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요지>
[1] 심판대상조항(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제2호)이 업무상 재해의 인정요건의 하나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고 근로자나 그 유족(이하 ‘근로자 측’이라 한다)에게 그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재해근로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보상과 생활보호를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합리성이 있다.
입증책임분배에 있어 권리의 존재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권리근거사실에 대하여 입증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입증책임분배에 관한 기본원칙에 따라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이를 주장하는 측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대법원 역시 그 입증책임이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업무상 재해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가 이를 입증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입증책임의 분배가 입법재량을 일탈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은 각 질환별로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규정하면서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하고 있는바, 적어도 그에 해당하는 질병에 대하여는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있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정도를 완화하는 판시를 하고 있다. 또한 산재보험법 등은 근로복지공단으로 하여금 사업장 조사 등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실질적으로 조사·수집하게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사실상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근로자 측이 현실적으로 부담하는 입증책임이 근로자 측의 보호를 위한 산재보험제도 자체를 형해화시킬 정도로 과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청구인들의 사회보장수급권을 침해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2] 보충의견(재판관 안창호) 있음.
◆ 헌법재판소 2015.6.25. 선고 2014헌바269 결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제1호 등 위헌소원]
♣ 청구인 / 1. 서○인, 2. 서○실, 3. 서○덕, 4. 서○엽, 5. 서○기
♣ 당해사건 / 부산고등법원 2013누2457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금 부지급처분 취소
<주 문>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0.1.27. 법률 제9988호로 개정된 것) 제37조제1항제2호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 유>
1. 사건개요
망 서○일(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부산 사상구 ○○동 소재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중인 2010.9.25. 05:50경 위 아파트 경비실에서 ‘상세불명의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 심장사(추정)’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망인의 형제자매인 청구인들은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라 한다)을 상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하였으나, 공단은 2011.1.26.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
청구인들은 위 부지급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그 항소심 계속 중(부산고등법원 2013누2457),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2014.5.28. 기각되자(부산고등법원 2014아23), 2014.7.4.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청구인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 전체를 심판대상으로 청구하고 있으나, 당해사건 재판의 전제가 되는 부분은 위 규정 중 ‘제2호 업무상 질병’ 부분이므로, 심판대상을 이 부분으로 한정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0.1.27. 법률 제9988호로 개정된 것) 제37조제1항제2호(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0.1.27. 법률 제9988호로 개정된 것)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업무상 질병
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
나.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다.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관련조항]
[별지] 기재와 같다.
3. 청구인들의 주장 요지
근로자나 그 유족(이하 ‘근로자 측’이라 한다)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나 정보에 대한 접근이 현저하게 제한되어 있어 업무상 재해를 입증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심판대상조항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근로자 측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고 있는 것은 근로자의 유족인 청구인들의 유족급여수급권을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청구인들의 재산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2조제3항에도 위배된다.
4. 적법요건의 검토
고용노동부장관은, 심판대상조항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고, 입증책임을 누구에게 부과할 것인가의 문제는 법률의 해석에 관한 문제에 불과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입증책임이란 특정한 법률효과의 발생·불발생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사실의 존부가 불분명한 경우에 어느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사실을 확정시킬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고, 입증책임규범은 사실의 존부불명의 경우에 법관으로 하여금 재판을 할 수 있게 하는 보조수단으로 기능한다. 이와 같이 입증책임규범은 본안판결의 내용을 정하는 재판규범으로서 기능하고(헌재 2007.10.25. 2005헌바96), 대법원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입증책임분배에 관한 주장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청구인들과 같은 근로자 측에게 부담시키는 심판대상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고 있는 것으로서 적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본안에 관한 판단
가. 업무상 재해와 입증책임 문제
(1) 우리나라는 1963.11.5.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에 근거하여 1964.1.1.부터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하여 그 재원으로 사업주를 대신하여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보상을 해 주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이라 한다)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산재보험법은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므로, 근로자나 그 유족이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험급여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해당 재해가 업무상 재해임이 인정되어야 한다. 산재보험법은 1963년 제정된 이래 ‘업무상 재해’와 관련하여 그 정의규정만을 두고 있다가, 업무상 재해의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지적과 함께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2007.12.14. 법률 제8694호로 전부 개정하여 제37조에서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을 신설하였다.
(2) 위와 같이 신설된 산재보험법 제37조는 제1항에서 업무상 재해를 ‘제1호 업무상 사고’와 ‘제2호 업무상 질병’으로 구분하여 규정하면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으로, 근로자가 제2호의 가. 내지 다.목에 해당하는 사유로 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고, 아울러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3) 한편 대법원은 심판대상조항이 신설되기 전부터,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간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왔고, 심판대상조항이 신설된 이후에도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 즉 근로자 측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음을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89.7.25. 선고 88누10947, 2012.5.9. 선고 2011두30427 판결 등 참조).
나. 심판대상조항의 위헌 여부
(1) 문제되는 기본권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근로자 측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근로자의 유족인 청구인들의 유족급여수급권을 박탈하는 것으로서, 청구인들의 재산권 및 행복추구권, 근로의 권리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34조제2항은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의무를, 같은 조제6항은 재해예방 및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산재보험법상의 유족급여는 이러한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근거하여 산재보험법에 구체화된 사회보장적 성격의 보험급여라고 할 것이다(헌재 2005.7.21. 2004헌바2; 헌재 2012.3.29. 2011헌바133).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유족급여의 수급요건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서 유족급여수급권 자체의 인정 여부로 귀결되고, 이로 인하여 근로자의 유족인 청구인들이 궁극적으로 제한받게 되는 것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로서 사회보장수급권이 될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는 이에 대하여만 판단하기로 한다.
(2) 사회보장수급권의 침해 여부
(가) 산재보험제도는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업무상 재해라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방식에 의하여 대처하는 사회보험제도이므로, 이 제도에 따른 산재보험수급권은 이른바 ‘사회보장수급권’의 하나로서 국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급부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헌법규정만으로는 이를 실현할 수 없고, 법률에 의한 형성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이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을 가지는 산재보험수급권은 법률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권리로서 국가가 재정부담능력과 전체적인 사회보장 수준 등을 고려하여 그 내용과 범위를 정하는 것이므로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자유영역에 있는 것이고, 국가가 헌법 제34조에 따른 사회보장의무에 위반하여 생계보호에 관한 입법을 전혀 하지 아니하였거나 또는 그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여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헌재 2005.7.21. 2004헌바2; 헌재 2004.10.28. 2002헌마328 등 참조).
(나) 산재보험법은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함과 동시에 한정된 재원으로 재해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호 내지 보상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을 충실히 하기 위하여 보험급여의 수급요건 등을 일정한 기준에서 제한하고 있다.
심판대상조항이 업무상 재해의 인정요건의 하나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고 근로자 측에게 그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도 재해근로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보상과 생활보호를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업무상 발생한 모든 재해를 산재보험으로 보장하거나 재해근로자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면해 준다면, 재해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다 많이 보장할 수는 있겠으나, 보험재정의 건전성에 문제를 발생시켜 결과적으로 생활보호가 필요한 근로자와 그 가족을 보호할 수 없게 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근로자 측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다) 한편, 입증책임분배에 있어 권리의 존재를 주장하는 당사자는 권리근거사실에 대하여 입증책임을 부담하고, 권리의 존재를 다투는 당사자는 권리장애사실, 권리소멸사실 또는 권리저지사실에 대하여 입증책임을 진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입증책임분배에 관한 기본원칙에 따라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이를 주장하는 측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대법원 역시 그 입증책임이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측에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업무상 재해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가 이를 입증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입증책임의 분배가 입법재량을 일탈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라) 다만, ‘업무상 사고’와 달리 ‘업무상 질병’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하는데다가, 근로자 측은 전문적 지식이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산업화에 따른 여러 유해환경으로 인하여 현재까지의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는 등 ‘업무상 질병’에 있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이 근로자 측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법 제37조제3항은 업무상 재해의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마련된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은 업무상 질병을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을 비롯한 12가지 질병계통으로 분류한 다음 각 질환별로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위 기준에는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가 예시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그에 해당하는 질병에 대하여는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 역시 “근로자의 업무와 질병 또는 위 질병에 따른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하나, 다만 그 인과관계의 입증 정도는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발병 경위, 질병의 내용, 치료의 경과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하며,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입증이 있는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고,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면서(대법원 2000.5.12. 선고 99두11424 판결, 2004.3.26. 선고 2003두12844 판결 등 참조),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있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정도를 완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법 등은, 중립성과 전문성을 지닌 공단으로 하여금,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근로자의 소속 사업장이나 산재보험 의료기관 등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산재보험법 제117조, 제118조), 공단의 보험급여 부지급 결정 등에 불복하는 자가 심사청구를 하는 경우 그 심리를 위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청구인에게도 조사 신청권을 부여하며(산재보험법 제105조제4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나 그 밖에 업무상 질병을 판정할 수 있는 기관에 업무상 질병 여부에 대한 자문을 구하거나(산재보험법 시행규칙 제22조) 업무상 질병 여부의 결정을 위하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근로자의 질병과 작업장의 유해요인의 상관관계에 관한 직업성 질환 역학조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산업안전보건법 제43조의2, 동법 시행규칙 제107조의2 제1항제2호)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제도들은 공단으로 하여금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실질적으로 조사·수집하게 하는 것으로서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사실상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근로자 측이 현실적으로 부담하는 입증책임이 근로자 측의 보호를 위한 산재보험제도 자체를 형해화시킬 정도로 과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마)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청구인들의 사회보장수급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6. 결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다.
7.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
나는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지는 않지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있어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므로, 다음과 같이 보충의견을 개진한다.
법정의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업무상 질병은 업무상 사고와 달리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하여 근로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이 용이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 측은 전문적 지식이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산업화에 따른 여러 유해환경으로 인하여 현재까지의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는 등 업무상 질병에 있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이 근로자 측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비록 산재보험제도에 있어 그 보험급여의 지급대상 선정이나 그 지급요건 및 방법 등을 결정하는 것이 입법정책에 관한 문제이고 또 입법자의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더라도, 그 동안 우리나라는 경제규모나 국가의 재정능력 등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재해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점차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은 업무상 질병에서까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근로자 측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근로자 측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법률상 추정 규정을 두는 등의 방법으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과거 스웨덴이 업무상 요인에 의하여 발생한 질병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추정되도록 하였다가 보험급여비용의 폭증으로 이를 폐지한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방안이 보험재정의 파탄이나 근로자 측의 도덕적 해이 및 그로 인한 남소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어 제도화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법정의견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은 각 질환별로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함으로써 적어도 그에 해당하는 질병에 대하여는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데, 문제는 위와 같은 인정기준이 근로자 측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로 잘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라 할 것이므로, 이를 위하여 전문가들로 하여금 산업구조 및 작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는 질병을 과학적으로 조사·체계화하도록 한 후 이를 반영한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의 내용을 정기적으로 보완·개정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인다.
또한 산재보험법 등이 공단으로 하여금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실질적으로 조사·수집하도록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실시 여부를 공단의 재량에 맡겨 두고 있어 근로자 측의 보호에 불충분하다고 보이므로, 공단으로 하여금, 사업장 조사 등 일정한 자료의 조사·수집에 있어서는, 근로자 측의 신청이 있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의무적으로 실시하여 그 내용을 근로자 측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전문기관 자문이나 역학조사 등에 있어서도 다수의 재해근로자가 유사한 작업환경에서 유사한 질환으로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고 그 질병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논란이 야기 되는 등 일정한 경우에는 이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것 역시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위헌이라고 선언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지만 입법자는 재해근로자나 그 가족을 보호함에 미흡함이 없도록, 앞서 살핀 바와 같은 방안 등을 포함하여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있어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임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