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지적장애가 있는 근로자가 사고로 6개월 간 병가를 사용했고 병가기간이 종료되기 직전에 ‘회사의 퇴사권유를 이해하고 사직한다’는 취지의 사직서를 제출한 사안에서, 사직서 작성 경위 등에 비추어 원고는 사직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날인하였고 회사도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대전고등법원 2024.5.16. 선고 2023누12574 판결】

 

•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 판결

• 사 건 / 2023누12574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 원고, 항소인 / A

• 피고, 피항소인 /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

• 피고보조참가인 / B

• 제1심판결 / 대전지방법원 2023.9.7. 선고 2022구합101976 판결

• 변론종결 / 2024.04.04.

• 판결선고 / 2024.05.16.

 

<주 문>

1.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2. 중앙노동위원회가 2022.2.23. 원고와 피고보조참가인 사이의 중앙2022부해10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하여 한 재심판정을 취소한다.

3. 소송총비용 중 보조참가로 인한 부분은 피고보조참가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재심판정의 경위

 

가. 피고보조참가인(이하 ‘참가인’이라 한다)은 ‘C’라는 상호로 쓰레기수거 및 운반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참가인은 1999년경 고령군으로부터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용역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기 시작하였고, 2001년경 고령군 소속 환경미화원들을 고용승계하였다.

나. 원고는 1992년경 고령군에 환경미화원으로 취업하여 근무하다가, 2001.1.1.부터 위 가.항 기재 고용승계에 따라 C에 소속되어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였다.

다. C의 근로자는 총 21명으로, 현장 근로자 19명, 반장 1명, 민원 접수원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월 단위로 짜여진 배차표에 따라 배정된 구역을 돌며 생활폐기물을 수거·적재하는 승차업무와 정해진 구역을 빗자루로 청소하는 가로청소업무를 순환하여 근무한다.

라. C에는 공공연대노동조합 대구본부 환경지부 고령군지회와 C노동조합(이하 ‘기업노동조합’이라 한다) 2개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데, 원고는 기업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이고, D는 기업노동조합의 사무장이다.

마. 원고는 2020.10.경부터 승차업무를 수행하던 중 2021.1.14. 차량에서 낙상하는 사고(이하 ‘이 사건 낙상사고’라 한다)를 당하여 2021.1.15.부터 2주간은 연차휴가를 사용하였고, 2021.2.1.부터 7.31.까지 6개월간은 병가를 사용하였다.

바. 원고는 2021.7.28. ‘상기 본인은 회사에서 퇴사를 권유하기에 이를 이해하고 2021.7.31.부로 사직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의 사직서(이하 ‘이 사건 사직서’라 한다)를 작성하여 참가인에게 제출하였고, 참가인은 2021.7.31.자로 원고를 권고사직으로 인한 사직처리 하였다.

사. 원고는 2021.10.7. 참가인이 2021.7.28. 행한 근로관계 종료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였으나,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2021.12.8. ‘원고와 참가인 사이의 근로관계는 원고의 진의에 따라 작성된 이 사건 사직서가 제출됨에 따라 종료된 것이므로 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의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초심판정을 하였다(경북2021부해564호).

아. 원고가 초심판정에 불복하여 2022.1.6.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2022.2.23. 초심판정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하였다(중앙2022부해10호, 이하 중앙노동위원회의 위 기각결정을 ‘이 사건 재심판정’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3, 7, 8, 14호증(이하 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을가 제1, 3, 4, 5, 6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의 주장

 

원고는 건강이 회복되어 이 사건 낙상사고로 인한 병가를 마치고 출근하려고 하였으나, 참가인과 D는 원고의 여동생 E에게 원고의 사직을 강요하였다. 원고는 지적장애인으로 사직의 법률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였고, 사직 다음 날 곧바로 참가인의 아들이 원고 후임으로 채용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참가인 등의 기망으로 인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원고가 진정으로 사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측의 강압, 협박 및 기망으로 E의 권유에 따라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것에 불과하므로 2021.7.28. 자 근로관계 종료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이 사건 사직서가 유효하다는 전제에서 원고에 대한 해고가 없었다고 본 이 사건 재심판정은 위법하다.

 

3.  판단

 

가. 갑 제3, 12, 22, 26, 27, 31, 32, 33호증, 을가 제2, 3호증, 을나 제4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 증인 E, D의 각 증언, 변론 전체의 취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원고는 지능지수 69, 사회지수 65(만 10.4세 수준)의 지적장애인으로 경도의 정신지체 수준에 속한다. 다만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원고는 20년 이상 C에 소속되어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여 왔고, 일반인과 같은 정도로 원활한 대화를 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대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원고는 이 사건 낙상사고 이후 C 복직에 필요한 재활을 위해 노력해 왔고, 참가인, D 등 C 관계자 및 여동생 E에게 다시 복직하여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혔다.

2) E은 지적장애인인 원고를 대신하여 이 사건 낙상사고 직후인 2021.1.17.경 C에 연락하여 F(기업노동조합 지부장) 등에게 원고에 대한 병가 신청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문의하였고, 2021.1.18. 참가인과 통화하며 ‘2주 정도 쉬면 좋겠다는 진단서를 받았다’고 전하기도 하였다.

3) 참가인은 D에게 원고의 사직 등 문제를 E과 협의하라고 지시하였고, D와 E은 2021.1.경부터 2021.7.경까지 여러 차례 통화를 하였는데, D는 E에게 ‘다른 근로자들의 배려로 원고가 비교적 쉬운 가로청소업무 등을 해왔으나 원고가 다시 일을 한다고 해서 가로청소업무만을 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에서 원고를 대신해서 자기네 사람을 넣으려고 참가인을 압박한다. 원고로 인해 손해배상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는 등 원고가 다시 C에서 근무하는 것이 어렵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4) 한편 원고는 재활훈련을 지속하면서 2021.3. 중순경 C 차고지에 가서 탑차 및 상차 업무를 하기 위해 차에 타는 연습을 하는 등 복직을 위해 계속 노력하였다. 원고는 2021.3.17. 참가인과 통화를 하며 ‘일하는 거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는데, 참가인은 ‘사업장에서 사고날까봐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고, 누군가 다치면 이 사업을 영위하기 힘들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5) E은 2021.3.31. F과 통화하였는데 당시 F은 ‘원고가 (지적장애) 2급인지 몰랐는데, 2급은 환경미화원 일을 못하게 되어 있다’는 취지로 말하였고, 이에 대해 E은 “(2급이 환경미화원 일을 못하게 되어 있다면) 그러면 끝났네요. 그죠?”라고 대답하였다. E은 같은 날 D로부터 ‘2급은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6) 이후 E은 2021.7.6. 참가인과 통화를 하였는데, E은 ‘원고가 지금 많이 좋아졌다. 일을 한번 시켜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안 된다고 해 달라’고 얘기하였고, 이에 대해 참가인은 ‘솔직히 사고가 날까봐 겁난다. 사장 입장에서는 자진 퇴사하는 게 제일 좋다’는 취지로 말하였다.

7) 원고의 복직의사에도 불구하고 참가인과 E은 원고의 사직서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E은 사전에 언급 없이 사직서 작성 당일인 2021.7.28. 원고에게 연락하여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은 채 ‘도장을 찍어야 하니 같이 회사에 가자’고 하였고, 원고는 C 사무실에서 참가인 측과 E이 제시한 이 사건 사직서에 날인을 하였다. 그 이후 E이 원고에게 ‘더 이상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고 전하자, 원고는 이후부터 재활을 위해 지속해오던 운동을 그만 두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8) 한편 이 사건 사직서가 제출된 직후인 2021.8.1. 참가인의 아들 G이 C의 환경미화원으로 입사하였다. G은 ‘2021.8.1.부터 2022.8.30.까지 C 사업주인 아버지(참가인)에게 환경미화원 근무태만 사항을 속이고 급여 48,327,960원(월 4,027,330원 × 12개월)을 편취하였다’는 등 혐의사실로 고발되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2022.10.24. ‘근무태만사항을 속여 아버지(참가인)로부터 급여를 받아간 사항이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사항이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의 불송치 결정을 하였다.

 

나. 위 인정 사실에 따르면, 원고에게 지적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C에서 근로하고자 하는 의사는 분명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원고의 지적장애를 이유로 원고 본인이 배제된 채 E과 참가인 및 F, D 등 C의 기업노동조합 관계자와 사이에 원고의 사직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원고가 C에 근무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E이 임의로 원고의 사직을 결정한 후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사직서가 작성되기까지의 경위, 참가인이 원고의 사직 처리를 원고가 아닌 E과 협의한 정황, 원고가 사직서에 날인하기 전후 상황 등을 살펴보면, 원고로서는 이 사건 사직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날인하게 되었고, 그와 같이 원고가 자신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이 사건 사직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날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참가인으로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참가인은 ‘장애가 있는 원고가 가로청소업무 등 비교적 쉬운 업무를 함에 따라 다른 근로자들의 불만이 컸고, 사고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 등으로 원고가 C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져왔던 것으로 보이고, 그에 따라 근로의지가 강한 원고가 아닌 그 여동생 E을 설득하여 원고와의 근로관계를 해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인 참가인으로서는 장애인 근로자의 안정적인 근무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실시 등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직장 내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5조의2), 지적장애가 있는 원고가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업무수행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에 맞게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실제 장애가 있는 원고가 비 장애인과 동일하게 차량을 이용한 생활폐기물 수집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으나 가로청소업무에는 종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에 대하여 비장애인의 불만이 있었다고 하여 원고로 하여금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을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만약 원고의 업무수행능력 등을 이유로 원고와의 근로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그 사유가 정당하다면, 참가인으로서는 근로계약과 근로기준법 등 관계법령에 따른 해고 여부 등을 고려하는 것이 타당함에도, 우회적으로 원고의 가족을 통해 형식적인 사직서를 제출받는 방법으로 원고와의 근로관계를 종료시켰다. 이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동등한 인격적 주체인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

비록 참가인이 원고나 E을 기망하였다거나 이 사건 사직서의 작성을 강요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게 된 일련의 과정에서 E이 지적장애가 있는 원고를 대신하여 사직 관련 논의를 진행해 오던 중 E의 의사가 반영된 사직서를 작성하게 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 본인의 의사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작성된 이 사건 사직서를 내세워 원고와 참가인 사이의 근로관계가 합의해지에 의하여 종료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실질적으로는 원고의 의사에 반하여 원고를 사직시키고자 하는 참가인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관계가 강제 종료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와 같이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경우,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하였다면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것이어서 이는 해고에 해당한다.

 

다. 그럼에도 이 사건 재심판정은 ‘원고와 참가인 사이의 근로관계는 원고의 진의에 따라 작성된 이 사건 사직서가 제출됨에 따라 종료된 것’이라고 보았으므로, 위 재심판정은 위법하다.

 

4.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여야 하는데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이 달라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재심판정을 취소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준명(재판장) 김덕완 윤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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