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2021.11.25. 선고 2020구합76142 판결】
• 서울행정법원 제13부 판결
• 사 건 / 2020구합76142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A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21.06.17.
• 판결선고 / 2021.11.25.
<주 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가 2019.9.23. 원고에게 내린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망 B(C생 여자, 이하 ‘망인’이라고 한다)는 2016.8.22. 조명장치 제조 및 설치공사 업체인 주식회사 D(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고 한다)에 입사하여 조명기구 디자인 업무 등을 수행한 근로자이다.
나. 망인은 2018.1.16.경 자택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곧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2018.3.3. 22:45경 E병원에서 저산소성 뇌손상에 따른 뇌간 압박으로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아버지인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망인이 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의 정도가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을 뚜렷하게 저하시켜 자살을 유발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고, 자살과 관련된 업무상의 특별한 요인도 확인되지 않으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 결과 등을 근거로 들어 2019.9.23. 원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을 내렸다.
라.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불복하여 2019.12.17.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위 재심사청구는 2020.6.3. 기각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5 내지 9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3. 원고의 주장 요지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 입사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무렵에 사전 준비를 할 여유조차 없이 F 대표(당시 부사장) 이하 상사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영어실력이 미숙한 탓에 망인에 대한 입국심사가 지연되면서 일정에 큰 차질을 빚었고, 위 일로 인하여 F 대표로부터 출장기간 내내 지적과 면박을 당하였다(이하 ‘미국 출장사건’이라고 한다).
그전까지 당당하고 해맑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망인은 미국 출장 사건을 겪은 뒤로는 계속하여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고, 설상가상으로 망인의 직장 생활에서 큰 힘이 되어 주던 직속 상사인 G 대리가 갑작스럽게 육아휴직을 떠나면서, 망인은 G 대리가 맡던 업무에 더하여 종전보다 고난도의 업무까지 떠맡아 야근을 반복하며 과로에 시달렸다.
이처럼 망인은 미국 출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느라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정상적인 의사결정능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살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린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4. 이 사건 처분의 적법성
가. 관련 법리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5.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행위인바,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하였고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되며,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또는 중압감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 상황, 우울증 발병과 자살행위 시기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추어 자살이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말미암은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해야 하므로, 근로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자살 원인이 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는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게 되나, 당해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앞서 본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8.3.13. 선고 2007두2029 판결, 2012.3.15. 선고 2011두24644 판결 등 참조).
나. 인정사실
1) 망인의 근무에 관한 기본 사항
가) 동종 업무 경력: 2015.1.12 ~ 2016.8.13. 전기 조명장치 관련 업체인 ㈜H에서 설계디자인팀 소속 직원으로 근무
나) 이 사건 사업장 입사일: 2016.8.22. (2017.9.1.자로 정규직 전환)
다) 소속 부서 및 직책: 디자인팀, 사원
라) 소속 부서의 현원: 팀장 1명, 과장 1명, 대리 2명(망인의 직속 상사 G 대리 포함), 사원 3명(망인 포함)
마) 담당업무: 아파트 조명기구 디자인 및 설계(현장사진 촬영, 배치도면 작성, 조도 체크, 조명 배치, 조도 시뮬레이션 등)
바) 통상 근무시간: 주 5일, 1일 8시간 09:00 ~ 18:00(점심시간: 12:00 ~ 13:00)
2) 미국 출장 사건
가) 개요
(1) 기간: 2017.11.19. ~ 2017.11.23.
(2) 목적지: 미국 시애틀
(3) 인원: F 대표, 디자인팀 I 상무, 마케팅팀 부장 1명, 마케팅팀 과장 2명, 디자인팀 사원 1명(망인)
(4) 목적: J 본사 뉴캠퍼스 신축 관련 마케팅, 건축 설계 사무소 방문, 미국 인증 부품 관련 시장 조사
(5) 준비물: 마케팅 발표 자료, 제품 샘플, 홍보물
나) 경과
(1) F 대표는 미국 출장에 마케팅팀 직원 외에도 디자인팀 직원을 1명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제안하였고, 이에 I 상무는 디자인팀 직원 중에서 토익 성적이 준수한 망인을 지목하여 미국 출장에 동행하도록 하였다.
(2) 출장 1일차인 2017.11.19.에는 시애틀에 도착한 후 14:30경 호텔 체크인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망인은 11:05경 시애틀 타코마 공항의 입국심사장에서 출장목적에 관련된 질문을 받았으나, 영어 구술 능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였고, 1시간 이상 지난 후에 비로소 입국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3) 망인은 I 상무와 동행하여 미국 조명기구 시장조사 및 도심의 경관 조명을 견학하였다.
3) 미국 출장 사건 이후의 경과
가) F 대표는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 팀장회의를 주최하였는데, 위 팀장회의에 다녀온 영업팀장이 이 사건 사업장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망인에게 “너는 미국 출장 가서 어떻게 했길래 대표가 저렇게 화를 내시니?”라고 물어보았다.
나) 망인은 종전보다 어둡고 위축된 모습으로 L을 비롯한 동료 사원들에게 “출장 가서 힘들었다”, “내가 뭘 잘 하는지 모르겠다”, “이 나이 먹도록 이 정도밖에 안되네”라며 자책하는 발언을 반복하였다.
다) 망인의 직속 상사였던 디자인팀의 G 대리는 2017.12.6.자로 육아휴직을 떠났고, 망인은 G 대리에게 “오히려 제 힘든 모습 때문에 걱정만 끼쳐드렸어요. 죄송합니다 대리님. 제 롤모델이자 엄마같은 존재였던 대리님이 이제 안 계셔서 많이 불안하지만, 그동안 가르쳐준 거 생각하면서 힘들어도 잘 해 나갈게요”라는 편지를 전하였다. 이후 같은 직급의 팀원인 K 대리가 G 대리의 자리를 대신하였고, 그때부터 망인은 K 대리를 보조하여 업무를 수행하였다.
라) 망인은 어렵지 않게 처리하던 업무에서 실수를 거듭 범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디자인팀 팀장(이하 ‘팀장’이라고만 한다)이 망인을 불러서 “무슨 일 있냐?”고 걱정하듯이 질문하자, 망인은 “제가 이걸 또 잘못해서 큰일 난 건가요?”, “제가 또 잘못했나 봐요”라며 다시금 자책하였고, 팀장은 “이거 살짝 잘못했다고 큰일은 아니고, 수정하면 된다. 괜찮다”라며 다독여 주었으나, 망인은 본인의 자리에 돌아가서도 계속하여 표정이 좋지 않았고 업무에 집중하지도 못하였다.
마) 한편 팀장은 L이 담당하고 있던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그중 ‘M’ 아파트의 조명기구 설계 업무를 망인에게 맡겼다.
종래 일반적인 형태의 아파트에 사용되는 조명기구만을 취급하던 망인으로서는 M’와 같은 펜트하우스형 아파트의 조명기구에 관한 지식과 경력이 부족하였으므로, 별도로 해당 업무에 관한 공부를 병행하여야 하였다.
바) 망인은 업무 관련 내용을 수첩에 꼼꼼히 기록하는 성향이 있었다. 위 수첩에는 아래와 같이 미국 출장 사건 이후의 심경도 기재되어 있다. <아래 생략>
사) 망인은 2018.1.11.(목) 무단결근을 하였고, 같은 날 11시경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한 후 부모가 있는 집으로 내려가 그동안 망인이 겪었던 고충을 털어놓았다. 위 사실을 알게 된 이 사건 사업장에서는 망인에게 다음날까지 연가를 부여하였고, 팀장은 2018.1.14. 망인과 면담 약속을 잡았다.
아) 망인은 자살 시도 전날인 2018.1.15. 친구에게 “나 심각하게 우울증이 온 것 같아. 아무것도 못 하겠어. 내가 너무 한심하고 싶어서 바꾸고 싶은데 무기력해서 바꿀 힘도 없고,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든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다짐했다가도 또다시 우울해지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위 친구는 망인에게 N에 있는 신경정신과 병원을 소개하였고, 망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자) 망인은 2018.1.15. 동료 직원들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귀가하였고 그 무렵부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4) 망인의 평소 건강상태
- 2016.5.25.자 건강검진 종합소견: 정상
5) 의학적 소견(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생략>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증인 L의 증언, 갑 제1 내지 5, 11 내지 14, 16, 18, 20, 21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다. 판 단
위 인정사실에 증인 L의 증언, 갑 제22호증, 을 제2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자살을 결행할 무렵에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위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망인이 자살을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1) 미국 출장 사건을 기점으로 급격히 위축된 망인의 언행과 태도를 볼 때, 위 사건에서 이 사건 사업장의 F 대표가 망인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지적하며 망인에게 강한 수치심을 주었던 것으로 짐작되기는 한다.
그러나 미국 출장 사건 당일은 출장 1일차로서 일정이 비교적 느슨하게 잡혀 있었으므로, 망인의 입국심사가 1시간 정도 지연되었다고 하여 전체 출장 일정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졌다고 보이지는 않는데다, 당해 출장은 어디까지나 마케팅팀의 사업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어서 애초에 망인에게는 영어를 구사하는 업무를 맡기지 않았고, 다만 망인으로 하여금 디자인팀 I 상무를 수행하면서 견학할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라 보인다.
그렇다면 F 대표가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열린 팀장회의에서 다시금 망인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더라도, 여기에 더하여 망인의 전반적인 업무적격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망인에게 별도의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겠다고 경고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F 대표가 위 팀장회의 이후에도 미국 출장 사건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망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
2) 망인은 마케팅팀과는 달리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디자인팀 소속이었으므로, 망인의 영어 실력과 인사고과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 출장 사건 이후로 팀장이 망인에게 종전보다 어려운 펜트하우스형 아파트 관련 업무를 맡겼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망인은 영어 실력까지 겸비하지는 못하였더라도 자신의 본업인 디자인 분야에서 변함없는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3) 망인이 미국 출장 사건 이후부터 업무상 실책을 범하는 횟수가 늘어났더라도,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그러한 망인을 질책하였다는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팀장이 실수를 반복하는 망인이 걱정되어 망인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기는 하였으나, 망인이 팀장의 질문을 추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책하는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팀장은 적극적으로 망인을 위로하여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4) 망인은 본인이 믿고 의지하던 상사인 G 대리가 육아휴직을 떠나게 되어 상실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망인이 G 대리의 후임인 K 대리와 사이에 어떠한 불화나 마찰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5) G 대리가 육아휴직을 떠나면서 망인이 G 대리의 업무 중 일부를 맡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팀장이 망인보다 L의 업무가 더 많다고 보아 L이 담당하던 ‘M’ 관련 업무를 망인에게 분담시킨 점을 보면, 그 무렵 망인의 업무가 증가하기는 하였더라도 그 총량이 여느 직원에 비하여 많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망인이 동종 사업장인 ㈜H(업계 28위)에서 1년 반 가량 근무하는 동안 실력을 인정받아 업계 4위인 이 사건 사업장으로 전직하고, 다시 1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한 경력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업장에서 망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업무를 부여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6) 망인의 사망 전 11주간(2017.11.1. ~ 2018.1.15.)의 출입카드 내역(을 제2호증)을 살펴보면, 망인은 2018.1.6.(토)에 한 차례 출근한 것을 제외하고는 휴일근무를 하지 않았고, 망인이 출입카드를 사용하여 퇴근한 열흘 동안은 모두 오후 6시 전에 퇴근하였던 사실이 확인된다.
그밖에 망인이 출입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퇴근한 36일간은 퇴근시간을 확인할 수 없는데, 망인이 2017.8.9. 본인의 SNS 계정에 “오늘도 야근”이라는 게시물을 올린 점(갑 제22호증)으로 미루어 위 36일 중 일부는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증인 L이 “망인은 퇴근 후 이 사건 사업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복정 또는 모란 방면에 있는 필라테스 학원을 다녔다”라는 취지로 증언한 점(해당 증인신문 녹취록 제8쪽)을 아울러 감안하면, 망인의 초과근무 빈도와 시간을 선뜻 파악하기 어렵고, 달리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드러난 망인의 근무시간만으로는 업무상 과로를 추단하기 어렵다.
7) 망인의 수첩 내용을 보면, 망인이 미국 출장 사건을 겪은 후에 본인의 능력을 비하하는 표현이 상당수 기재되어 있기는 하나, 한편으로 미국 출장 사건을 도리어 성장의 기회로 여기고 자신감을 되찾겠다는 의지도 피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8) 망인이 2018.1.11. 돌연 무단결근까지 감행하고, 2018.1.15. 친구로부터 신경정신과 병원을 소개받을 무렵에 이르러서는 망인의 스트레스가 자살의 충동을 유발할 만큼 누적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망인의 우울증 발병 여부 및 그 심화의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아무런 의학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망인이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결과만을 들어서는, 그 무렵 망인이 자살 외에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판단능력이나 충동조절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라. 소결론
따라서 망인의 사망을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5. 결 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장낙원(재판장) 신수빈 정우철
※ 서울고등법원 2024.3.28. 선고 2022누30661 판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