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 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17.11.14. 선고 2016두 1066 판결 등 참조).
[2] 망인은 반도체 및 LCD 공장에서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기침, 가래 및 운동 시 호흡곤란이 있어 병원에 내원하였고, 우측 흉막 전이를 동반한 원발성 폐암(선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폐암이 뇌로 전이된 것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였다.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서울행정법원 2020.9.11. 선고 2017구합84082 판결】
• 서울행정법원 제3부 판결
• 사 건 / 2017구합84082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A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20.06.26.
• 판결선고 / 2020.09.11.
<주 문>
1. 피고가 2017.3.28.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망 B(C생,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2000.12.4. D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회사’라 한다)에 입사하였다. 망인은 반도체 및 LCD 공장에서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설비엔지니어로, 2000.12.4.부터 2005.4.30.까지 E 주식회사(이하 ‘E’라고만 한다) 화성공장에서, 2005.5.1.부터 2005.7.까지 F 주식회사(이하 ‘F’라고만 한다) 구미공장에서, 2005.8.부터 2013.6.28.까지 F 파주공장에서 근무하였다.
나. 망인은 기침, 가래 및 운동 시 호흡곤란이 있어 병원에 내원하였고, 2012.6.15.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우측 흉막 전이를 동반한 원발성 폐암(선암) 진단을 받았다. 망인은 2012.6.18. 국립암센터로 내원하여 2012.7.2.부터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2013.2.15. 폐암이 뇌로 전이된 것이 발견되었다. 망인은 2013.2.20.부터 2013.3.2.까지, 2013.3.15.부터 2013.4.13.까지 국립암센터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2013.5.27. 다시 입원하여 보존적 치료를 받던 중 2013.6.28.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2014.2.5.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2017.3.28. ‘망인의 업무내용상 발암물질인 비소나 전리방사선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고, 노출 되었더라도 노출농도가 낮으며, 폐암을 유발할만한 다른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므로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라.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2017.6.22. 산업 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는 2017.7.27. ‘직업성 폐질환 연구소의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망인의 폐암은 업무와 무관하게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망인의 사망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 근거나 의학적 소견이 미흡하므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라는 이유로 원고의 재심사청구를 기각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 을 제1호증(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 과정에서 별다른 안전장비 없이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 크롬, 니켈 등의 유해물질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되었고, 클린룸의 공기순환시스템을 통해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도 노출되었다. 이러한 유해물질은 폐암 발생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발암물질에 해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폐암 발병 및 이로 인한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나. 인정사실
1) 반도체 및 LCD 공장의 공정
가) 반도체 제조 공정은 ‘산화공정 - 포토공정 - 식각공정 - 이온주입(확산)공정 - 증착공정’ 순서로 이루어진다. ① 산화공정은 고온에서 산소나 수증기를 웨이퍼 표면과 화학반응을 시켜 웨이퍼 표면에 얇고 균일한 실리콘 산화막을 형성시키는 공정이다. ② 포토공정은 웨이퍼에 회로패턴을 형성시키는 공정으로, 웨이퍼에 감광액을 도포 한 후 유리판에 그려진 회로패턴에 자외선(UV)을 통과시켜 감광액 막에 회로패턴을 그리고(노광단계), 최종적으로 빛을 받은 부분 또는 빛을 받지 않은 부분의 감광액 막을 제거하는(현상단계) 공정이다. ③ 식각공정은 회로패턴을 형성하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④ 이온주입(확산)공정은 고온의 전기로 내에서 웨이퍼에 불순물을 확산시켜 반도체증 일부분의 전도형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⑤ 증착공정은 회로가 형성된 기판 위에 박막을 형성시키는 공정이다.
나) LCD 패널은 TFT 기관과 컬러필터 기관으로 구성되고, LCD 제조 공정은 ‘TFT공정, 컬러필터공정, 액정공정, 모듈공정’로 이루어진다. ① TFT는 액정에 신호를 전달하거나 차단하는 스위칭 소자로 증착/패턴공정(증착, 세정, 감광액 도포, 노광, 감광액 박리, 식각, 현상 등)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제조된다. ② 컬러필터는 블랙 매트리스로 분할된 적색, 녹색, 청색의 3가지 컬러의 염료나 안료로 증착/패턴공정이 반복되어 제조된다. ③ 액정공정은 각각의 제조공정을 거쳐 완성한 TFT 기관과 컬러필터 기관 사이에 액정 셀을 형성하는 공정이다. ④ 모듈공정은 각 공정에서 제작한 LCD 패널, 구동회로, 백라이트 등을 하나의 모듈로 조립하는 공정이다.
다) 망인이 설치 및 유지보수를 담당한 노광장비는 일정 시간 자외선(UV)을 쬐어 감광액과 반응하게 하여 패턴을 형성하는 노광공정(포토공정, 증착/패턴공정 중 일부)에서 사용되는 장비이다. 반도체 공장의 노광장비는 가로 2.3m, 세로 3.3m, 높이 2.7m 규모로 작업자가 내부에 들어가 작업하기 어렵지만, LCD 공장의 노광장비는 가로 9m, 세로 11.6m, 높이 5.8m 규모로 작업자가 내부에 들어가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크기이다. 한편 이오나이저(Ionizer)란 노광작업이 완료된 유리를 노광장비에서 분리할 때 2~3초간 전리방사선을 발생시켜 정전기를 제거하는 장치인데,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노광장비에는 이오나이저가 없지만 LCD 공장에서 사용하는 노광장비에는 이오나이저가 8개 정도 설치되어 있다.
2) 망인의 업무내용 및 근무환경
가) 망인은 2000.12.부터 2005.4.까지 E 화성공장에서 근무하였는데, 그 기간 중 2003.8.부터 2004.3.까지는 설치관련 교육 업무를, 나머지 기간에는 유지보수 서비스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망인은 2005.5.부터 2005.7.까지 F 구미공장에서 근무하였고, 2005.8.부터 2012.12.까지 F 파주공장에서 근무하였으며 2012.12.부터는 질병으로 휴직하였다. 망인은 F 파주공장에서 설치 및 유지보수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였고, 간헐적으로 G 주식회사 탕정공장에 출장을 가기도 하였다.
나) 망인이 E 화성공장에서 수행하였던 노광장비 설치작업에는 약 3~4주가 소요되었고, F 파주공장에서 수행하였던 노광장비 설치작업에는 총 90일이 소요되었는데, 45일은 조립작업을 하고 나머지 45일은 조정작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F 파주공장에는 LCD 생산라인이 7공장(P7)부터 9공장(P9)까지 설치·증설되었는데, 7공장에서는 2006.1.부터, 8공장에서는 2009.3.부터, 9공장에서는 2012.6.부터 각 제품 양산을 시작하였다. 망인은 7공장 설치 업무를 담당하였고, 주로 8공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였다. 각 공장 내부에는 수십 호기의 노광장비가 약 1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고, 전체 호기가 하나의 큰 밀폐된 클린룸 안에 위치해 있다.
다) 노광장비는 설치된 후 365일 24시간 가동하므로 유지보수 작업자들은 12시간씩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였다. 망인은 2010.4.1. 과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계속 주간근무(08:30부터 20:30까지)를 수행하였으나, 이 사건 회사에서 F 파주공장의 유지보수 업무 책임자 역할을 담당하였으므로 근무시간 외에도 노광장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호출을 받아 출근하여 작업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망인은 관리자로서 이 사건 회사의 다른 작업자들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수행하였다. 망인과 같은 유지보수 작업자들은 클린룸 내부나, 공장 내 클린룸 외부에 위치한 벤더룸, 또는 공장 외부 오피스텔에 위치한 이 사건 회사의 사무실에서 대기하다가 요청이 있을 경우 클린룸 내부에서 작업을 하였다. 불규칙적으로 1일 1회 정도 보수 작업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고, 유지보수 작업 당 약 2~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라) 노광장비 유지보수 작업 시에는 각 노광장비 뒤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이동하는데, 이때 작업 대상 노광장비 외에 다른 노광장비 등의 생산시설은 모두 가동 중인 상태이다. 노광장비 내부에는 공조기를 통한 공기순환시스템이 가동되었는데, 장비 위쪽에서 아래로 기류가 흐르고 아래에서 공기를 빨아들여 외부로 배출하지 않고 공조기로 보내서 케미컬 필터를 거쳐 다시 내부에서 순환되는 구조이다. 망인이 근무할 당시 작업자들은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면서 보안경, 방독면, 보호장갑, 보호복 등의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고, 부직포 재질의 마스크만 착용하고 근무하였다.
3) F 파주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2006~2010년도)
F 파주공장에서 실시한 작업환경측정에서는 포토공정 근로자에 대하여 n-초산부틸, 아세톤, 이소프로필알코올, 혼합유기화합물(EM), 수산화칼륨, 시클로핵사논 등의 유해인자에 관한 개인측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6년도부터 2010년도까지의 작업환 경측정결과 이소프로필알코올이 0.111~9.203ppm(기준치 200ppm 미만)으로 측정되는 등, 해당 유해인자가 검출되지 않거나 노출기준에 비해 상당히 미미한 수준으로 측정 되었다.
4) F 파주공장에 대한 작업환경평가 결과
가) 근로복지공단 직업성폐질환연구소는 2016.9.1. F 파주공장을 방문하여 작업환경평가를 실시하였다. 작업환경평가는 노광장비 유지보수 중 8가지 작업에 관하여 작업자 2인을 대상으로 금속성분에 대한 개인측정을 실시하고, 대조군으로 그 외 공정 및 외기에 대한 측정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 개인측정 결과 마그네슘, 니켈, 망간, 철, 구리, 아연이 검출되었고, 카드뮴과 납 성분이 극미량 검출되었으나, 이는 외기 등 대조군 농도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이었다. 작업 중 노광장비 내부에서 측정한 결과에서는 크롬이 미량 검출되었으나 노출기준에 비해서 극히 낮은 수준이었다. 비소나 베릴륨은 검출되지 않았다.
다) 위와 같은 작업환경평가를 바탕으로 직업성폐질환연구소는 ‘반도체/LCD 공장에서 사용하거나 발생하는 물질 중 비소, 전리방사선, 니켈 및 그 화합물을 제외하고 포름알데히드의 경우 아직까지 폐암과의 관련성은 증거가 제한적이고, LCD 공장에서 노출된 크롬은 금속 크롬으로 6가 크롬과 달리 폐암의 발암물질이 아니다.’라고 보았다. 또한 ‘전리방사선의 경우 F 파주공장의 2010년도 노광공정에서 근무한 근로자의 연간 유효선량이 0.10 이하~0.75mSv 수준이고, 이온주입공정이나 노광공정 가동 상태에서는 차폐가 이루어지며, 공정 가동 중단 상태에서는 장비 내부에서 유지보수 작업을 하더라도 전리방사선에 노출되지 않으므로, 망인이 업무 과정에서 노출된 전리방사선의 수준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환경부 산하 화학물질 배출/이동량(PRTR) 정보시스템 검색 결과 E 화성공장에서는 니켈 및 그 화합물의 배출과 이동이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망인은 위 공장에서 니켈 및 그 화합물에 노출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하였고, 개인측정 결과에 비추어 비소에도 노출된 바 없다고 보았다.
5) 망인의 건강상태
가) 망인은 약 16~19년간 흡연한 이력이 있었다. 망인의 2012.6.12.자 일산병원 진료기록에는 16년 동안 흡연을 하였다고 기재되어 있고, 2012.6.18.자 국립암센터 진료기록에는 19년 동안 1일 1갑씩 흡연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2013.5.27.자 국립암센터 진료기록에는 19년 동안 1일 0.5갑씩 흡연하였고 4년 전부터 금연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나) 망인의 2006년부터 2012년까지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에는 몇 차례 감기로 후두염, 기관지염, 비인두염 등에 관하여 진료를 받은 것 외에 별다른 수진내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망인이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2006.8.부터 2011.5.까지 매년 받은 직장건강검진 결과에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참고치보다 다소 높고 경도 지방간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6) 망인의 질병에 대한 의학적 소견
가) H학회 진료기록감정서(2020.1.15.)
•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비소, 니켈, 6가 크롬. 카드뮴, X-선은 폐암에 충분한 근거가 있는 발암물질이고, 벤젠은 폐암에 제한적 증거가 있는 유발물질이다. 포름알데히드는 비인두암, 백혈병에 충분한 근거가 있는 발암물질이지만 폐암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발생이 증가한다는 연구와 관련성이 높지 않다는 연구가 모두 있다. 이소프로필알코올은 폐암과의 관련성이 높은 물질로 분류되고 있지 않다.
• 망인은 반도체와 LCD 공장의 포토공정에서 감광제가 휘발하거나 노광과정에서 열분해 되는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이소프로필알코올에 노출될 수 있고, 클린룸 내부 근무로 인한 비소, 니켈, 크롬, 알루미늄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노출수준은 극미량이거나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
• 망인은 LCD 공장에서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X-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측에서는 노광장비 가동 상태에서는 통상 차폐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원고 측은 인터락을 무효로 해두고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학조사 보고서에 따른 F 파주공장 2010년도 노광공정 근무 근로자의 연간 유효선량은 일반인의 연간 허용 유효선량인 1mSv에 비해 낮다.
• 망인은 다른 공정이나 가동 중인 노광장비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반도체 및 LCD 공장에서 오퍼레이터보다 유지·보수 작업자가 사고 등의 비정상적 상황에서도 작업을 하고 노광장비 내부 작업 시 잔류 가스나 유해 물질에 직접 노출될 수 있어 노출 위험성이 더 높다.
• 유해물질 노출 기준치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장기간 노출, 누적 노출, 복합적 노출 시 폐암 발병 및 악화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 폐암은 40세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고, 50대에서 발생이 증가하면서 60~70대에서 가장 호발한다. 망인은 상대적으로 낮은 연령에서 폐암이 발병하였다.
• 장시간 근무, 과도한 업무강도, 스트레스 등과 폐암과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역학적 근거는 정립되어 있지 않다.
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진료기록감정서(2020.3.21.)
• 망인의 폐암은 선암(adenocarcinoma)으로 진단되었다. 폐암 중 편평상피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은 흡연과 연관성이 높고, 선암은 흡연과 연관성이 낮은 종류이다. 최근 국내에서의 폐암 유형 변화를 보면, 선암은 비흡연자에게 발생하는 폐암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 망인은 2011.5.6. 건강검진에서 흉부사진이 정상으로 판정되었지만, 2012.6. 3.5cm의 종괴, 다발성 폐결절, 악성흉막삼출액이 있는 폐암 4B기로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후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급격히 암이 진행하여 1년 후 사망하였다. 즉, 젊은 나이에 발병하였고 진행도 매우 빠르며 치료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매우 공격적인 형태의 폐암이다. 일반적으로 비흡연자 여성에게서 발견되는 선암은 작은 결절로 시작하여 수년에서 10년 이상에 걸쳐 서서히 진행하고, 흡연으로 인한 편평상피세포폐암은 주로 60대 이후에 발생하고 제자리암종에서 폐암 1~4기로 진행되는데, 망인의 폐암은 위 두 유형과는 다른 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흡연 외에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직업적 요인이 발병원인으로 강력히 의심된다.
• IARC에서 페암을 유발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는 물질로 분류한 것 중 망인과 관련 있는 것은 흡연, 비소, 니켈, 전리방사선이 있고,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제한된 근거를 가지는 물질로 벤젠이 있다. 일반적으로 발암물질이 2가지 이상 같이 작용할 경우 상승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각각의 발암물질의 농도가 낮아 효과가 약하더라도 여러 요인이 합쳐져 유전자의 변이가 일어나 암의 발생을 유발·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IARC의 발암물질 분류표를 보면 포름알데히드는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로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6가 크롬은 폐암에 대한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으나, 이와 달리 금속크롬은 건강에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정근거] 갑 제4 내지 6, 8, 9, 14 내지 20, 22호증, 을 제2 내지 6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H학회, 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에 대한 각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이 법원의 F 주식회사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다. 판단
1)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발병 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 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17.11.14. 선고 2016두 1066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앞서 인정한 사실, 갑 제10, 12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가) 반도체 및 LCD 공장의 포토공정에 관한 다수 연구에 의하면 노광과정에서 감광액의 화학반응에 의해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생성된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LCD 공장의 노광장비에 설치된 이오나이저에서는 전리방사선을 발생시킨다. F 파주공장에 대한 작업환경평가에서 실시한 개인측정에서는 니켈이 검출되기도 하였다. 국제 암연구소(IARC)의 분류에 따르면 전리방사선과 니켈은 폐암 유발에 관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는 물질에 속하고, 벤젠은 폐암 유발에 관한 제한적 근거를 가지는 물질에 속한다. 또한 포름알데히드의 경우에는 ‘폐암과 양의 상관성이 관찰되었지만 연구 결과들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여 아직 분류가 불가능한 상태’로 적시되어 있고 비인두암과 백혈병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는 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망인의 사망 당시 시행되었던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에서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에서 타르, 석면, 크롬 또는 그 화합물 노출에 의한 폐암만을 규정하고 있었으나, 현재 시행 중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에서는 니켈 화합물, 비소 또는 그 무기화합물, 전리방사선 등의 노출에 의하여 발생한 폐암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첨단산업현장의 작업환경에 존재하는 의심 유해물질과 특정 질병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는 데에는 충분한 연구결과가 필요하여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반도체 및 LCD의 포토공정에서 사용되는 감광액 등 다수 화학제품의 성분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까지 더하여 보면, 위와 같이 망인이 노출된 여러 유해물질이 망인의 폐암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나) 망인은 노광장비 설치 과정에서 감광액을 주입하거나 감광액이 코팅된 유리를 직접 만지면서 테스트 작업을 하였고, 이오나이저를 포함한 장비의 시운전을 하였다. 또한 노광장비 유지보수 작업 과정에서 장비 내부로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내부에는 감광제 반응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잔류가스가 남아 있어 독한 냄새가 나거나 유해물질이 뿌옇게 끼어 있었고, 이를 에어건으로 불어서 날리거나 직접 손으로 닦아내기도 했다. 노광장비에는 개방 시 작동이 자동으로 멈추도록 하는 ‘인터락’ 기능이 있으나, 망인의 동료는 망인이 근무하던 무렵에는 노광장비 문을 잘못 열어서 상당 시간 동안 장비가 멈추어 생산 차질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락을 ‘무효’로 해두었고, 이에 노광장비를 개방하고 작업자가 내부에 들어간 상태로 장비를 가동할 수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노광장비에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외관상 확인하기 어려울 경우 장비 안에 들어가 이어폰을 끼고 밖에 있는 작업자와 소통하면서 장비를 구동시키고 내부에서 확인하면서 원인을 찾는 방식으로 보수작업을 실시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과거 노광장비 챔버에 A4용지가 들어갈 정도의 틈새가 있어 F 측의 지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포토공정에서 일반적으로 근무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노광장비의 설치 및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작업자의 경우 차폐 시설이나 보호장구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부 사무실이나 공장 내 벤더룸이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쉬지 않고 가동되는 노광장비의 특성상 신속하게 유지보수를 시행하여 생산에 차질을 초래하는 영향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이상 작업자들이 클린룸 내부에 상주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유해물질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클린룸의 공조시스템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클린룸 내부에 머무르거나 유지보수를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여러 공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에 추가로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 F 파주공장에 대하여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실시된 작업환경측정 및 2016년 실시된 작업환경평가에서 측정된 유해물질 노출의 정도는 기준치에 상당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기는 하다. 그러나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실시된 작업환경측정은 포토공정의 일반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것으로, 측정의 대상이 된 물질에는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과정에서 노출 가능성이 있으며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비소, 6가 크롬, 니켈, 벤젠, 전리방사선 등의 항목이 포함되지 아니하였다. 2016년 실시된 작업환경평가의 경우 망인이 폐암 진단을 받은 후 4년 넘게 경과한 시점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망인이 근무하던 2005년부터 2012년까지의 작업환경을 그대로 반영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F 파주공장에서 2010년 노광공정에 근무한 근로자(오퍼레이터)의 전리방사선 연간 유효선량이 0.75mSv 이하(방사선작업종사자의 경우 유효선량한도 연간 50mSv)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노광장비의 설치나 유지보수 과정에서 시운전이나 가동 중인 장비 내부에서의 작업 등을 통해 망인의 경우 제대로 차폐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전리방사선 노출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라) 망인은 폐암 진단 전까지 반도체 공장에서 4년 5개월 동안, LCD 공장에서 7년 1개월 동안 근무하여 합계 약 11년 6개월 동안 노광장비의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에 종사하였다. 특히 망인이 F 파주공장에서 근무하던 기간 동안에 3차례에 걸쳐 공장이 증설되면서 망인이 수행하였던 업무의 양과 강도도 상당히 증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 따른 폐암의 발암요인별 잠복기의 범위를 살펴보면, 전리방사선의 경우 7~50년(평균 잠복기 15~35년), 니켈의 경우 6~30년(평균 잠복기 22년), 벤젠의 경우 6~14년이고(갑 제10호증 363쪽), 여러 발암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될 경우 잠복기 내지 발병에 필요한 기간이 보다 단축될 수 있다. 망인이 노광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에 종사하면서 지속적·누적적으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망인의 근무기간은 폐암이 발병하기에 짧지 않은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마) 망인은 2012.6. 폐암이 발견될 당시 만 38세였고, 약 1년 뒤 만 39세에 사망하였다. 통계적으로 폐암은 40세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고, 50대부터 발병이 증가하면서 60~70대 이후 발생률이 크게 증가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폐암 발병 연령은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망인에게는 폐암의 원인이 될 만한 기존 질환이나 가족력도 확인되지 않는다. 비록 망인에게는 폐암 진단 전까지 약 16~19년 동안의 흡연력이 있었으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I 감정의는 망인의 폐암은 흡연과 연관성이 낮은 유형인 선암이며, 일반적인 암의 진행양상과 달리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매우 급격하게 진행된 점에 비추어 흡연 외에 직업적 요인 역시 발병요인으로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망인이 업무상 노출되었던 유해물질들이 흡연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상승효과를 일으킴으로써 망인의 폐암 발병 및 악화로 인한 사망에 기여하였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
3.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유환우(재판장) 박남진 지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