하는 것은 그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들 중 최종 사업장에서 지급받은 임금액일 것이므로 이를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것이 평균임금에 따라 보험급여를 산정하도록 한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나. 구체적 판단
1)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관계 및 갑 제6호증의 기재로부터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적어도 원고가 주식회사 D에서 수행한 업무와 원고의 이 사건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피고는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주식회사 D가 원고가 근무한 마지막 사업장이라는 편면적인 이유만으로 이를 적용사업장으로 삼겠다는 입장 하에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을 면할 수 없다.
가) 원고가 C 주식회사를 퇴직한 이후에 수행하였던 신호수 업무 역시 분진 등 유해요소에 노출되는 작업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 중 주식회사 E, 주식회사 F, 주식회사 G, 주식회사 D에서 각 근무한 기간은 짧게는 9일, 길게는 27일(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원고가 주식회사 D에 소속된 기간은 공식적으로는 27일인데, 이 중 원고가 실제 근무한 날짜는 17일인 것으로 보인다)에 불과하여, 적어도 위 4곳의 사업장에서의 업무수행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상당한 기여를 곧바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나) 원고가 C 주식회사에서 수행한 그라인딩 업무는 금속 분진 등에 직접 노출되어 지근거리에서 분진을 흡입하게 되는 반면, 이와 비교하여 그 후로 원고가 수행한 신호수 업무는 비록 분진에 노출되는 것 자체는 그라인딩 업무와 동일하지만 주변에서 용접 및 그라인딩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발생하는 분진을 일정 거리를 두고서 간접적으로 흡입하게 되는 것이어서, 위 두 가지 업무 중에서는 그라인딩 업무가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보다 많은 원인을 제공하였을 개연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원고는 C 주식회사에서 위와 같이 분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그라인딩 업무를 수행한 기간은 약 34년 6개월에 이르고, 위 회사에서 퇴직한 후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2014.8.27. 폐기능검사의 이상결과가 나오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가장 직접적인 기여를 한 사업장은 C 주식회사라고 볼 여지가 많다. 이 사건 상병은 진폐증과 마찬가지로 분진 노출 후에 곧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특징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다) 피고 원처분기관은 이 사건 처분을 하기에 앞서,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문기관의 역학조사를 따로 거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 사건 상병과 상당인과관계가 가장 높은 사업장이 어디인지를 살피는 과정을 밟거나 이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도 아니한 채 이 사건 상병 발생에 주된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이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다고 쉽게 단정하고서 앞서 본 피고의 지침 내용에 의존하여 마지막으로 유해요인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인 주식회사 D를 적용사업장으로 인정하였는바, 이 사건 처분에 관하여 위와 같이 피고 원처분기관이 업무를 처리한 방식은 그 자체로 객관성과 합리성이 흠결되어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의 「요양결정시 적용업무 관련 판단에 관한 처리지침(제2007-31호)」 중 ‘재해자의 질병 발생 주된 사업장으로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마지막으로 유해요인에 폭로된 사업장을 적용사업장으로 한다’는 내용은, 전문기관의 심의 의뢰 등을 거친 뒤에도 여전히 주된 사업장이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을 경우에 보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전문기관의 심의 의뢰를 거치는 등의 노력도 제대로 기울이지 않은 채 행정편의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관련하여, 대법원 2023.6.1. 선고 2018두60380 판결의 판시 중 ‘근로자가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이 확정되어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원칙적으로 그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들 중 직업병 진단 확정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부분은, 해당 근로자가 근무한 복수의 사업장 모두가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으로, 만일 이러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사업장이 어느 하나로만 특정된다면 이때는 당연히 해당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가려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사업장별로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제대로 살피지도 아니한 채 탁상공론식으로 마지막 사업장을 적용사업장으로 하여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것을 대법원이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이해해서는 아니 된다.
라) 따라서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주식회사 D를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적용사업장으로 하여 원고의 평균임금을 산정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위법하므로 취소를 면할 수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