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기업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 등 영업의 자유와 근로자들이 누리는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이 ‘근로조건’ 설정을 둘러싸고 충돌하는 경우에는, 근로조건과 인간의 존엄성 보장 사이의 헌법적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사안에서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과 함께 기본권들 사이의 실제적인 조화를 꾀하는 해석 등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여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해지는 두 기본권 행사의 한계 등을 감안하여 두 기본권의 침해 여부를 살피면서 근로조건의 최종적인 효력 유무 판단과 관련한 법령 조항을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2] 원고가 헌법상 영업의 자유 등에 근거하여 제정한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 된다.”는 이 사건 조항은 참가인의 헌법상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근로기준법 제96조제1항, 민법 제103조 등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참가인이 이 사건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이루어진 이 사건 징계처분 또한 위법하다
◆ 대법원 제1부 2018.09.13. 선고 2017두62549 판결 [부당감급구제재심판정취소]
♣ 원고, 상고인 / ○○○○항공 주식회사
♣ 피고, 피상고인 /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
♣ 피고보조참가인, 피상고인 / A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7.9.1. 선고 2017누41513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보조참가로 인한 부분을 포함하여 원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기본권 충돌상황에서 기본권 침해 여부 등에 관한 판단 방법
가. 헌법상 기본권은 제1차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권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헌법의 기본적인 결단인 객관적인 가치질서를 구체화한 것으로서, 사법(私法)을 포함한 모든 법영역에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사인간의 사적인 법률관계도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에 적합하게 규율되어야 한다. 다만 기본권 규정은 그 성질상 사법관계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관련 법규범 또는 사법상의 일반원칙을 규정한 민법 제2조, 제103조 등의 내용을 형성하고 그 해석기준이 되어 간접적으로 사법관계에 효력을 미치게 된다(대법원 2010.4.22. 선고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이 규정에 의하여 보장되는 자유에는 선택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그 활동의 내용·태양 등에 관하여도 원칙적으로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는 직업활동의 자유도 포함된다(대법원 1994.3.8. 선고 92누1728 판결 참조). 아울러 헌법 제15조제1항, 제23조제1항, 제119조제1항의 취지를 기업 활동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기업은 그가 선택한 사업 또는 영업을 자유롭게 경영하고 이를 위한 의사를 결정할 자유를 가지며 이는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다(대법원 2003.11.13. 선고 2003도687 판결 참조).
한편,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은 모든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내용으로 하고, 그 보호영역에는 개인의 생활방식과 취미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헌법재판소 2014.4.24. 선고 2011헌마659 결정 등 참조). 이에 따라 헌법 제32조제3항 역시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3조제1항은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하여 근로 3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들은 기업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의사결정과 관계되는 또 다른 기본권 주체인 근로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존엄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화롭게 조정되어야 함을 당연히 전제하고 있다. 헌법 제119조제2항이 국가로 하여금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취지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다. 이처럼 기업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 등 영업의 자유와 근로자들이 누리는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이 ‘근로조건’ 설정을 둘러싸고 충돌하는 경우에는, 근로조건과 인간의 존엄성 보장 사이의 헌법적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사안에서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과 함께 기본권들 사이의 실제적인 조화를 꾀하는 해석 등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여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해지는 두 기본권 행사의 한계 등을 감안하여 두 기본권의 침해 여부를 살피면서 근로조건의 최종적인 효력 유무 판단과 관련한 법령 조항을 해석·적용하여야 한다(위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피고보조참가인에 대한 이 사건 징계처분의 위법 여부
가.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원고는 1988.2.17. 설립되어 국내외 항공운송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피고보조참가인(이하 ‘참가인’이라고 한다)은 1997.7.1. 원고 회사에 입사하여 항공기 기장으로서 비행업무에 종사하여 왔다.
(2) 원고의 취업규칙인 「임직원 근무복장 및 용모규정」 제5조는 “임직원의 용모는 단정하고 청결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제1항제2호에서 남자 직원의 경우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된 외국인의 경우에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하 ‘이 사건 조항’이라고 한다).
(3) 원고는 ‘참가인이 턱수염을 길러 이 사건 조항을 위반하고, 면도 지시에 불이행하였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2015.7.31. 참가인에게 감급 1개월의 징계 처분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징계처분’이라고 한다).
(4) 참가인은 2015.10.29. 이 사건 징계처분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6.1.14. 이 사건 징계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참가인의 구제신청을 기각하였고, 참가인은 이에 불복하여 2016.1.25.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는데, 중앙노동위원회는 2016.4.6. 이 사건 징계사유는 인정되나 징계양정이 과중하다고 판단하여 참가인의 재심신청을 인용하였다.
나. 위와 같은 사실관계 및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가 헌법상 영업의 자유 등에 근거하여 제정한 이 사건 조항은 참가인의 헌법상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근로기준법 제96조제1항, 민법 제103조 등에 따라서 무효라고 할 것이다.
(1) 원고는 항공운송업 등을 영위하는 사기업으로서 항공사에 대한 고객의 신뢰와 만족도 향상, 직원들의 책임의식 고취와 근무기강 확립 등 필요에 따라 합리적 범위 내에서 취업규칙을 통하여 소속 직원들을 상대로 용모와 복장 등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일반적 행동자유권 역시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취업규칙은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헌법을 포함한 상위법령 등에 위반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2) 한편 이 사건 조항은, 일부 외국인 직원의 콧수염 이외에는 참가인을 포함한 원고 소속 직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으로 인하여 원고의 영업의 자유와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충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3) 이 사건 조항은 원고의 영업의 자유와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에 대한 이익형량이나 조화로운 조정 없이 일부 외국인의 콧수염에 관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원고 소속 모든 직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영업의 자유와 관련한 필요성과 합리성의 범위를 넘어서 일률적으로 그 소속 직원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기본권 충돌에 관한 형량과 기본권의 상호조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4) 오늘날 개인 용모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원고 소속 직원들이 수염을 기른다고 하여 반드시 고객에게 부정적인 인식과 영향을 끼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해당 직원이 타인에게 혐오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외모 및 업무 성격에 맞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수염을 기른다면 그것이 고객의 신뢰나 만족도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사건 기록을 살펴보아도, 이 사건 조항에 따라서 직원들에게 수염을 기르지 못하도록 한 결과 직원들의 책임의식이나 고객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고 볼 합리적 이유와 자료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수염 자체로 인하여 언제나 영업의 자유에 미치는 위해나 제약이 있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5) 더욱이 참가인은 항공기의 조종을 책임지는 기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기장의 업무 범위에 항공기에 탑승하는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참가인이 자신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원고 회사에서 퇴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처럼 수염을 일률적·전면적으로 기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
(6) 원고는 항공운항의 안전을 위하여 항공기 기장의 턱수염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별다른 합리적 이유와 근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원고는 항공기 기장을 포함한 원고 소속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수염을 기르는 것을 부분적으로 허용하여 왔고, 다른 항공사들도 운항승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원고가 취업규칙을 개정하여 개별적인 업무의 특성과 필요성을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수염의 형태를 포함하여 용모와 복장 등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7) 그러므로 이 사건 조항은 원고가 보유하는 영업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참가인 등 근로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
다. 원심은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조항이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여 근로기준법 제96조제1항 등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참가인이 이 사건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이루어진 이 사건 징계처분 또한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기초한 것으로서,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기본권 충돌에 관한 법리, 취업규칙의 효력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정화(재판장) 권순일 이기택(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