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약 23년 동안 본드를 이용해 꽃신을 제작한 망인에게 교모세포종이 발병하고 그로 인해 사망한 사안에서, 교모세포종의 발병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랜기간 열악한 환경에서 유해화학물질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요인이 교모세포종을 발병케하였다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한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 사례.


【서울행정법원 2024.9.11. 선고 2021구단79530 판결】

 

• 서울행정법원 판결

• 사 건 / 2021구단79530 요양불승인처분취소

• 원 고 / A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24.07.17.

• 판결선고 / 2024.09.11.

 

<주 문>

1. 피고가 2021.10.28.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 주위적 청구취지: 주문 제1항 기재와 같다.

○ 예비적 청구취지: 피고가 2021.10.8. 망 B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망 B(19**.**.**.생, 이하 ‘망인’이라 한다)는 2001.7.1.경부터 약 23년 8개월 동안 고무제품(꽃신 등)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인천시 계양구 소재 C꽃신(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에서 MEK(Methyl Ethyl Ketone. 효과적이고 흔하게 사용되는 용제로 고무, 레진 및 비닐 필름 공정 등에 사용되는 유기화합물)를 사용해 본드를 용해하고 용해한 본드에 당일 작업할 꽃신 굽을 넣어서 본드를 골고루 묻히는 작업, 본드를 사용하여 꽃신틀에 신발 밑창과 굽을 붙이는 작업 등(이하 ‘이 사건 업무’라 한다)을 수행하였다.

나. 망인은 2020.3.경 교모세포종(악성뇌종양), 수두증(이하 위 각 상병을 통틀어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을 진단받았다. 망인은 노무법인 D 소속 공인노무사 E를 대리인으로 하여 2021.6.24. 피고에게 ‘이 사건 업무로 인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라고 주장하면서 요양급여를 신청한 후 2021.7.27. 사망(직접 사인: 뇌간 손상, 간접 사인: 악성뇌종양으로 인한 뇌압 상승)하였다. 망인이 사망할 당시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원고, 자녀 2명이 있었다.

다. 피고는 2021.10.8. 수신자를 ‘망인(대리인 E)’으로 하여 ‘이 사건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망인의 요양급여신청을 불승인하는 결정을 하고, 2021.10.28. ‘받는 사람 원고’로 하는 등기우편으로 위 요양급여불승인결정통지서를 발송하였다.

[인정 근거] 갑 제1 내지 4, 30호증, 을 제1, 2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소 중 주위적 청구 부분에 대한 피고의 본안전항변

 

가. 당사자들의 주장

1) 피고의 주장

피고는 망인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망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불승인결정을 하였는바, 위 처분은 망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무효이고, 원고는 망인의 유족으로서 미지급 보험급여 내지 유족급여청구권만을 가질 뿐 위 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다. 따라서 원고가 제기한 이 사건 소 중 주위적 청구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처분의 취소를 구하거나 당사자 적격이 없는 자가 제기한 것으로 부적법하다.

2) 원고의 주장

피고가 원고를 수신인으로 하여 요양급여불승인결정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한 이상 그 발송일(2021.10.28.)을 기준으로 원고를 상대로 요양불승인결정을 한 것이다.

 

나. 처분의 존재 여부 및 상대방에 관한 판단

1) 일반적으로 행정처분이 ‘주체·내용·절차와 형식’이라는 내부적 성립요건과 ‘외부에 대한 표시’라는 외부적 성립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는 행정처분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대법원 1998.8.20. 선고 97누6889 판결 참조). 행정처분의 외부적 성립은 행정의사가 외부에 표시되어 행정청이 자유롭게 취소·철회할 수 없는 구속을 받게 되는 시점을 확정하는 의미를 가지므로, 어떠한 처분의 외부적 성립 여부는 행정청에 의해 행정의사가 공식적인 방법으로 외부에 표시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7.11. 선고 2016두35144 판결 참조). 그리고 상대방 있는 행정처분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의사표시에 관한 일반 법리에 따라 상대방에게 고지되어야 효력이 발생하고(대법원 2018.10.25. 선고 2015두388856 판결 등 참조), 행정소송법 제20조제2항이 정한 ‘처분 등이 있는 날’은 그 행정처분의 효력이 발생한 날을 의미한다(대법원 2019.8.9. 선고 2019두38656 판결 참조).

한편,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81조제1항은 ‘보험급여의 수급권자가 사망한 경우에 그 수급권자에게 지급하여야 할 보험급여로서 아직 지급되지 아니한 보험급여가 있으면 그 수급권자의 유족(유족급여의 경우에는 그 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유족)의 청구에 따라 그 보험급여를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77조는 ‘법 제81조에 따른 미지급 보험급여 수급권자의 결정에 관하여는 법 제65조제1항·제2항 및 제4항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법령에 따르면,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의 수급권자가 사망한 경우 그에게 지급하여야 할 보험급여로서 아직 지급되지 아니한 보험급여의 수급권은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순위에 따라 우선순위에 있는 유족이 이를 승계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석함이 마땅하다.

2)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살피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2021.10.8. 결재권자의 결재를 통해 피고의 망인의 요양급여신청에 대한 불승인결정이 내부적으로 성립하였고, 피고가 2021.10.28. 원고에게 위 요양급여불승인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한 이상 피고의 행정의사가 외부에 표시되어 피고가 자유롭게 취소·철회할 수 없는 구속을 받게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여기에 앞서 본 법리에다가 이 사건의 경우 피고가 망인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망인을 수신인으로 하는 요양급여불승인결정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하였다 하더라도 그 등기우편의 수신인이 산재보험법에 따른 최우선순위 유족인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로 되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위 요양급여불승인결정의 상대방은 망인의 요양급여 수급권의 승계권자인 원고라 할 것이고, 다만 위 요양급여불승인결정의 수신인 표시(망인)가 그릇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3) 피고는 2021.10.8. 이미 망인의 대리인에게 유효하게 요양급여불승인결정통지서를 송달하였으므로 위 처분의 상대방은 원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을 제13, 14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망인이 이 사건 요양급여신청을 할 당시 공인노무사 E에게 ‘위 사건의 상대방 및 관계기관에서 본인에게 하는 통보의 수령 등’에 관한 사항을 위임한 사실, 피고는 2021.10.8. 위 요양급여불승인결정통지서가 첨부된 전자메일을 E에게 발송하였고, E가 같은 날 위 전자메일을 확인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망인과 E 사이의 위임계약은 망인의 사망에 따라 종료(민법제690조)되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피고의 위 2021.10.8. E에 대한 전자메일 발송행위가 ‘망인에 대한 적법한 행정처분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피고는 피고의 요양급여불승인결정의 상대방을 원고로 보는 경우 사실상 피고가 심사하지 않은 부분까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므로 불합리하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원고가 산재보험법에 따른 최우선순위 유족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결국 피고의 요양급여불승인결정 및 이 사건 소의 쟁점은 모두 ‘이 사건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로 동일하므로, 이 사건 소의 소송물이 피고가 심사하지 않은 부분까지 불합리하게 확장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 소결

따라서 피고가 2021.10.28. 원고에 대하여 요양급여불승인결정을 발송함에 따라 위 결정은 대내외적으로 유효하게 성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분의 상대방인 원고에게 고지되어 그 효력이 발생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이하 피고가 위와 같이 2021.10.28.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결정을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그러므로 원고가 이를 전제로 이 사건 소 중 주위적 청구 부분에서 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이상 위 주위적 청구 부분에 대한 피고의 본안전항변은 이유 없다.

 

3.  주위적 청구에 관한 주장 및 판단(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약 2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꽃신제작자로 근무하면서 지속적으로 유기용제 등 유해화학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직접적으로 노출되었고, 망인이 취급한 유해화학물질은 대부분 발암물질인 점, 원고가 이 사건 업무 수행을 위해 상당 기간 동안 과로 상태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업무가 원인이 되어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함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인정사실

○ 이 사건 업무 내용

- 본드 용해 → 묽어진 본드에 고무 신발 굽 전체를 넣고 흔들어서 골고루 묻힘 → 코팅 후 신발 밑창에 굽을 붙임 → 열을 가해 본드를 녹여 꽃신 겉면 접착 작업

○ 작업환경 측정 결과

- 이 사건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실시한 적 없음

○ 피고의 업무관련성 전문조사 필요성에 대한 자문 결과

- 1996.경부터 2019.경까지 꽃신을 만들면서 접착제 등을 사용하였다 하나, 교모세포종의 위험요인으로 유전적 요인이나 특정 질병과의 관련성이 일부 알려진 바는 있지만, 직업환경적 위험요인으로는 두경부 방사선 노출 정도 외에는 명확하지 않아 전문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사실상 없는 바,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판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판단

○ 망인의 과거 병력

- 건강보험수진내역 상 이 사건 상병 관련 특이사항 없음

○ 망인에 대한 진료기록 및 주치의의 의학적 소견

- 2020.3.26. F대학교 G병원에서 개두술을 통한 뇌종양 제거술 시행

- 2020.4.22. H대학 I병원 신경외과 외래 내원, 2020.4.29. ∼ 2020.6.12. 방사선 항암제 병행치료 후 2020.7.11.부터 항암제 치료, 수두증 발병으로 2020.11.7. 뇌실 복강 간 단락술(수두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뇌실과 복막 사이에 실리콘, 고무 튜브를 끼워 뇌척수액이 심방이나 복강으로 흐르도록 하는 수술) 시행

[인정 근거] 갑 제2, 4, 6, 8, 9, 15, 16, 17호증, 을 제3 내지 12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다.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여 안정적으로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작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한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첨단산업은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빈번히 바뀌고 화학물질 그 자체나 작업방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 산업재해의 존부와 발생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사업장이 개별적인 화학물질의 사용에 관한 법령상 기준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화학물질에서 유해한 부산물이 나오고 근로자가 이러한 화학물질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데, 이러한 위험을 미리 방지할 정도로 법령상 규제 기준이 마련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첨단산업 분야의 경우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규범적 차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기업 등 사업자의 과실 유무를 묻지 않고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을 하되,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도록 한다. 산업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발전하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은 이러한 기능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첨단산업은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는데, 그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은 근로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도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해관계조정 등의 필요성과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산재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4.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5.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보았듯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라. 판단

앞서 든 증거들과 갑 제23 내지 26, 36, 37, 38호증, 을 제5, 9 내지 12호증의 각 기재 및 영상, 이 법원의 K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및 사실조회회신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거나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비록 이 사건 상병 발병 원인 및 경위 등이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망인이 약 2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열악한 환경의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직접적으로 노출된 유해화학물질 등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이 망인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을 발병케 하였다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한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타당하다.

① 이 사건 상병 중 수두증은 교모세포종이 원인이 되어 발병한 일종의 합병증으로 보이는바, 결국 이 사건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중 교모세포종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라고 볼 수 있다.

② 망인이 약 2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사건 사업장에서 수행한 업무는 꽃신을 제작하는 것이었는데, 위 꽃신 제작을 위해서는 접착용 본드 사용이 필수였고, 위 본드는 작업 전에 용해제인 MEK 등에 녹여 묽게 만드는 용해작업(일명 ‘본드 비비기’)을 거쳐야 한다. 원고는 위 업무기간 중 약 3년 동안은 위와 같은 본드 용해작업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③ 위와 같이 이 사건 업무 전반적인 과정에서 용해제 및 고무풀 등 각종 유해화학물질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 사업장은 근로자들에게 보호복, 마스크, 장갑, 장화, 보안경 등과 같은 보호구를 제공한 적이 없고, 근로자들 역시 위와 같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수작업으로 이 사건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④ 2017년과 2018년에 이 사건 사업장에 대하여 이루어진 안전민간위탁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 사업장은 최대 60L 상당의 신발용 접착제(본드 등 유해화학물질)를 취급하고 1일 최대 5L까지 사용하지만, 근로자들을 위한 안전보건표지 및 안전보건교육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Material Safety Data Sheets. 화학물질에 대하여 유해위험성, 응급조치요령, 취급방법 등 16가지 항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자료) 관련한 조치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이 사건 사업장 내 근로자들에게 보호구를 지급했다는 대장이 전혀 작성되지 않았고, 근로자들 역시 작업 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는 부분, 유해화학물질을 보유·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및 경고표지를 비치하지 않은 부분, 유해화학물질 사용 시 증기가 발생함에도 상시 환기 및 국소배기 등을 실시하지 않는 부분 등에 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⑤ 이 사건 사업장과 같이 본드 등 유해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곳에서는 사용과정에서 발생되는 증기 배출을 위한 환기가 필수이나, 위 사업장에 이를 위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 특히 본드 용해작업은 이 사건 사업장 중 밀폐된 지하 작업장에서 이루어졌는데, 위 작업장에는 신발 제작에 필요한 각종 부자재와 박스 등이 쌓여있고, 그 안에서 근로자가 아무런 보호구 없이 본드와 유기용매가 담긴 드럼통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본드 용해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망인은 평소 본드 용해작업을 마친 후 밖으로 나오면서 ‘아유 어지러워’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이 사건 사업장의 환경, 망인의 근무기간 및 이 사건 업무 내용 등을 고려하면, 망인이 위와 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약 2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수의 유해화학물질에 포함되어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에 직접적·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음은 경험칙상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⑥ 망인과 함께 이 사건 사업장에서 23년 동안 근무한 J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한 근로자가 적게는 4명, 많게는 10명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위 사업장의 근로자들의 뇌종양 평균 유병율이 이 사건 업무에 종사하지 않은 일반인들의 뇌종양 평균 유병율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다고 볼 여지도 있다.

⑦ 이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의는 ‘교모세포종의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전적 요인(특정 유전적 변이들) 및 환경적 요인(방사선 노출) 등이 제시되고 있다. 직업적 노출, 특히 특정 화학물질에 노출된 경우 교모세포종 발병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나 일관성이 적어 그 연관성이 명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정 화학물질에 직업적으로 노출되었다고 해서 발병된 암이 반드시 직업성 암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노출물질의 종류와 양, 노출기간과 빈도, 개인적 취약성, 과학적 연구결과와 역학적 증거‘ 등이 필요하다. 7개국에서 진행된 INTEROCC(International Case-control study) 연구에서 2,000명의 뇌종양 환자와 5,565명의 대조군을 대상으로 뇌종양과 직업적 노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유기용매에 노출된 경우와 신경교종 발병 위험 간의 일관된 연광성이 나타나지 않았고, 용매에 대한 OR값(Odd Ratio. 위험요인에 대한 질병발생비율. OR=1.0이라면, 노출군의 질병 발생 가능성이 비노출군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은 1.0 미만으로 나타났으며, 종양의 등급에 따른 위험 증가도 관찰되지 않았는바, 이러한 결과는 유기용매 노출과 뇌종양의 발생에 대한 역학적 연구들의 일관성이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망인이 이 사건 업무 과정에서 장기간 복합유기용제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와 같은 사정이 이 사건 상병 발병의 위험을 증가시켰다고 볼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이 법원에 회신하면서도 ‘교모세포종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용인, 생활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원고가 이 사건 업무 과정에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화학물질들은 모두 혼합화학제품으로 이들은 수백 종의 다양한 화학물질이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혼합물의 경우 개별 성분의 발암성, 흡인유해성, 특정 표적장기독성, 생식독성 등을 일일이 평가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각 화학물질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모세포종의 발병에는 유전적 요인, 생활습관, 기타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사건 업무에 사용된 여러 복합유기용제는 여러 유기 화학물질이 혼합된 상태로 그 휘발성으로 인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라는 의학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결국 위 진료기록감정의의 의학적 소견은 교모세포종 발병에 대한 직업환경적 원인(장기간 지속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 등)이 현재로서는 의학적·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일 뿐 무관하다는 취지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위 진료기록 감정 회신 결과가 ‘망인이 이 사건 업무 과정에서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는 사정’과 이 사건 상병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단절된다는 근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⑧ 이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의는 7개국에서 진행된 INTEROCC(International Case-control study) 연구에서 ‘2,000명의 뇌종양 환자와 5,565명의 대조군을 대상으로 뇌종양과 직업적 노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유기용매에 노출된 경우와 신경교종 발병 위험 간의 일관된 연광성이 나타나지 않았고, 용매에 대한 OR값(Odd Ratio. 위험요인에 대한 질병발생비율. OR=1.0이라면, 노출군의 질병 발생 가능성이 비노출군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은 1.0 미만으로 나타났으며, 종양의 등급에 따른 위험 증가도 관찰되지 않았는바, 이러한 결과는 유기용제 용매 노출과 뇌종양의 발생에 대한 역학적 연구들의 일관성이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위 연구결과에서 유기용제에 1년 이상 노출된 사람과 5년 이상 노출된 사람을 각 4구간으로 나누어 OR값을 도출한 다음 기재 표를 살펴보면, 유해화학물질 노출량이 많아지는 남성의 경우 OR값이 1.01 ~ 1.86까지 나타나는 수치를 보이기도 한다. <표 생략>

또한 용매에 대한 부모의 직업적 노출이 소아뇌종양 발병의 위험 증가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출산 전 산모가 염소계 용매에 직업적으로 노출된 경우 소아뇌종양 발병 위험이 증가(OR=8.59, 95% CI 0.94–78.9)하고, 임신 전 1년 동안 아버지가 용매에 노출된 경우 역시 소아뇌종양 발병이 증가(OR=1.55, 95% CI 0.99–2.43)하였다’는 결과가 나왔고, 직업군에 따른 성인 신경교종 발병 위험과 관련한 연구에서는 ‘신발제작자와 가죽 관련 업무 종사자’의 OR값이 2.4로 나오기도 하였으며, 그 외 여러 연구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직업군에 따라 교모세포종의 유병율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연구결과들도 있다. ‘뇌 및 중추신경계 종양의 원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최근 역학 연구에서 고무 노동자, 정유 공장 노동자, 화학공장 노동자 등을 포함한 일부 블루칼라 직업군에서 뇌종양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이러한 노동자 대부분은 잠재적으로 여러 화학물질에 노출되지만 공통적으로 유기용매, 윤활유 등에 공통적으로 노출되는 부분이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있다.

위와 같은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현재 의학적·과학적으로 교모세포종의 직업환경적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판명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업무를 수행할 당시 지속적·직접적으로 노출된 다수의 유해화학물질이 이 사건 상병 발병과 절대적으로 상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적어도 위 상병의 원인이 되는 발암물질로 상당한 의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⑨ 피고는 이 사건 상병 발병과 관련하여 직업환경적 요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업무관련성 전문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후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2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떠한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직접적으로 노출되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망인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시간과 정도가 결코 짧다거나 적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사업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망인 외 다른 근로자 역시 뇌종양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사업장에서 사용된 유해화학물질의 종류 및 노출 정도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별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만연히 ‘교모세포종의 발병 원인이 현대 의학 수준에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견해만을 근거로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은 이 사건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있어 망인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될 수 있다.

⑩ 이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의는 ‘이 사건 상병은 평균적으로 60대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고 회신하였는데, 원고의 경우 만 54세에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는바 이는 위 평균 발병연령보다 비교적 이른 시점이라고 보인다. 또한 망인은 이 사건 상병 발병 이전까지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교모세포종과 관련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바, 이러한 사정 역시 이 사건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할 수 있다.

 

마. 소결

따라서 이 사건 상병과 이 사건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주위적 청구 부분은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인용하는 이상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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