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 승인을 받은 질병(급성 뇌경색)을 치료하다가 소장 출혈로 사망한 사안에서, 그 치료 약물(항응고제)과 사망 사이에 의학적인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치료 약물의 작용 외에 달리 사망의 원인으로 의심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치료 약물이 사망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는 이유로, 위 질병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판결.
【서울행정법원 2021.9.2. 선고 2020구합824 판결】
• 서울행정법원 제13부 판결
• 사 건 / 2020구합824 유족보상일시금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 피 고 /
• 변론종결 / 2021.05.27.
• 판결선고 / 2021.09.02.
<주 문>
1. 피고가 2019.3.8. 원고에게 내린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망 C(1982.*.**.생 여자, 이하 ‘망인’이라고 한다)는 ‘D(E)’ 식당의 직원으로 일하던 중 2017.8.30.경 급성 뇌경색(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고 한다)을 일으켰고, 피고는 이 사건 상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면서 망인의 요양을 승인하였다.
나. 망인은 요양기간 중인 2018.10.1. 23:32경 취침을 하다가 돌연 구토를 하고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2018.10.2. 00:04경 ‘소장 출혈’로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이 사건 상병에 대한 부적절한 치료가 망인의 사망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2018.12.24.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이 사건 상병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자문의의 소견 등을 근거로 2019.3.8. 원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을 내렸다. 라.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불복하여 피고에게 심사청구를 하였으나, 피고는 2019.7.12. 위 심사청구를 기각하였고, 이에 원고는 산업재해보상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위 재심사청구도 2019.11.27. 기각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호증, 을 제1, 2, 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인정사실
1) 이 사건 상병의 내용
가) 병명: 급성 뇌경색(2018.8.7.경 뇌손상에 의한 상세불명의 정신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가 추가 상병으로 승인됨)
나) 요양승인기간: 2017.8.31. ~ 2018.10.17.
다) 주요 요양 경과
○ 2017.8.31. ~ 2017.9.26. L병원 및 F병원 입원치료
뇌졸중 재발 방지를 위하여 2017.9.경 항응고제 복용 후 퇴원함.
○ 2017.9.28. ~ 2018.8.31. G병원 입원치료
뇌경색 재발 예방을 위하여 2017.10.10.부터는 L병원에서 투약 용량에 대한 의견을 받은 후, G병원에서 항혈소판제를 처방받아 지속적으로 투약함.
○ 2018.9.1. ~ 2018.10.1. G병원 통원치료(L병원 병행 진료)
좌측 편마비가 남아 있는 상태로 통원 치료를 시작하면서 항응고제를 변경하여 처방받음. 라) 주요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
○ 2017.8.31. 상세불명의 뇌경색증(L병원)
○ 2017.9.14. 상세불명의 뇌경색증(F병원)
○ 2017.9.28.~2018.8.1. 이완성편마비, 삼킴곤란(G병원)
○ 2018.9.17. 상세불명의 만성신장병(L병원)
2) 망인의 사망에 관한 의학적 소견
가) 부검감정서
○ 사인: 소장 출혈
○ 사인 판단의 근거
① 소장 중간부에서 원위부에 이르기까지 혈성 내용물로 추정되는 흑갈색의 물질이 다량 발견되었고, 망인의 눈꺼풀 결막과 입술점막이 창백하며, 내부 실질장기가 빈혈 상태임을 고려하였을 때, 망인의 소장에서 다량의 출혈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② 심장동맥에서 국소적으로 고도의 동맥경화 증상이 있으나, 이는 소장 출혈에 우선하는 사인으로 보기 어렵다. 그밖에 뇌의 오른 바닥핵 부위에서 오래된 병변이 발견되고, 신장에서도 국소적인 전사구체경화 증상이 있으나 모두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③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되는 갈비뼈와 복장뼈의 골절 외에는, 전신의 외표와 골격 및 내부 실질장기에서 사인으로 인정할 만한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④ 약·독물 검사를 시행한 결과, 망인의 혈액에서는 치료에 필요한 농도 이내의 약물만이 검출되었고, 그밖에 특기할 만한 다른 약물이나 독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 참고사항
① 소장은 다른 소화기관에 비하여 출혈이 흔하게 발생하는 부위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원인이 불명확한 출혈이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② 망인과 같은 청장년층에서 소장의 출혈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크론병, 소장 종괴, 엑켈 게실, 비특이적 장염, Disulafoy 병변, 혈관 이상의 순으로 알려져 있다.
③ 망인의 경우 이러한 원인들에 대해 살펴보았으나, 육안으로 궤양이나 게실, 종괴 등의 병변을 보지 못하였고, 부검 시에는 이미 출혈이 멈춘 상태여서 출혈이 발생한 부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소장의 여러 곳에서 조직을 채취하여 현미경 검사를 하였지만, 염증이나 뚜렷한 혈관 이상도 보지 못하였다.
나) 망인 주치의(G병원) 소견
망인의 뇌경색 재발 예방을 위해 상급병원에서 투여하던 항혈소판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였고, 이로 인해 출혈 경향의 발생이 가능하다. 다만, 사망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 여부는 알 수 없다. |
다) 피고 자문의 소견
부검소견서에 따르면 ① 망인의 혈액에서 검출된 약물들은 모두 치료농도 범위 내에 있었던 점, ②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골절되었다고 추정되는 갈비뼈와 복장뼈의 주변 근육층 외에는 다른 부위에 출혈이 보이지 않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약물에 의한 소장 출혈의 발생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사건 상병과 망인의 사망은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
라) 심사위원회의 심의 결과
○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부검감정서에서 직접 사인은 소장 출혈로 밝혀졌고, 이 사건 상병에 관한 약물 복용 문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상병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의견이다. ○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이 사건 상병과 망인의 직접 사인이 된 소장 출혈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부검 당시 실시한 약·독물 검사에서 특기할 만한 약물이나 독물이 검출되지 않았고, 망인이 복용하였던 항혈소판제 등의 약물로 인해 다량의 소장 출혈이 발생하기는 어려우므로, 결국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 |
마)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 이 사건 상병과 소장 출혈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불명확하다. ○ 항응고제 또는 항혈소판제의 복용이 망인의 출혈 경향을 증가시켜 소장 출혈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였을 수 있다. ○ 그러나 현재 제출된 진료기록만으로는 망인이 사망 전에 복용한 항응고제 또는 항혈소판제의 종류와 용량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상병과 소장 출혈 사이의 연관성을 평가할 수 없다. |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호증, 을 제1 내지 4, 6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장에 대한 진료기록 감정촉탁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나.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에 따른 업무상 재해라고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측에 있다. 이는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로 요양 후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사망이 업무상 재해인지를 판단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할 것이고, 업무상 발병한 질병이 사망의 주된 발생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업무상 발병한 질병이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기존의 다른 질병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망하게 되었거나, 업무상 발병한 질병으로 인하여 기존 질병이 자연적인 경과 속도 이상으로 급속히 악화되어 사망한 경우에도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3.4.11. 선고 2002두12922 판결, 2016.7.14. 선고 2016두35557 판결 등 참조).
다. 판 단
앞서 인정한 사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업무상 질병인 이 사건 상병과 망인의 사망 원인이 된 소장 출혈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1) 소장 출혈의 원인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소장 출혈 자체가 흔한 증상이 아닌데다가, 더구나 망인과 같은 30대의 청년층에서 다량의 소장 출혈이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망인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특히 소장 출혈에 취약한 위험인자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 그런데 망인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였음에도, 망인의 소장에 다량의 출혈을 유발할 만한 외상이나 질환이 발견되지 않았고, 망인의 진료기록에서도 소장에 출혈을 일으킬 법한 기왕증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망인의 주치의와 이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는 망인에게 투여되었던 항응고제 또는 항혈소판제(이하 ‘항응고제 등’이라고 한다)가 망인의 출혈 경향을 증가시켰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소장 출혈의 의학적인 원인을 달리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피고의 주장처럼 항응고제 등의 부작용마저 고려대상에서 제외한다면, 망인의 소장 출혈은 결국 어떠한 위험요인도 없이 돌연 발생한 부자연스러운 사건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와 반대로 위 항응고제 등의 투약을 소장 출혈의 원인으로 추단하는 것이 한층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3) 망인이 복용한 항응고제 등의 구체적인 종류와 정확한 용량은 알 수 없으므로, 항응고제 등과 소장 출혈 사이의 의학적인 인과관계까지 엄밀하게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이나, 이렇듯 의학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사정만으로는 이와 구분되는 법률적인 개념인 상당인과관계의 존재를 추단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4) 망인은 항응고제 등을 약 1년의 요양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투약한 것이다. 따라서 부검 시점에 이르러 망인의 혈액에서 검출된 항응고제 등의 농도가 정상 범위 내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전까지 망인에게 장기간에 걸쳐 투여된 항응고제 등의 영향을 가볍게 보기는 어렵다.
이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도 위와 같은 부검 결과에 불구하고 항응고제 등이 망인의 소장 출혈과 무관하다고 단언하지는 않고 있다.
5) 이 사건에서 제출된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보면, 항응고제 등의 복용이 소장에 다량의 출혈을 발생시킨 유일하고도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항응고제 등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망인의 소화기관 상태가 약화됨으로써 소장 출혈이 더욱 용이하게 발생하였거나 그 출혈량이 사망에 이를 만큼 증가된 것일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는 없고, 그러한 가능성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희박하다고 볼 근거도 없다.
6) 그렇다면 망인이 항응고제 등을 투약한 기간에 비하여 실제 투약량은 적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뒷받침할 반증이 없는 이상, 망인이 이 사건 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처방받은 항응고제 등으로 인하여 출혈의 위험이 증가하였고, 이것이 다량의 소장 출혈로 이어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
라. 소결론
그렇다면 위와 다른 전제에서 내린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3. 결 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