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는 대표자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하거나 제보를 주동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한 행위는 해고에 해당한다.]
【서울고등법원 2020.2.11. 선고 2019나2029189 판결】
• 서울고등법원 제38민사부 판결
• 사 건 / 2019나2029189 해고무효확인
• 원고, 항소인 /
• 피고, 피항소인 / ○○원
• 제1심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6.13. 선고 2018가합524653 판결
• 변론종결 / 2019.12.03.
• 판결선고 / 2020.02.11.
<주 문>
1.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2017.6.27.자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기초사실
가. 피고는 태권도의 승품, 승단 심사 및 태권도 보급을 위한 교육사업 등을 영위하는 단체이고, 원고는 2008.12.28. 피고에 입사한 근로자이다.
나. 서울강남경찰서는 피고의 전 대표자인 오○○ 원장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하여 수사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원고는 2017.5.25., 2017.6.10., 2017.6.24. 등 수차례에 걸쳐 서울강남경찰서에 출석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다. 오○○은 2017.6.21. 원고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원고가 위 참고인 조사에서 어떤 내용으로 진술하였는지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 도중 원고는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된 사직서(이하 ‘이 사건 사직서’라고 한다)를 즉석에서 수기로 작성하여 오○○에게 교부하였고, 피고는 2017.6.27.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였다.
라. 오○○은 구속기소 되었고, 업무방해 등의 범죄사실이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아 확정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 갑 제3호증의 1 내지 3, 갑 제8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의 주장
원고는, ‘경찰조사에서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고, 오○○의 범죄혐의 제보를 주동한 사람이 원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오○○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교부한 것으로서, 이 사건 사직서 제출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이고, 이를 수리하는 행위는 실질적인 해고에 해당하는데, 원고를 해고할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위 해고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경찰조사에서 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였고, 이러한 사실이 오○○에게 알려져 오○○과의 신뢰관계가 무너지자 더 이상 오○○을 모시기 힘들다며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서, 원고와 피고의 근로관계는 원고의 사직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종료되었다고 다툰다.
3. 판 단
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대법원 1993.1.26. 선고 91다38686 판결 등 참조).
나. 갑 제2호증의 4, 갑 제3호증의 3, 갑 제5호증의 1 내지 4, 갑 제7호증의 1 내지 3, 갑 제8호증, 을 제1 내지 3호증, 을 제5호증의 각 기재와 당심의 원고본인신문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의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는 사직의 의사 없는 원고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후 이를 수리한 것으로서, 피고가 2017.6.27.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한 행위는 해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거기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 해고는 무효이며, 피고가 이를 다투는 이상 원고로서는 확인을 구할 이익도 있다.
1) 원고는 2017.6.21. 오○○과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피고의 노동조합 위원장인 나○○을 찾아가 ‘오○○으로부터 허위진술 강요 및 진술번복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였다’고 말하며 자문을 구하였다. 이에 나○○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조언하였고, 원고는 2017.6.21. 당일 노동조합에 가입하였으며, 피고의 노동조합은 같은 날 피고의 사무총장에게 원고가 2017.6.21.자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였음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또한 원고는 2017.6.24.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원측에서 억압이나 회유를 하지 않고 있나요’라는 사법경찰관의 질문에 대하여 ‘2017.6.21. 제가 ○○원 원장실에 들어가자 오○○이 니가 사건 주모자라고 참모들이 이야기하는데 맞냐고 하여 제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말라 그랬더니 자기는 니가 주모자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참모들이 자르라고 해도 참고 있다면서 주모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한테 확인시켜 줄 수 있냐 그럼 니가 나한테 사표를 써 줄 수 있냐고 하여 제가 어떤 내용으로 사표를 쓸까요 하고 묻자 일신상의 문제로 사표를 써 달라고 하여 제가 원장실에서 직접 작성하였다’라고 진술하여,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던 당시의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나아가 피고가 2017.6.27.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자, 원고는 2017.7.12.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직원지위확인가처분을 신청하였고, 2017.7.25. 오○○을 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하였으며, 2017.9.19.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등 이 사건 사직서의 수리를 다투는 법적 조치를 지체 없이 취하였다.
원고의 이러한 행위들은 진정한 사직의 의사로 사직서를 제출한 사람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2) 원고가 2017.6.21.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기 전에 사직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거나, 사직을 고려할 만한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직과 관련한 어떠한 표현을 하였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다.
그리고 원고는 2017.6.21.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던 당일에도 해외 출장에서 돌아와 자신의 근무지인 무주 소재 연수원으로 내려가던 중 서울 소재 오○○의 사무실로 오라는 지시를 받고 오○○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가 즉석에서 수기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것으로서, 이 사건 사직서 작성 직전까지도 근무지에 복귀하여 근무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원고는 2017.6.21. 오○○과 대화를 마치고 당일 저녁 무주 소재 연수원으로 복귀하여 그 다음날부터 정상적으로 근무하였으며, 2017.6.24. 무주에서 개최된 무주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내빈에 대한 접대를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사직서의 작성·제출을 전후하여 원고에게 진정한 사직의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사정들을 찾을 수 없고, 이러한 원고가 오○○과의 대화 도중 갑자기 사직의 의사를 가지게 된 특별한 사정변경으로 무엇이 있었는지에 관하여 피고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고 있지 아니하다.
3) 이 사건에 제출된 각 사실확인서에서, 피고의 노동조합 위원장 나○○은 ‘2017.6.21. 원고가 자신을 찾아와 오○○으로부터 허위진술 강요 및 진술번복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했다고 말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이 사건 사직서 작성 당시 원고의 근무지인 피고 연수원의 원장 김○○은 ‘오○○이 원고에게 경찰의 채용비리 및 공금횡령 수사사건을 제보한 주범이 원고라고 하면서 원고가 주범이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며 주범이 아니라면 사직서를 써 줄 수 있냐는 강요에 못 이겨 사직서를 써 주었다는 얘기를 원고로부터 들었다. 주범이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왜 사직서를 써 주었냐고 원고에게 화를 내자, 원고는 주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써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고 진술하였으며, 피고의 직원 이○○, 김△△ 등도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원고는 자신이 주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오○○의 요구에 따라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것이므로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비록 이들이 원고와 오○○ 사이의 대화를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고 원고로부터 전해들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전해들은 시점이 이 사건 사직서가 작성된 당일 또는 그 직후인 점, 이들의 진술 취지가 모두 일치하는 점, 나○○은 원고로부터 얘기를 들은 후 원고를 노동조합에 가입시키는 등 실제 조치를 취하기도 한 점, 김○○은 ‘사직서를 왜 써 주었냐고 화를 내었다’는 등으로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점, 이들과 반대의 취지로 진술하는 다른 사람의 진술서 등은 제출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각 사실확인서의 진술들을 쉽게 배척할 수 없다.
4)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기 전에도 오○○에게 사직서를 3번 제출한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오○○이 자신에 대한 원고의 충성심이나 신뢰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직서 작성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고, 피고는 원고의 방만한 근무태도가 문제되자 반성하고 있다는 표현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바, 어느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와 오○○ 사이에서는 실제로 사직할 의사 없이 형식적으로 사직서가 작성·수수된 경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진정한 사직의 의사 없이 오○○에 대하여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용도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교부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부합한다.
5) 원고는 2017.5.25. 경찰조사를 받은 후 2017.6.10.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2017.6.8. 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에서 오○○은, 원고가 경찰조사에서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을 의심하면서, 향후 있을 추가조사에서는 원고의 종전 진술을 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번복하도록 종용하였고, 원고는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한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는데, 그 대화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오○○ : 그렇다면 니가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진술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 내가 들은 바에는 ‘처음부터 부원장 그런 의도 없이 해서 나는 구매해 가지고 부원장 다 줬다’이렇게 진술했다는 첩보를 들었어요. 원 고 : 그거는 뭐 일단 보시면 아시겠죠 거기 그 오○○ : 응 그러니까 내가 그래서 내가 음 만일에 그러면 니하고 딜을 한번 하자. 만일에 니가 이거 진술했다면 어떻게 할래? 원 고 : 아니 거기 내용 보시면 알겠지만 오○○ : 아니 그러니까 니가 그렇게 진술했다면 어떻게 할래? 니 양심을 걸고 원 고 : 아니 지난번에 원장님한테 말씀하신대로 뭐 제가 사표를 쓰든지 뭐 해야 되겠죠 오○○ : 아 그래? 원 고 : 예 오○○ : 아무튼 그러면 그렇게, 그렇게 하자 |
피고는 위 대화 내용을 근거로 원고가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이미 사직의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대화 내용에서 보듯이, 오○○이 “딜을 한번 하자”라고 말하면서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이 밝혀지는 경우의 제재조치를 요구한 것에 대하여 원고가 ‘사표를 쓰든지 해야 되겠죠’라고 언급한 것으로서, 이러한 원고의 발언이 진정한 사직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위 대화 내용에 의하면, 오○○이 경찰조사와 관련하여 원고를 압박하면서 그 압박의 수단으로 사직서 작성이 거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6)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직후 노동조합장 나○○을 만나 ‘결백을 증명하는 용도로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였다’는 취지로 말한 이래 위 가처분 사건, 오○○에 대한 고소 사건,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거쳐 이 사건의 당심 변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여야 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2017.6.27.자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박영재(재판장) 박혜선 강경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