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 그 자체 또는 업무상의 재해로 말미암아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근로자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그와 같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근로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재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21.10.14. 선고 2021두34275 판결】
• 대법원 제3부 판결
• 사 건 / 2021두34275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 원고, 상고인 / 원고
• 피고, 피상고인 / 근로복지공단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1.2.3. 선고 2020누47535 판결
• 판결선고 / 2021.10.14.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 본문은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출퇴근 재해로 구분하고, 근로자가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2항 본문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는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의 경우,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2020.1.7. 대통령령 제303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6조는 위 산업재해보상법 제37조제2항 단서에서 말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제1호),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제2호),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제3호)를 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 그 자체 또는 업무상의 재해로 말미암아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근로자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그와 같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근로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대법원 2014.10.30. 선고 2011두14692 판결, 대법원 2017.5.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참조).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재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0.5.28. 선고 2019두62604 판결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의 남편인 소외인(1958년생)은 1992.8.26.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고(이하 ‘이 사건 추락사고’라 한다)로 ‘하반신 완전마비, 마비신경총손상, 신경인성장과 방광’으로 산재요양승인을 받았고 장해등급 제1급 결정을 받았다.
나. 이후 소외인은 하반신 마비로 인한 욕창으로 10여 차례 입원 치료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욕창’으로 1차 재요양승인을 받았다(치료기간 2012.12.6.부터 2013.3.4.까지). 위 기간 이후에도 매달 한 번씩 ○○○○병원 재활의학과에 내원하여 진료를 받았다. 또한 소외인은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 상세불명의 신체형장애’로 2차 재요양승인을 받았고(치료기간 2013.5.14.부터 2016.3.15.까지), 2013.12.4.부터 2014.4.17.까지는 □□□ 병원에서 욕창치료 도중 우울증세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2018.6.26.까지 ○○○○병원에서 신체형 장애,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로 지속적인 통원치료를 받았다.
다. 소외인은 하반신 마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체위 변경이 어려워 욕창이 생겼다. 원고는 소외인의 관절 운동을 돕거나 체위를 변경하는 등 소외인을 간병하였는데, 2018.7.3.부터 2018.8.11.까지 약 40일간 늑골 골절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느라 소외인을 돌보지 못하였다. 소외인은 그 기간 중인 2018.7.27. ○○○○병원을 내원하였는데, 그 경과기록지에는 소외인에게 욕창 증세가 있고 메디폼을 처방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라. 소외인은 원고가 퇴원하고 8일이 지난 후인 2018.8.19. 자택에서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 원고는 다음 날인 2018.8.20. 소외인의 사망에 관한 경찰 조사에서 소외인이 자살할 만한 이유에 대하여 “소외인이 재작년 △△ 회장직에서 퇴출당하고 왕따도 당하여 괴로워했고, 술을 매일같이 마셔왔으며, 얼마 전 음주운전에 단속(면허 취소)되어 괴로워했다.”라고 진술하였다.
소외인의 주치의는 소외인의 증상이 점차 호전되어가는 양상이었고, 2018.6.26. 실시한 마지막 진료에서 특이점은 관찰되지 않았으나, 치료 경과 중 소외인의 우울증상이 악화되고 있었으나 환자 본인이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제1심 진료기록 감정의는 우울장애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우울장애는 자살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정신장애이고, 자살 기도자의 상당수는 시도 당시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70~80%는 우울증 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레스만으로 직접 자살한다기보다 스트레스로 우울장애가 발생하고, 우울장애가 발생하면 부정적 사고, 판단력 저하, 충동성과 자기조절 능력 저하 등으로 자살을 시행할 수 있다. 우울장애가 명확하고 그 밖의 유발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울장애와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소외인의 경우 “마지막 진료 전 몇 개월 동안의 진료기록에 안정적이라고 되어 있을 뿐 특이 내용은 없다.
2018.6.26.까지 진료기록만 있어 소외인의 사망 당시 정신 상태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소외인이 사망 당시 심신상실, 정신착란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3. 이러한 사실관계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가. 소외인은 이 사건 추락사고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휠체어생활을 하였고, 하반신 마비로 발생한 욕창으로 10여 차례 입원 치료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상당한 고통에 시달렸다. 이와 같이 소외인의 우울증은 이 사건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 등에 기인한 것이고, 피고 또한 업무와 우울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소외인의 우울 증세 등에 대하여 재요양 승인을 하였다.
나. 소외인은 2016.3.15.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최종 진료일인 2018.6.26. 실시한 진료에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외인의 주치의 소견과 같이 치료경과 중 우울증이 악화되었으나 소외인이 이를 숨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위 최종 진료일과 소외인의 사망일인 2018.8.19. 사이에 평소 자신을 간병하던 원고가 40일간 입원하여 평상시와 같은 간병을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 자살 직전 욕창이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외인의 우울증은 이 사건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욕창으로 유발·악화되었던 것임을 고려한다면, 원고의 입원 기간 소외인의 우울증이 유발·악화되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다. 원고는 소외인의 자살 직후 경찰 조사를 받으며 ‘△△ 협회에서 갈등과 음주 문제, 음주운전 단속’을 소외인의 사망이유로 언급하였으나 이는 소외인의 사망 직후 원고의 추측에 따른 진술이다. 특히 △△ 협회 갈등은 2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소외인의 자살에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동호회 회장에서 퇴출되었거나 음주운전 단속으로 면허가 취소되었다는 사정은 일반인에게 자살의 충분한 동기나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위와 같은 사건으로 사회 활동에서 고립되고 이동이 제한된다는 사정은 하반신 마비로 장해가 있는 원고에게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소외인의 자살 직전 위와 같은 사정이 있었다고 해서 소외인의 업무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것이 아니다.
라. 그렇다면 소외인은 업무 중 발생한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오랜 기간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이 발생하였다가, 자살 직전 욕창 증세가 재발하여 우울증이 다시 급격히 유발·악화되었고, 그 결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4. 원심은 소외인의 우울증이 발생한 경위, 자살 무렵 소외인의 신체적·정신적 상황 등에 관하여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소외인이 기승인상병인 하반신마비, 욕창, 우울증 등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없거나 현저히 낮아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추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심판결에는 업무상 재해에서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5. 원고의 상고는 이유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노정희(재판장) 김재형(주심) 안철상 이흥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