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근로자가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하였고 그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 내지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되며,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상황, 우울증의 발병과 자살행위의 시기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추어 그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2] 당시 회사의 지시에 의해 노조와해작업에 가담했던 간부급 근로자들은 망인 외에도 5명이 더 있었고 이들과 망인은 같은 처지였으므로, 망인이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감수하고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립감을 느꼈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분신 당일까지의 망인의 행적 및 언동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우울증의 극단적인 증세로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까지 도달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병적 이상상태에서 정상적인 인식능력 내지 행위선택능력을 잃어 자살에 이르렀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오히려 분신 당일의 경위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은 회식 자리에서 소외 회사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느껴 격분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도 이후 그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으려는 소외 회사의 처우가 부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살을 선택하였을 수 있다). 따라서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음을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 서울행정법원 제5부 2009.06.11. 선고 2008구합20482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09.05.12.
<주 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가 2008.2.22.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의 남편인 소외 ○○○은 199○.○.○. 주식회사 ○○○(이하, ‘소외 회사’라고 한다)에 입사하여 ○○반에서 근무하던 중 200○.○.○. 밤에 사무실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하여 같은 달 23. 17:27경 사망하였다.
나. 원고는 피고에게 망인의 사망으로 인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는 2008.2.22. 망인의 사망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같은 법 시행규칙에 정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지급을 거부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호증의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2006.12.경 ‘조합원들을 노동조합에서 탈퇴시키라’는 소외 회사의 지시에 따라 반노조 활동을 했는데, 2007.4.17.경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노사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면서 노사 양측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자 배신감 등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망인의 자살은 업무상 사고로서 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임에도, 이와 달리 보고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관계법령
별지 관계법령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다. 인정사실
(1) 망인의 경력과 업무수행
① 망인은 199○.○.○. 소외 회사에 입사하여 2000년에 ○○반 반장으로, 2005.3.경 ○○반 직장으로 각 승진하였다.
② 소외 회사 근로자들은 200○.○.○.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는데, 소외 회사 관리이사 ○○○은 망인을 비롯하여 ○○○, ○○○, ○○○, ○○○, ○○○ 등 간부급 현장근로자들에게 ‘필요한 경비는 회사에서 지원해주겠다’며, 근로자들을 설득하여 노조에서 탈퇴하도록 유도하라고 지시하였다.
③ 망인은 위 지시에 따라 2006.12.경부터 2007.3. 중순까지 술자리에서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하거나, 추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야간근무조 편성시 조합원들을 제외하여 불이익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근로자들의 노조탈퇴를 유도했고, 이에 2007.3.경에는 망인이 소속된 ○○반에서 약 23명이던 조합원이 6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④ 2007.2.경부터 소외 회사 노사간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는데, 같은 해 3.26. 대부분의 교섭사항에 대하여 잠정합의가 되어, 같은 해 4.17.에는 유니온숍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이 체결되었고, 소외 회사의 노사관계는 급격히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⑤ 위 단체협약 체결 이후 노동조합은 망인에 대한 징계와 망인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망인을 포함하여 노조탈퇴를 적극 독려했던 직·반장들을 공격했고, 이에 대해 당초 그와 같은 행위를 지시했던 회사 측에서 오히려 노조 측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자 망인은 심한 배신감과 패배감을 느끼게 되었다.
⑥ 그 무렵 망인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소화가 잘 안된다며 탄산음료를 자주 마셨으며, 자다가도 새벽에 깨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 처나 친구들에게 “모든 것이 부질없다. 나 하나 떠나면 해결될 문제인가”, “회사가 일방적으로 노조의 얘기만 듣는다. 사직서를 써서 항상 가슴에 넣고 다닌다”, “자다가 눈감고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회사 못 다니겠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⑦ 망인은 뒷목이 당기고 두통이 심하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등의 증세로 2007.5.17. ○○한의원에 방문하여 침과 물리치료 시술을 받고 15일분의 한약을 지었으며, 다음날인 5.18.에도 ○○한의원에서 침과 물리치료 시술을 받았다.
(2)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① 망인은 망인의 작업반에 소속된 조합원 ○○○을 야간근무조에 편성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계속해서 이행하고 있지 않던 중 2007.5.18. ○○○ 차장으로부터 이에 대해 질책을 받고 “왜 나만 당해야 하냐”며 억울해 하던 상태에서 18:40경 회식에 참여했는데, 그 곳에서 노조위원장과 ○○○ 관리이사가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격분하였다.
② 망인은 회식자리가 끝난 뒤 30분 정도 부사장 및 공장장과 이야기를 나눴고, 21:30경 소외 회사 총무과 사무실로 들어가 준비해 온 아세톤을 사무실 바닥에 뿌리면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고 협박하여 그 곳에 있던 직원을 내보냈다.
③ 당시 망인은 술을 마신 상태였으나 만취상태는 아니었는데, 사업주 등 임원들이 와야 한다고 고함을 지르며 흥분상태에 있었고,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동료 ○○○가 망인을 말렸으나 망인은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 것이냐”, “이제 끝이다”라고 하며 사무실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다.
④ 소외 회사 영업이사 ○○○이 사무실 앞에 도착한 후 ○○○가 사무실에 아세톤 냄새가 심하니 창문을 열자고 말하자 망인이 의자로 창문을 깼으며, 이후 ○○○, ○○○, ○○○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망인이 전부 다 나가라고 고함쳐 ○○○만 남고 ○○○과 ○○○은 밖으로 나갔다.
⑤ 당시 망인은 왼손에 아세톤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쥐고 있었는데, 망인과 1.5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가 망인에게 “참아라”라고 말하면서 다가서는 순간 망인은 라이터를 켜 분신하였다.
⑥ 망인은 분신 직후 응급출동한 119 차량으로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받은 후 ○○○병원, ○○○병원 등을 거쳐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2007.5.23. 17:27경 화염화상으로 인한 패혈증쇼크로 사망하였다.
(3) 망인의 성격
망인은 자존심과 책임감, 충성심이 강한 성격으로 고집이 센 편이었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은 없다.
(4) 의학적 소견
(가) 피고측 자문의
망인이 노동조합 문제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나 재해 이전 망인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 하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업무상 재해로 산재요양을 받고 있던 상태도 아니었으므로,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
(나) 대구 ○○한의원 의사
망인은 2007.5.17. 어깨 및 뒷목의 심한 통증으로 내원하여 한성견비통 진단을 받았는데, 그 원인으로는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실조, 나쁜 자세, 노동으로 인한 과로, 소화장애로 인한 습담 등을 들 수 있다. 망인은 당시 업무 스트레스로 매일 소주 2병을 마신다고 하는 등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었다.
(다) ○○○병원 의사
① 사건 경위 조사 내용에 비추어 망인이 분신 전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나, 신경정신과 전문의 치료내용 등의 객관적인 내용은 없다.
② 우울증으로 인해 인지기능 저하, 판단력 저하, 충동성 등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런 경우 자살 가능성도 있다.
③ 우울증의 심각도, 병전의 성격 등과 더불어 사회적 지지기반의 붕괴도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의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큰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④ 고집이 세고 외골수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완전벽적 성격이 우울증에 더 잘 걸릴 수 있고, 수치심, 죄책감, 분노감 등이 잘 생길 수 있다.
(라) 의학 상식
①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일상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되며, 체중의 급격한 변화, 불면이나 과다수면, 정신 운동성 초조나 지체, 피로나 활력상실, 무가치감과 과도한 죄책감, 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② 우울증은 단일 질환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되는 증후군일 가능성이 높고, 스트레스는 우울장애의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서 우울증상이 나타나게 하며, 강박적이거나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자신감의 상실 혹은 죄책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주요 우울장애 환자의 2/3는 자살을 고려하며, 10-15%는 자살시도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2 내지 8호증(각 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음), 갑 12, 14, 15호증, 을 1, 2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이 법원의 ○○한의원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다. 판단
(1) 근로자가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대법원 1993.12.14. 선고 93누13797 판결, 대법원 1999.6.8. 선고 99두3331 판결 등 참조),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하였고 그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 내지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되며,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상황, 우울증의 발병과 자살행위의 시기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추어 그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08.3.13. 선고 2007두2029 판결 참조).
(2)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망인이 간부급 현장근로자로서 회사의 지시에 의해 상당수의 근로자들을 노동조합에서 탈퇴시켰는데, 전격적인 단체협약 체결 이후 회사로부터 망인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조합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잃고 그로 인해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괴감에 빠지는 등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는 보인다.
그러나 당시 회사의 지시에 의해 노조와해작업에 가담했던 간부급 근로자들은 망인 외에도 5명이 더 있었고 이들과 망인은 같은 처지였으므로, 망인이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감수하고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립감을 느꼈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분신 당일까지의 망인의 행적 및 언동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우울증의 극단적인 증세로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까지 도달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병적 이상상태에서 정상적인 인식능력 내지 행위선택능력을 잃어 자살에 이르렀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오히려 분신 당일의 경위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은 회식 자리에서 소외 회사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느껴 격분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도 이후 그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으려는 소외 회사의 처우가 부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살을 선택하였을 수 있다).
(3) 소결
따라서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음을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3.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한다.
판사 ○○○(재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