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업무상 재해의 원인이 된 근로자의 행위가 일응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에 수반된 불법 내지 비난의 정도가 경미하여 사회통념상 보험급여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 상당하지 아니하고, 보험급여를 행하더라도 보험사고 발생의 위험을 높여 보험재정을 악화시키는 등 보험정책상의 부작용이 예상되지 아니하는 동시에, 그와 같은 범죄행위가 근로자가 수행하던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로서 근로자의 생활보장을 위해 급여가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된다면, 여전히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산재보험법 제37조제1항에 따른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2] 원고의 과속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 원인이 되었고, 위 과속행위는 도로교통법상 처벌받은 범죄행위가 됨이 인정되기는 하나, 사고에 따른 피해가 업무 자체에 내재된 전형적인 위험 중의 하나로 보이는 점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외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 징벌로서 보험급여를 박탈할 정도의 불법적이고 사회적으로 비난할 만한 과실행위나 반사회성이 있는 경우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보험급여를 허용한다고 하여 자칫 사고의 위험을 높임으로써 보험재정이나 국고에 부담을 초래하고 다른 보험가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등 보험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부정적인 영향이나 결과도 없는 경우라고 봄이 타당하다.


【서울고등법원 2022.4.8. 선고 2021누58150 판결】

 

•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 판결

• 사 건 / 2021누58150 요양불승인처분취소

• 원고, 피항소인 / A

• 피고, 항소인 / 근로복지공단

• 제1심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1.8.20. 선고 2021구단3595 판결

• 변론종결 / 2022.03.11.

• 판결선고 / 2022.04.08.

 

<주 문>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가 2020.4.23.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항소취지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등

 

가. 원고는 주식회사 B에 고용되어 (차량번호 1 생략)호 영업용 택시(이하 ‘이 사건 택시’라 한다)를 운행하던 운전기사이다.

나. 원고는 2020.3.26. 20:00경 위 회사에 출근하여 이 사건 택시를 배차 받아 운전하다가 그 다음날인 3.27. 01:58경 천안IC에서 양재IC 방향으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판교IC 부근에서 이 사건 택시가 빗길에 미끄러져 도로 좌측의 구조물(중앙분리대)과 충돌하는 사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를 당하였다.

다. 원고는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경추 척수의 압박(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 진단을 받고 2020.4.9.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2020.4.23. ‘이 사건 사고는 제한속도보다 20㎞ 이상 과속하여 발생한 사고로 관련 법령에 의한 12대 중과실 교통사고에 해당하고, 원고의 속도위반이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판단되는데, 사고의 원인이 범죄행위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2항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라.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불복하여 2020.5.12. 피고에게 심사청구를 하였으나 2020.7.17. 기각되었고, 이에 불복하여 2020.8.3.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2021.1.6. 그 역시 기각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8호증(가지번호가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를 포함), 을 제1 내지 4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이 사건 사고에서는 인명 피해가 없었고, 발생 경위에 비추어 보더라도 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 범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과속운전은 과태료 부과대상에 불과한 경미한 법위반행위인데, 원고는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과태료를 부과 받은 사실조차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20.5.26. 법률 제173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37조제2항의 규정에 따라 업무상 재해임이 부정되는 범죄행위로 인하여 상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관계 법령

별지 ‘관계 법령’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다. 판단

1) 관련 법리

가) 구 산재보험법은 제1조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를 당한 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험급여는 근로자에 대한 생활보장적 성격을 갖는 외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사용자의 재해보상과 관련해서는 책임보험의 성질도 가지고 책임보험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고, 사업주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국가가 궁극적으로 보상책임을 져야 한다(대법원 1994.5.24. 선고 93다38826 판결 참조).

이를 위해 구 산재보험법은 제5조제1호에서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업무상의 재해’로 정의하면서, 제37조제1항 본문에서 업무상 재해의 적극적 인정 요건으로 인과관계를,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인과관계가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임을 각각 규정하고 있고, 근로자 측의 입증책임을 경감해 주려는 취지에서 같은 조제1항 각 호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전형적인 경우들을 유형화하고 있는데, 그중 제1호 가목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한 경우를 업무상의 재해로 간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업무상 재해 인정의 요건으로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자연과학적, 기계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경위 및 결과 등 제반 사정은 물론, 구 산재보험법의 입법목적과 보호법익까지도 함께 고려하여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나) 한편 구 산재보험법은, 제37조제2항 본문에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구 산재보험법이 범죄행위로 인한 경우를 보험급여의 제한사유로 삼은 것은 범죄행위로 인한 보험사고 자체의 위법성 때문에 일종의 징벌 또는 보험정책적인 목적에서 보험급여를 행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같은 취지의 대법원 1990.2.9. 선고 89누2295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업무에 기인한 사정으로 근로자가 상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그로써 이미 구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가 있던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그 발생 원인으로 조금이라도 경합되거나 기여한 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발생의 경위, 범죄의 경중, 그 결과로서 근로자가 입은 재해, 범죄행위의 피해 발생에 대한 기여도 등을 전혀 감안하지 아니한 채, 일률적으로 업무상 재해의 발생이라는 기존의 정당한 평가를 모두 뒤집는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이다. 따라서 구 산재보험법이 제37조제1항에서 적극적으로 업무상 재해로서 인정되는지 여부를 제반 사정을 감안한 상당인과관계의 관점에서 평가하도록 하고 있는 이상, 제37조제2항에 따라 범죄행위로 인한 경우임을 사유로 업무상 재해의 성립을 소극적으로 부정할 것인지 여부도 같은 기준에 따라, 즉 범죄행위와 근로자가 입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여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업무상 재해의 원인이 된 근로자의 행위가 일응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에 수반된 불법 내지 비난의 정도가 경미하여 사회통념상 보험급여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 상당하지 아니하고, 보험급여를 행하더라도 보험사고 발생의 위험을 높여 보험재정을 악화시키는 등 보험정책상의 부작용이 예상되지 아니하는 동시에, 그와 같은 범죄행위가 근로자가 수행하던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로서 근로자의 생활보장을 위해 급여가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된다면, 여전히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구 산재보험법 제37조제1항에 따른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같은 맥락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법원 2020.4.29. 선고 2016두41071 판결, 대법원 1990.2.9. 선고 89누2295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구 산재보험법 제1조, 제5조제1호, 제37조제1·2항의 법문, 규정의 체계 및 입법목적과 부합될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생활보장을 위한 사회보험제도로서 산재보험에 있어 요양급여를 받을 근로자의 피해구제와 다른 보험가입자의 이익 및 국고부담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해석이다.

2) 구체적인 판단

가) 이 사건 사고 당시 원고는 제한최고속도 88㎞/h인 도로(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경부고속도로의 제한최고속도는 110㎞/h이나, 당시 비가 내려 노면이 젖어 있었으므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9조제2항제1호 가목에 의하여 최고속도에서 20%를 줄인 속도로 감속운행 하여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에서 약 123㎞/h의 속도로 과속운전을 하였다. 원고의 이러한 과속운전행위가 이 사건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된 점은 인정된다. 나아가 이와 같은 원고의 과속운전행위는 도로교통법 제156조제1호, 제17조제3항에 따라 처벌되는 도로교통법위반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고의 과속운전행위가 행정적 제재로서 과태료 부과대상에 불과하다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 그러나 한편, 앞서 인정된 사실 및 증거들에다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고는 택시기사로서 원고가 수행하던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현실화에 불과한 경우로서 비록 그 발생 과정에 원고의 도로교통법상 안전의무위반(과속운전)이라는 과실이 경합되어 있고 사고 발생의 원인으로 기여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구 산재보험법 제37조제2항을 적용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며 취소되어야 한다.

(1) 원고는 2020.3.26. 23:00경 서울 망우동 부근에서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인 경기도 안성까지 이 사건 택시를 운전하여 간 후 그곳에서 승객을 내리게 한 다음 승객이 없는 채로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되돌아오다가 이 사건 사고를 당하였다.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도로의 노면은 젖은 상태였지만, 해당 지역의 시간당 누적 강수량은 2.5~3.0mm 정도로서 비교적 약한 비가 내렸거나 내리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심야의 시간대이어서 운행하는 차량이 많지 아니하였고, 사고 장소인 도로구간은 고속도로로서 평상시 제한최고속도는 110km/h에 달한다.

(2) 이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야간에 시 외곽의 장거리 구간으로 택시 운행을 마친 다음 신속히 본래의 근무지인 서울 시내로 돌아와 영업을 계속하려는 급한 마음에,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 구간을 지나면서 비가 내리기는 하였으나 운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사고 위험을 높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여 방심한 상태에서, 평상시 위 고속도로구간의 제한최고속도를 염두에 두고 이 사건 택시를 운행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사건 사고는 원고가 근로자로서 통상적인 업무 수행의 방법으로 이 사건 택시를 운전하다가 발생한 것일 뿐이고 그 발생 과정에서 다른 업무 외적인 동기나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는 아니하다.

(3) 범죄행위에 대해 과해지는 법정형의 형종과 형량은 그 범죄행위의 죄질뿐만 아니라 그에 수반된 불법 및 책임에 따른 비난의 정도에 관한 사회적 평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원고가 이 사건 사고를 통해 저지른 과속운전의 안전의무위반행위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죄의 법정형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인데, 도로교통법은 제한최고속도를 초과한 정도에 따라 위 죄의 법정형을 달리 정하고 있지 아니하다. 나아가 원고는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도 없는데, 이는 이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제3자에 대한 인명 피해 등 중대한 결과가 생기지는 아니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사건 사고는, 범죄행위의 유형이나 그 결과에 비추어 보더라도, 불법이나 비난의 정도에 있어 지극히 경미한 경우에 속하고, 범행을 저지른 원고 자신이 상해까지 입은 상황에서 범죄행위로서 원고를 따로 처벌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 드는 경우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사유 중 이 사건 사고가 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라고 본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

(4) 이 사건 택시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음으로써 동체가 일부 손상된 것을 제외한다면, 이 사건 사고로 인한 피해는 원고에게만 발생하였다. 이러한 피해는 원고와 같이 상시로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있어 안전에 관한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였을 경우, 이 사건에서처럼 도로 여건이나 교통 상황 등 주변 여건과 결합하여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업무 자체에 내재된 전형적인 위험 중의 하나라고 보인다.

(5) 산재보험을 포함한 사회보험의 기능이 바로 이와 같이 업무에 수반한 불의의 재난에 대비해 그 위험을 담보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의 생활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 사건 사고 발생의 경위나 우연성 등에 비추어 볼 때, 외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 징벌로서 보험급여를 박탈할 정도의 불법적이고 사회적으로 비난할 만한 과실행위나 반사회성이 있는 경우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보험급여를 허용한다고 하여 자칫 사고의 위험을 높임으로써 보험재정이나 국고에 부담을 초래하고 다른 보험가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등 보험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부정적인 영향이나 결과도 없는 경우라고 봄이 타당하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여야 할 것인데,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성수제(재판장) 양진수 하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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