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대법원 1987.4.28. 선고 86도2490 판결, 대법원 2009.2.26. 선고 2008도11722 판결,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4.8.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대법원 2015.3.26. 선고 2015도1301 판결 등 참조),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2]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3]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채권자에게 양도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되고, 주식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제3자에게 해당 주식을 처분한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4] 이와 달리 채무담보를 위하여 동산이나 주식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대법원 1983.3.8. 선고 82도1829 판결, 대법원 1998.11.10. 선고 98도2526 판결, 대법원 2007.6.15. 선고 2006도3912 판결, 대법원 2010.2.25. 선고 2009도13187 판결, 대법원 2010.11.25. 선고 2010도11293 판결, 대법원 2011.11.22. 선고 2010도7923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 회사의 은행에 대한 대출금 담보를 위해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자(회사 운영자)에 대하여 ‘은행(채권자)이 담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담보물을 보관·관리할 의무나 임무를 위배하여 타에 매각함으로써 채권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는 사실로 배임죄로 기소된 사안임.
대법원은 금전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신임을 기초로 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고 할 수 없고,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의무의 이행으로서 행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채무자가 채무를 담보하기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급부의무로 이를 이행하는 것은 자신의 사무이고, 담보설정계약의 체결이나 담보권 설정 전후를 불문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 내지 피담보채무의 변제에 있으므로 담보설정계약상의 의무를 이유로 담보를 제공한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가 담보물을 처분하였다 하여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와 다른 취지의 종래 판례를 변경하고, 배임죄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음.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하여 점유개정에 따라 담보목적물을 직접 점유하는 채무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므로 그가 임의로 제3자에게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하고, 이 사건의 경우에도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별개의견, 담보권이 설정된 이후에는 담보를 제공한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있으므로 종래의 판례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대법관 민유숙의 반대의견이 있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김상환의 보충의견이 있음.
【대법원 2020.2.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판결
• 사 건 / 2019도9756 사기, 배임
• 피고인 / 피고인
• 상고인 / 피고인
• 원심판결 / 창원지방법원 2019.6.20. 선고 2018노2687 판결
• 판결선고 / 2020.02.20.
<주 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창원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1. 배임의 점에 대하여 직권으로 살펴본다.
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대법원 1987.4.28. 선고 86도2490판결, 대법원 2009.2.26. 선고 2008도11722 판결,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4.8.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대법원 2015.3.26. 선고 2015도1301 판결 등 참조),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나.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을 요하는 진정신분범이다. 따라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행위가 타인의 신뢰를 위반한 것인지, 그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당사자 관계의 본질을 살펴 그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채무자가 계약을 위반하여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 채권자의 기대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한 채권자의 재산상 피해가 적지 않아 비난가능성이 높다거나, 채권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하여 처벌의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배임죄의 죄책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
2) 금전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의 급부이행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금전을 대여하고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채권의 만족이라는 이익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신임을 기초로 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고 할 수 없고,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의무의 이행으로서 행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1.4.28. 선고 2011도3247 판결 등 참조).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 즉 동산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하거나 담보물을 손상, 감소 또는 멸실시키지 않을 소극적 의무, 담보권 실행 시 채권자나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담보물을 현실로 인도할 의무와 같이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 등은 모두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급부의무이다. 또한 양도담보설정계약은 피담보채권의 발생을 위한 계약에 종된 계약으로, 피담보채무가 소멸하면 양도담보설정계약상의 권리의무도 소멸하게 된다.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는 담보목적의 달성, 즉 채무불이행 시 담보권 실행을 통한 채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므로 담보설정계약의 체결이나 담보권 설정 전후를 불문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 내지 피담보채무의 변제에 있다. 따라서 채무자가 위와 같은 급부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고,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 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
3) 채무자가 그 소유의 동산을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로 제공하는 경우 채무자는 그의 직접점유를 통하여 양도담보권자에게 간접점유를 취득하게 하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점유하는 행위에는 ‘보관자’로서 담보목적물을 점유한다는 측면이 있고, 채무자는 그 과정에서 담보물을 처분하거나 멸실·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될 의무를 부담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의무는 점유매개관계가 설정되는 법률관계에서 직접점유자에게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소극적 의무에 불과하다. 이러한 소극적 의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직접점유자에게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간접점유자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관리할 의무가 있고 그러한 보호·관리의무가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한 직접점유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 등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하고,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 등의 내용상 직접점유자의 주된 급부의무 내지 전형적·본질적 급부의무가 타인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것이어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양도담보설정계약에서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인 내용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시 처분정산의 방식이든 귀속정산의 방식이든 담보권 실행을 통한 금전채권의 실현에 있다. 채무자 등이 채무담보 목적으로 그 소유의 물건을 양도한 경우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그 물건의 사용수익권은 양도담보설정자에게 있다(대법원 1996.9.10. 선고 96다25463 판결, 대법원 2001.12.11. 선고 2001다40213 판결 등 참조). 동산을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에 제공한 채무자는 양도담보 설정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의 권리에 기하여,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비용부담 하에 담보목적물을 계속하여 점유·사용하는 것이지,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로부터 재산관리에 관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도 채무자가 양도담보권자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사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채권자에게 양도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되고, 주식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제3자에게 해당 주식을 처분한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라. 이와 달리 채무담보를 위하여 동산이나 주식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대법원 1983.3.8. 선고 82도1829 판결, 대법원 1998.11.10. 선고 98도2526 판결, 대법원 2007.6.15. 선고 2006도3912 판결, 대법원 2010.2.25. 선고 2009도13187 판결, 대법원 2010.11.25. 선고 2010도11293 판결, 대법원 2011.11.22. 선고 2010도7923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마.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배임 부분에 대한 원심의 판단을 살펴본다.
1)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공소외 1 주식회사(이하 ‘공소외 1 회사’라 한다)를 운영하는 피고인이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으로부터 1억 5,000만 원을 대출받으면서 위 대출금을 완납할 때까지 골재생산기기인 ‘크라샤4230’(이하 ‘이 사건 크러셔’라 한다)을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으므로,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이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위 크러셔를 성실히 보관·관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그러한 임무에 위배하여 위 크러셔를 다른 사람에게 매각함으로써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에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가하였다는 것이다. 원심은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2)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은 피고인이 운 영하는 공소외 1 회사가 공소외 2 은행에 대한 대출금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공소외 1 회사 소유의 이 사건 크러셔에 관하여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를 설정하고, 공소외 1 회사의 채무불이행 시 양도담보권의 실행, 즉 이 사건 크러셔를 처분하여 그 매각대금으로 채무의 변제에 충당하거나 채무의 변제에 갈음하여 공소외 2 은행이 담보목적물을 취득하기로 하는 내용의 전형적인 양도담보계약임을 알 수 있다.
3) 한편,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 제2조, 제4조 등에는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한다’, ‘설정자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점유·사용·보전·관리하여야 한다’ 등과 같이 담보설정자(공소외 1 회사)의 담보목적물(이 사건 크러셔)의 보전·관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계약서의 기재 내용만으로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 이 전형적인 양도담보계약이 아니라거나 양도담보계약과 별도로 공소외 2 은행이 공소외 1 회사에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이 사건 크러셔의 보관·관리에 관한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는 내용의 특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가)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상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한다는 기재는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양도담보를 설정한다는 것, 즉 담보설정자는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하여 채권자에게 간접점유를 취득시키고 스스로 점유매개자로서 점유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는 담보설정자가 담보물의 보전·관리 등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면서 담보물을 영업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정하는 한편(제2조, 제12조), 담보물이 멸실·훼손되거나 그럴 염려가 있는 경우 채권자의 청구에 따라 담보설정자가 상당액의 물건을 보충하여 채권자에게 양도하여야 한다고 정하여(제4조제1항, 제5조) 멸실·훼손에 따른 위험을 담보 설정자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으며, 나아가 물상대위에 관하여도 정하고 있다(제10조). 이러한 계약 내용은 양도담보설정계약의 전형적인 내용이다.
나) 담보설정자는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에 따라 담보목적물을 현실로 인도할 때까지 담보물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할 의무를 부담하지만(민법 제374조), 이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는 거래상 일반적으로 평균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 정도를 의미할 뿐이고, 담보설정자가 담보목적물을 ‘보존할 의무’는 담보권 실행 시 채권자나 채권자가 지정하는 자에게 ‘인도할 의무’에 부수하는 의무이자, 채무불이행 시 담보권 실행 및 이를 통한 채권의 만족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당연히 수반되는 의무에 불과하다.
4) 결국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에서 공소외 1 회사와 공소외 2 은행간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대출금 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에 있고, 공소외 1 회사를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공소외 2 은행과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공소외 2 은행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공소외 1 회사를 운영하는 피고인을 공소외 2 은행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2. 각 사기의 점에 대한 상고이유를 본다.
가. 재물편취를 내용으로 하는 사기죄에 있어서 그 대가가 일부 지급된 경우에도 그 편취액은 피해자로부터 교부된 재물의 가치로부터 그 대가를 공제한 차액이 아니라 교부받은 재물 전부이다(대법원 1995.3.24. 선고 95도203 판결 등 참조). 원심이 판시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피해자 공소외 3으로부터 공소외 4 명의로 이전받음으로써 편취한 이득액을 산정하면서 판시 부동산의 가액에서 피고인이 피해자 공소외 3에게 지급한 계약금을 공제하지 않은 조치는 정당하고, 거기에 사기죄의 편취액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나. 한편, 피고인은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면서 각 사기의 점에 관한 항소이유로 양형부당과 함께 사실오인 주장을 하였다가 원심 제5회 공판기일에 양형부당과 편취액에 관한 사실오인을 제외한 나머지 항소이유를 철회하였고, 원심도 위와 같이 철회된 부분을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따라서 각 사기의 점에 관한 나머지 상고이유는 부적법하다.
3.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배임 부분을 파기하여야 하는데, 원심은 이 부분과 나머지 유죄 부분이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전부 파기하여야 한다.
4.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다수의견과 결론은 같이 하나 그 이유를 달리 하는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별개의견과 대법관 민유숙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김상환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별개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이 사건은 채무자가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동산을 채권자에게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하되 현실적으로 점유하여 보관하던 중 채권자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처분한 행위에 대한 형사법적 평가가 문제되는 사안이다.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채무자가 동산을 담보목적으로 채권자에게 양도하였다. 동산의 인도에 관한 여러 방법 가운데 점유개정의 방식을 채택하여 채무자가 현실적 점유를 하고 있다. 채무자는 동산을 처분할 권한이 없는데도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하였다. 제3자가 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여 채권자는 더 이상 동산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채무자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는가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양도담보에 제공된 동산에 대한 채권자의 정당한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적 제재의 필요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범죄가 성립한다고 볼 것인지라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 채무자가 채권담보의 목적으로 점유개정 방식으로 채권자에게 동산을 양도하고 이를 보관하던 중 임의로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1) 형법 제355조제1항의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 성립한다.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타인의 재물인지 여부는 민법, 상법 그 밖의 실체법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5.13. 선고 2009도1373 판결 등 참조). 법적 개념은 가급적 일관성 있게 해석하여 법질서의 통일성을 확보하여야 하고, 형사법 영역에서 특별한 수정을 가하여 민사법과 다른 소유권 개념을 창조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양도담보는 소유권 등 권리 이전 형태의 비전형담보이다. 채권담보의 목적으로 물건의 소유권 또는 그 밖의 재산권을 채권자에게 이전하고, 채무가 이행되면 채권자 는 목적물을 설정자에게 반환하여야 하지만 채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목적물로부터 채권의 우선적인 만족을 얻는 담보방법이다.
동산 양도담보는 동산소유권을 이전하는 형태의 양도담보이다. 그 법적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현재까지 일관된 판례에 따라 신탁적 양도, 즉 채권담보를 목적으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로 봄이 타당하다[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동산 양도담보에 대해서는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등기담보법’이라 한다)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구체적 근거와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일반적으로 동산 양도담보약정에는 채무자가 채권담보의 목적으로 채권자에게 자기 소유의 동산을 양도하되 채권자는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동산을 인도받고 그 동산에 대한 현실적 점유는 채무자가 계속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민법 제189조는 점유개정에 관하여 “동산에 관한 물권을 양도하는 경우에 당사자의 계약으로 양도인이 그 동산의 점유를 계속하는 때에는 양수인이 인도받은 것으로 본다.”라고 정함으로써, 점유개정을 동산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인도’의 한 종류로 명시하고 있다. 동산 양도 담보약정에 따라 동산의 소유권은 채권자에게 완전히 이전한다. 양도담보 약정에 따른 점유매개관계를 통해서 채권자는 동산에 대한 간접점유를 취득하고 채무자는 직접점유를 계속 유지하게 되지만, 채무자의 점유는 채권자의 소유권을 전제로 한 점유로 전환된다. 채권자는 채권담보의 목적 범위에서만 양도받은 목적물의 소유권을 행사하여야 할 채권적 의무를 부담한다. 다시 말하면 채권자는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을 때 해당 동산을 처분해서 우선변제를 받기 위한 목적 범위에서 소유권을 가지므로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면 채무자에게 해당 동산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본래 의미의 ‘신탁적 양도설’의 내용이다. 동산 양도담보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는 독일, 스위스, 일본 등에서 판례와 통설이 취하고 있는 태도이고, 현재 우리나라 판례와 다르지 않다.
나) 민법 제185조는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 한다.”라고 정하여 물권법정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물권법의 강행법규성에 따라 법률과 관습법이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물권을 창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02.2.26. 선고 2001다64165 판결 등 참조). 동산 양도담보에서 대외적으로만 담보 목적물의 소유권이 채권자에게 이전하고 대내적으로는 채무자에게 유보되어 있다고 보아 이른바 ‘소유권의 관계적 귀속’을 인정하는 것은 법률이 정하지 않은 새로운 소유권을 창설하는 것으로서 물권법정주의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목적물의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양도담보계약 당사자의 물권적 합의 또는 처분의사에 반한다. 소유권 의 관계적 귀속은 하나의 물건에 대해 두 사람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하나의 물건에는 하나의 물권만이 성립할 수 있다는 일물일권주의에도 배치된다.
민법 제정 당시 물권변동에 관하여 의사주의에서 형식주의로 전환하였다. 민법 제186조는 부동산물권변동의 효력에 관하여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라고 정하고, 제188조제1항은 동산물권양도의 효력에 관하여 “동산에 관한 물권의 양도는 그 동산을 인도하여야 효력이 생긴다.”라고 정하고 있다. 물권을 양도하기로 하는 의사표시만으로는 물권변동의 효력이 생기지 않고 그 공시방법인 등기 또는 인도를 하여야만 물권변동의 효력이 생긴다. 물권변동의 의사표시와 공시방법을 갖추면, 당사자 사이에서든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든 물권이 변동되기 때문에, 물권의 귀속이 대내적·대외적으로 분열되는 것은 민법에서 예정하고 있지 않다. 동산물권을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양도하여 양도인이 현실적 점유를 계속하는 경우에 소유권이 대외적으로는 양수인에게 귀속되고 대내적으로는 양도인에게 유보된다는 것은 물권변동에 관한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다) 동산 양도담보의 법적 성격을 신탁적 양도로 보는 종래 판례·통설의 입장은 가등기담보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가등기담보법은 부동산 양도담보에 관하여 그 적용범위(제1조)에 속하는 한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청산기간이 지난 후에 청산금을 지급한 때에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정하고 있다(제3조제1항, 제4조제2항). 그러한 청산절차를 마치기 전까지는 부동산의 소유권은 소유권이전등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채무자에게 있고 채권자는 가등기담보법에서 정한 일종의 담보물권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강행법규의 성질을 가지는 가등기담보법의 규정, 특히 제3조제1항, 제4조제2항을 적용한 결과일 뿐이다. 가등기담보법은 민법 제607조, 제608조를 기초로 하는 법률로서 등기·등록과 같은 공시방법이 마련되어 있는 물건에 한하여 그에 관한 권리이전형 담보에만 적용되고, 그 마저도 피담보채무가 소비대차와 준소비대차로 인한 차용물반환의무인 경우만을 규율하는 등 적용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가등기담보법 제1조, 제18조 등). 그러한 가등기담보법을 양도담보 일반에 적용할 수는 없다. 가등기담보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는 동산 양도담보를 포함하여 양도담보 일반에 대해서 가등기담보법이 적용되는 경우와 같이 이론 구성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라) 동산 양도담보에 관하여 대법원은 가등기담보법 시행 전후를 불문하고 일관되게 ‘신탁적 양도설’의 입장에서 동산의 소유권은 채권자에게 신탁적으로 이전되고, 채무자는 동산의 소유권을 이미 상실한 채 점유·사용권만을 가진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그와 같은 입장에서 채무자가 양도담보에 제공한 목적물을 제3자에게 다시 양도담보로 제공하는 등으로 처분하더라도 그 제3자는 무권리자로부터 양수한 것이므로 선의취득의 방법외에는 목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할 수 없고(대법원 2004.10.28. 선고 2003 다30463 판결, 대법원 2005.2.18. 선고 2004다37430 판결 등 참조), 채권자는 그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제3자에게 목적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1986.8.19. 선고 86다카315 판결 등 참조). 또한 채무자의 일반채권자가 신청한 목적물에 관한 강제집행절차에서 채권자는 제3자이의의 소로써 강제집행의 배제를 구할 수 있고(대법원 1994.8.26. 선고 93다44739 판결 등 참조), 그러한 강제집행절차가 계속 진행되어 양도담보에 제공된 목적물이 매각되어 매수인이 선의취득한 경우 채 권자는 그 매각대금을 배당받은 일반채권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1997.6.27. 선고 96다51332 판결 참조).
마) 대법원 민사 판결 중에는 마치 소유권이 대내적으로는 채무자에게 남아 있고, 대외적으로만 이전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듯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판결들(대법원 2004.10.28. 선고 2003다30463 판결, 대법원 2004.12.24. 선고 2004다45943 판결, 대법원 2005.2.18. 선고 2004다37430 판결 등 참조)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표현만을 근거로 대법원이 동산 양도담보에서 위에서 본 ‘신탁적 양도설’과 달리 소유권의 관계적 귀속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대내적으로 채무자가 갖는 소유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대법원 판결들은 양도담보 목적물의 소유자가 누구인지가 쟁점이 되었던 사안에서 채권자가 정당한 소유자이고, 채무자는 무권리자이므로, 채무자로부터 양도담보 목적물을 양수한 자는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는 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고 한 판결들로서, 대내적 관계에서 채무자가 여전히 소유자인지 여부가 법적 쟁점이 아니었다. 따라서 동산양도담보에 관한 대법원 판결 중 대내적 관계에서는 채무자가 소유자라고 한 부분은 방론에 해당할 뿐 ‘판례’, 즉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대법원은 부동산 명의신탁 관계에서 명의신탁자가 이른바 내부적 소유권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약정을 무효라고 판단하였고(대법원 2014.8.20. 선고 2014다30483 판결 등 참조), 자동차 지입계약 관계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입차량의 소유권은 지입회사에 있고 지입차주가 차량을 처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3.5.30. 선고 2000도5767 판결, 대법원 2015.6.25. 선고 2015도 194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소유권을 대내적·대외적으로 분열시키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일반적으로 동산 양도담보약정에는 위와 같이 소유권을 분열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3) 동산 양도담보를 신탁적 양도로 보는 이상, 그 기능이나 경제적 목적이 채권담보이고, 그에 따라 채권자가 채권담보의 목적 범위에서만 소유권을 행사할 채권적 의무를 부담하더라도, 담보목적물의 소유권은 당사자 사이에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합의와 점유개정에 의한 인도에 따라 완전히 채권자에게 이전한다. 따라서 점유개정에 따라 양도담보 목적물을 직접 점유하는 채무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고, 그가 채권자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담보목적물을 양도하는 등 처분한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4)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동산 양도담보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그 법적 구성을 소유권이 채권자에게 신탁적으로 양도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소유권이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채권자에게 양도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형법에서는 채무자가 점유 개정에 따라 현실적으로 동산을 점유하는 것을 타인의 동산을 위탁받아 점유하는 것으로 보아 채무자가 양도담보로 제공된 동산을 처분하는 행위를 횡령죄(독일 형법 제246조)로 처벌하고 있다.
5) 이와 달리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한 내부적인 관계에서 소유자임을 전제로 채무자는 자기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셈이 되어 횡령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결(대법원 1980.11.11. 선고 80도2097 판결, 대법원 2009.2.12. 선고 2008도10971 판결 등) 등은 변경되어야 한다.
다. 채권자는 양도담보계약을 통해서 담보목적으로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면서도 채무자의 처분행위로 권리를 상실할 위험을 감수하고 채무자의 편의를 위하여 채무자로 하여금 목적물을 계속하여 사용하도록 맡겨 둔 것이다. 이것은 채무자가 목적물의 교환가치를 유지하리라는 특별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하고,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고 양도담보 목적물을 처분하는 것은 위법 하게 채권자의 양도담보 목적물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사적 자치의 영역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형사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채무자가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다음 임의로 이를 처분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독일의 통설판례는 채무자가 위탁받아 점유·소지하는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한 것으로 보아 횡령죄 성립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판례는 양도담보의 경우 원칙적으로 소유권은 대내외 구분 없이 채권자에게 이전된다는 입장이고, 다수설은 이러한 형태의 양도담보에 대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배임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자가 당초 약정에 위반하여 담보물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사기죄(fraud)나 횡령죄(embezzlement) 등으로 처벌하는 주가 대부분이다.
종래 대법원이 양도담보로 제공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해 온 것은 부동산에 관한 담보설정자의 임의 처분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한 것(대법원 2007.1.11. 선고 2006도4215 판결 등 참조)과 맥락을 같이 한다. 형법 제355조제1항이 배임죄의 주체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행위를 배임죄의 규율범위에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배임죄의 규율범위를 좁히기 위한 새로운 이론구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동산 양도담보의 경우 배임죄의 규율범위에서 제외하는 데서 나아가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채무자가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하고 이를 계속 점유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는 횡령죄의 구성요건을 쉽게 충족하므로, 채무자가 양도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것을 횡령죄로 규율하는 것이 올 바른 방향이다.
한편, 동산을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에 제공한 자가 계속하여 점유하더라도 이는 자기의 재물이 아닌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그 동산을 처분하더라도 ‘자기의 재물’을 그 객체로 하는 형법 제323조의 권리행사방해죄는 성립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다수의견과 같이 위와 같은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러한 행위를 범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도 횡령죄 성립을 인정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해결방안에 아무런 법적 장애가 없다.
라. 다수의견의 문제점에 관하여 본다.
1) 다수의견은 채무자의 금전채무 이행이 자신의 급부의무 이행이고, 채무자가 양도 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가 자신의 의무임을 강조하면서 담보권 설정 전후 또는 양도담보 목적물의 양도 전후를 불문하고 채무자가 양도담보 목적물의 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가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채무자가 양도담보계약에 따라 자기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할 의무는 ‘자기의 사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가 양도담보계약에 따라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면 채권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되므로 그때부터 채무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고 채권자를 위해서 양도담보 목적물의 유지·관리의무를 지게 된다.
동산 양도담보에서는 위에서 보았듯이 동산의 양도 시점을 전후로 채무자의 법적 지위가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점유개정으로 채무자가 계속 동산을 점유하는 경우에는 그 점유가 채권자의 소유권을 전제로 하는 점유로 전환된다. 이처럼 양도담보 목적물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 전 단계에서 채무자가 양도담보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는 채권자 앞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이후에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와는 그 성격이 명확하게 구분되는데도, 다수의견은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아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2) 다수의견은 동산 양도담보에 관하여 대법원이 채택하고 있는 ‘신탁적 양도설’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다수의견은 양도담보설정계약에서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인 내용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시 처분정산의 방식이든 귀속정산의 방식이든 담보권 실행을 통한 금전채권의 실현에 있고, 채무자가 양도담보 설정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의 권리에 기초하여 목적물을 계속 점유·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형사범죄의 성립 여부에 중대한 의미가 있는 ‘물건의 양도로 인한 소유권 이전의 효과’에 관해서는 침묵하면서 ‘담보권’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동산 양도담보에 따라 채권자가 취득하는 권리를 일종의 담보권으로 파악하고 채무자에게 소유권이 남아 있거나, 이른바 소유권의 관계적 분열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내부적 소유권은 채무자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수의견은 동산 양도담보의 경우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그 물건의 사용수익권은 양도담보설정자에게 있다’고 하면서 2개의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수 의견이 인용한 대법원 96다25463 판결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채무자가 양도담보 목적물을 무상으로 사용·수익하기로 약정한 사안에 관하여 사용수익권이 채무자에게 귀속된다고 판단한 것이고, 대법원 2001다40213 판결은 부동산 양도담보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목적 부동산에 대한 사용수익권은 채무자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판결들이 동산 양도담보에 관한 신탁적 양도설과 배치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동산 양도담보에서 채무자가 그 소유의 물건을 채권자에게 양도하면 채권자 앞으로 소유권 이전의 효과가 생기므로, 그 이후에 ‘채무자에게 남아 있는 권리’를 소유권으로 볼 수 없다.
동산 양도담보에서 ‘점유개정’ 방식으로 물건을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점유개정 방식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당사자는 약정으로 얼마든지 ‘현실인도’를 하는 것으로 정할 수 있다. 동산 양도담보에서 채무자가 점유개정을 통해서 인도하든 현실인도를 통해서 인도하든 채권자에 대한 소유권 이전 효과는 같아야 한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실제로 양도담보 목적물을 인도한 경우 채권자는 양도담보 목적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다. 채권자가 위와 같이 소유권을 취득한 다음 채무자에게 해당 목적물을 맡겨 보관하도록 하면서 그 사용을 허락한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 소유의 물건에 대한 재산관리 의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한 자’에 해당함이 명백하다.
3) 다수의견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의무가 타인의 재산상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내세우고 있다. 다수의견은 이러한 논리를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에 대하여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즉 다수의견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위임 등과 같은 경우로 한정하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고 이를 물건에 대한 보관관계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물건에 대하여는 배임죄가 성립할 여지가 전혀 없게 된다. 다수의견이 이러한 의도로 위와 같은 논리를 전개한 것일 수 있으나, 이는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하여 배임죄를 인정한 대법원 2018.5.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된다.
다수의견이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한 직접점유자가 배임죄의 성립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할 수 있는 경우를 위임 등으로 한정한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왜냐하면 타인 소유의 물건에 대한 점유가 위임 관계에 기초한 것이라면 수임인이 임무에 위배하여 물건을 처분하는 행위는 결국 횡령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즉 다수 의견은 이미 횡령죄가 성립하고 배임죄는 논할 필요가 없는 경우를 상정하여 그러한 경우만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고 다른 경우는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는 모순이고 순환논리이다. 다수의견이 상정하는 위와 같은 사안은 처음부터 횡령죄가 성립하는지만 따지면 된다.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 에 따라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용대차·임대차·위임·임치 등의 계약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한정되지 않는다(대법원 1985.9.10. 선고 84도2644 판결, 대법원 2003.7.11. 선고 2003도2077 판결 등 참조). 사용대차의 차주, 임대차의 임차인이나 임치의 수치인은 위탁관계에 따라 대주, 임대인이나 임치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임차인이 자전거를 빌린 사안을 들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동산 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으로부터 빌린 자전거를 점유·사용하던 중 임대인의 허락 없이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하였다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에 따라 임대인 소유의 자전거를 점유·사용한다. 이때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이라는 위탁관계를 통해서 동시에 임대인 소유의 자전거를 보관하는 자로서,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 즉 직접점유자인 임차인은 간접점유자인 임대인과 임대차계약에 따른 신뢰관계(위탁관계)에 기초하여 임대인 소유의 자전거를 보관할 의무가 있다. 임차인이 자신이 보관 중인 임대인 소유의 자전거를 임의로 제3자에게 유효하게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6.6.9. 선고 2015도20007 판결, 대법원 2017.9.7. 선고 2017도6060 판결은 이러한 법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임차목적물을 무단 처분한 임차인이 배임죄로 처벌되지 않는 것은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통해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어서 횡령죄로 처벌되기 때문이다. 임차인의 임차목적물에 대한 보관의무가 임차목적물 반환의무에 부수하는 소극적 의무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대법원 판례가 임차인의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차목적물 보관의무와 수치인의 임치계약에 따른 목적물 보관의무를 위반한 사안에 대하여 모두 횡령죄 성립의 요건인 ‘위탁 관계에 따른 보관’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두 사안에서 목적물 보관의무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횡령죄가 성립하기 때문에 배임죄를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임죄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횡령죄와 배임죄는 타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침해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고 횡령죄가 재물을 객체로 함에 대하여 배임죄는 재산상의 이익을 객체로 하는 점에서 구별된다. 대법원도 횡령죄와 배임죄는 모두 신임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같은 죄질의 재산범죄라는 등의 이유로 배임죄로 기소된 공소사실에 대하여 공소장변경 없이도 횡령죄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9.11.26. 선고 99도2651 판결, 대법원 2008.11.13. 선고 2008도6982 판결 등 참조). 타인 소유의 물건을 위탁관계에 기초하여 보관하는 사람이 그 물건을 보관하는 것은 신임관계에 기초한 타인의 사무라고 볼 수 있다. 그 보관이 보관자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달리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보관임무에 위배하여 물건을 처분한 경우에는 횡령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배임죄를 논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4) 다수의견은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 제2조, 제4조만으로 공소외 2 은행이 공소외 1 회사에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이 사건 크러셔의 보관·관리에 관한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는 특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 제2조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한다’ 부분은 동산 양도담보에 따라 채권자 앞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음을 당사자가 상호 확인하고, 채무자(설정자)가 채권자 소유의 물건을 점유·사용·보전·관리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관계를 통해서 공소외 2 은행이 공소외 1 회사에 이 사건 크러셔에 대한 보관·관리를 위탁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나아가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 제4조제1항과 제5조가 담보물이 멸실·훼손되는 경우 채무자(설정자)는 상당액의 물건을 보충하여 채권자에게 ‘양도’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것 역시 채권자 앞으로 양도담보 목적물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임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마.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포함된 보다 가벼운 범죄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더라도 직권으로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과 다른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15.10.29. 선고 2013도9481 판결 참조). 횡령죄와 배임죄는 다 같이 신임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재산범죄로서 그에 대한 법정형이 같고, 동일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단지 법률적용만을 달리하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다면 배임죄로 기소된 공소사실에 대하여 공소장변경 없이도 횡령죄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횡령죄와 배임죄는 그 범죄주체와 실행행위의 내용 등 구성요건표지를 달리 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기본적 범죄사실의 동일성은 인정되지만 검사가 증명해야 하는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이 다른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공소장 변경 없이 기소된 공소사실과 다른 범죄사실을 인정하여 횡령죄로 처벌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바. 이 사건에 관하여 살펴본다.
공소외 1 회사는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에 이 사건 크러셔를 양도담보로 제공하고 이를 직접 점유·보관하는 주체이므로 그 실질적 대표자인 피고인은 피해자 공소외 2 은행에 대하여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고 피고인이 이 사건 크러셔를 제3자에게 처분한 행위는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법리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피고인이 방어할 기회를 충분히 가졌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으므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파기 후 환송심 법원은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방어의 기회를 부여한 다음 공소사실에 관해서 판단함이 바람직하다.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법적 평가를 달리하는 것일 뿐이므로, 판례에 따르면 대법원이 곧바로 횡령죄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원심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종래 이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 일관되게 배임죄를 유죄로 인정하였던 것에 비추어 보면 대법원이 곧바로 횡령죄를 유죄로 판단하여 확정시키는 것보다 원심 판결을 파기하여 환송 후 원심에서 피고인이 횡령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부합한다. 이러한 조치는 불고불리의 원칙이나 대법원의 심판범위 등에 관한 기존 법리에 배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할 수 있으므로 형사소송법의 일반원칙에 부합한다.
이러한 이유로 피고인에 대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기로 하는 다수의견과 결론이 같지만 그 이유가 다르다.
6. 대법관 민유숙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반대의견 요지
1)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의 쟁점은 담보설정자가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후’ 대상 동산을 처분한 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하는지 여부이다(대상재산이 동산으로, 처분 시기가 양도담보권을 설정한 이후로 한정된다).
2) 다수의견은, 위 단계에서 채무자가 양도담보권자인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담보물 보관의무 및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담보물을 처분하여 담보가치를 감소·상실시키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3) 그러나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점유개정 등으로 양도담보권을 설정함으로써 채권자가 양도담보권을 취득한 이후 채무자의 담보물 보관의무 및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
나. 대법원 판례 및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와의 정합성
1) 다수의견은 배임죄에 관한 전체적인 대법원 판례의 흐름,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 선고된 3개의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와 충돌된다.
2)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제1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 대법원 2014.8.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제2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과 더불어 최근 대법원 2018.5.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제3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까지 대법원은 ‘신임관계에 기초한 타인 재산의 보호·관리’와 ‘계약에서의 이익대립’을 구별함으로써 다양한 국면에서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3) 제1전원합의체 판결은 동산양도약정을 체결한 피고인이 그 동산을 이중 양도한 행위는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목적물을 인도함으로써 계약 이행을 완료하고 별도로 매수인 재산의 보호·관리에 협력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위 법리가 동산의 ‘양도’에 한정됨을 명백히 하면서 구분기준을 제시하였다.
동산 이중매매는 동산에 대한 권리가 상대방에게 이전되기 전 단계에서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한 사안인 반면, 권리가 상대방에게 이전·귀속된 이후에는 이미 상대방에게 귀속된 재산권을 보호·관리할 의무로서 타인의 사무가 되므로 사안의 본질적인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동산을 점유개정 등으로 양도담보로 제공하여 담보권자에게 이미 담보권이 귀속되면 담보권자는 대외적으로 담보물의 소유권을 갖고 담보설정자는 이를 담보권자의 재산으로서 보호·관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지위에 있어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명시하였다.
4) 제1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후 동산 담보에 관한 재판실무는, 담보권이 설정되기 전 단계에서 담보권을 설정해 줄 계약상 의무인지, 담보권이 설정되어 상대방에게 귀속된 이후 담보물을 보호·관리할 의무인지에 따라 ‘타인의 사무’ 여부를 판단하였다.
최근 3년여 전까지 대법원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즉 대법원 2015.6.24. 선고 2015도2999 판결, 대법원 2016.4.28. 선고 2015도3188 판결, 대법원 2016.8.18. 선고 2016도7946 판결은 피고인이 상대방에게 점유개정방식으로 양도담보로 제공하되 계속 점유하던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사안에서, 제1전원합의체 판결의 기준을 명시하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 배임죄 성립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고 판단하며 이를 수긍하였다.
위 3개의 대법원 판결은 다수의견의 변경대상 판결 중 사건번호가 특정되지 않은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5) 다수의견은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대신 맡아 처리하는 것이어야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립된 대법원 판례는, 문제된 사무 처리가 오로지 타인의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성질을 아울러 가진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위한 사무로서의 성질이 부수적·주변적인 의미를 넘어서 중요 한 내용을 이루는 경우에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유지하여 왔다.
비교적 최근 선고된 제3전원합의체 판결 역시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인정하는 종전 판례를 유지하면서 위 법리를 재확인한 다음,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중도금 지급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때부터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있다고 판시하였다.
6) 제3전원합의체 판결 후 대법원 2019.1.10. 선고 2018도15584 판결, 대법원 2019.11.28. 선고 2019도13730 판결은 채무 담보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설정하기로 약정하였다가 제3자에게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친 경우 배임죄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수긍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근저당권설정등기는 상대방의 채권확보를 위한 부수적인 내용에 불과하여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배척되었다.
7) 이와 같이 다수의견의 견해는 ‘타인의 사무’ 관련 많은 대법원 판결들과 나아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표명된 법리와 부합되지 않는다. 게다가 양도담보권이 설정된 후 담보설정자가 대상 동산을 처분한 행위의 배신성은 제3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안보다 더 크다.
향후 담보권을 설정한 동산 이외의 재산(주식, 채권, 면허권 등)의 처분에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들의 유지 여부가 거론될 때마다 다수의견의 판례부정합성이 계속 문제될 우려가 있고, 특정재산에 한정되지 않고 널리 위임 등으로 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하는 의무를 ‘약정의 본질적 내용’으로 보아 타인의 사무로 인정한 선례들의 유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8) 이 사건 쟁점은 추상적으로 규정된 처벌법규 해석의 영역이고 대상 재산, 범행 시기, 행위 태양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다. 죄형법정주의 대원칙으로부터 곧바로 어느 쪽의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 제3전원합의체 판결이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하여 배임죄 성립을 긍정한다는 이유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판결이라고 비판한다면 그 지적이 타당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9) 다수의견의 변경대상 판결 중 대법원 2010.2.25. 선고 2009도13187 판결은 채무자가 주식에 양도담보를 설정하기로 약정하고 아직 이행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처분한 사안으로 본 전원합의체 판결과는 쟁점을 달리하고, 나머지 변경대상 판결들은 모두 ‘담보권설정 후’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로서 ‘담보권설정 약정 불이행’과 무관하다는 점을 덧붙인다.
다. 담보설정에서 실행까지 단계별 법률효과와의 관련
1) 다수의견은 채무자가 목적물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 담보설정 후 담보를 유지·보전할 의무, 담보권 실행 시 담보물을 인도하고 상대방의 담보실행에 협조할 의무를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이를 모두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고 한다.
2) 다수의견은 담보설정에서 실행까지 단계별로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의 내용이 변화하고 이에 대응하여 당사자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 역시 변화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일 뿐더러, 그 단계별로 부담하는 의무의 법률적 평가에 관한 대법원 판례와 부합하지 않는다.
3) 채무자가 담보를 설정할 의무를 자신의 사무로 파악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며, 이 사건의 쟁점도 아니다. 그러나 일단 점유개정 등의 방법으로 담보를 설정한 후 담보를 유지·보전할 의무 및 그 이후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는 계약당시와는 내용 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최초단계의 약정이행의무가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 하여 그 이후의 사무까지 같은 내용으로 포섭할 수는 없다.
부동산 매매에서 계약 시부터 계약금 지급 단계까지는 매도인 본인의 사무로 취급하고, 중도금 지급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로서 ‘타인의 사무’로 인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하여 채권자가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인도를 받았다면, 정산절차를 마치기 전이라도 양도담보권자인 채권자는 제3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담보목적물의 소유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1994.8.26. 선고 93다44739 판결 참조). 양도담보권자인 채권자가 제3자에게 담보목적물을 매각한 경우, 제3자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정산절차 종결 여부와 관계없이 양도담보 목적물을 인도받음으로써 소유권을 취득한다(대법원 2008.11.27. 선고 2006도4263 판결 참조).
담보권 실행 단계에 이르는 경우, 채권자는 담보목적물인 동산을 사적으로 타에 처분하거나 스스로 취득한 후 정산할 수 있고(대법원 2009.11.26. 선고 2006다37106 판결 참조), 환가로 인한 매득금에서 환가비용을 공제한 잔액 전부를 양도담보권자의 채권변제에 우선 충당할 수 있다(대법원 2000.6.23. 선고 99다65066 판결 참조).
5) 양도담보권이 설정된 후 채권자가 취득한 담보권의 내용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강력한 권리를 포함하므로 채권자가 담보권과 관련하여 행사하는 권리의 내용은 ‘채권자의 사무’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 논리적 귀결로서 담보설정자가 부담하는 의무는 채권자를 위한 사무로서의 성질이 부수적·주변적인 의미를 넘어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게 되고,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게 된다.
6) 이러한 점에서 동산담보설정 후의 법률관계는, 일반적으로 당사자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일방의 의무와 이에 대립하는 상대방의 권리로 구성되는 계약(예컨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하고 계약종료시 이를 반환받는 관계)과는 달리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다.
라. 담보권의 목적과 의무내용의 구분
1) 다수의견은, 양도담보설정계약은 피담보채권의 발생을 위한 계약에 종된 계약이고, 양도담보설정 이후에도 당사자관계의 전형적·본질적 의무는 피담보채무의 변제라고 한다. 채무자가 담보권설정 후 부담하는 각종 의무는 금전채무에 부수되고 종된 의무라고 보는 듯하다(다수의견은 이 사건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담보설정자가 담보목적물을 보존할 의무는 채권의 만족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당연히 수반되는 의무에 불과하다”라고 한다).
2) 동산을 금전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경우 채무자는 변제의무와 담보유지의무를 각기 부담하고 변제를 완료하면 담보유지의무가 소멸한다. 이러한 관계는 법률에서 담보권의 부종성을 인정하기 때문이고 그 내용은 담보권이 채권에 부종한다는 취지이다. 담보권이 소멸하면 그에 따라 채무자의 담보유지의무가 소멸한다.
그러나 금전소비대차계약에 따른 채무자의 의무와 담보설정계약에 따른 담보설정자의 의무는 각각 서로 다른 계약에 기초하여 발생한 의무이므로 이 두 의무를 놓고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판단하는 기준인 전형적·본질적 의무와 부수적·종된 의무로 구분 지을 수는 없다. 제2전원합의체 판결이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를 ‘부수적 내용’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물변제 예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를 대상으로 칭한 것이다. 제2전원합의체 판결은 변경대상판결을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 사안’으로 특정하여 그러한 판결만을 폐기하였다.
이미 부동산에 관하여 민법 제369조가 저당권의 부종성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대법원이 채무자의 근저당권설정등기의무를 ‘타인의 사무’로 인정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법상 금전채무와 담보권의 관계를 형법상 배임죄 성립요건으로서 ‘타인의 사무’ 여부를 가리는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3) 금전소비대차에 따라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채무변제’이다. 그러나 담보권설정에 있어서 채권실현은 담보권 실행의 목적이지 의무의 내용이 아니다. 담보권설정 후 당사자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채권실현(채무변제)이 아니라 담보권 실행과 이를 위한 협조로서 담보물의 보관·유지가 된다.
4) 그밖에 다수의견이 근거로 들고 있는 사정 중, 양도담보설정자가 담보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은 본건 쟁점과 논리적인 관련이 없고,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 등의 내용 등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내용은 이 사건에서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양도담보를 설정한 사실관계가 다투어진 바 없다는 점에서 무관하다고 보여진다.
5) 결론적으로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근거들은 모두 이미 담보권을 취득한 상대방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부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할 것이어서 판례변경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마. 이 사건의 검토
1)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경위를 구체적으로 보아도 배임죄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피고인은 2015.12. 피해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이 사건 크러셔를 양도담보로 제공하였는데 불과 3개월여 후인 2016.3. 이를 매도하였다. 피고인은 위 담보물 처분 3개월여 후부터 저지른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사기범행으로도 경합범으로 기소되어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되었고 그 범죄사실에 따르면 당시 피고인에게 영업손실이 14억 원에 이르러 변제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2) 이는 동산 양도담보설정자의 처분이 문제되는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정이기도 하다.
담보설정자의 무자력으로 채무이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유일한 채권실현 수단인 담보물이 처분되었는데, ‘채무를 변제하면 양도담보권 또한 소멸한다’는 일반론은 공허하게 들린다.
대법원 판례와 해석론이 일치하여 배임죄의 본질에 관한 ‘배신설’의 입장을 취해 온 점도 고려할 수 있다.
3) 다수의견도 인정하는 것처럼 이 사건 양도담보계약서 제2조 등에서 ‘담보목적물은 설정자가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점유·사용·보전·관리하며 그 비용을 부담한다.’는 등의 기재가 있다. 이에 따라 채무자가 양도담보권 설정 후 담보물을 보관하고 담보가치를 유지할 의무는 채권자의 대리인으로서 갖는 의무이므로 전형적인 ‘타인의 사무’이다.
다수의견은 ‘전형적인 양도담보계약’이라거나 ‘피해은행이 별도로 담보목적물 보관사무를 위탁한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처분문서의 문언과 다르게 해석하여 ‘타인의 사무’가 아니라고 한다. 다수의견이 계약관계 등의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피고인이 양도담보설정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았고 원심까지 계약서의 문언과 달리 해석되어야 할 사정이 주장되거나 심리된 바도 없다.
바. 결론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점유개정 등으로 양도담보권을 설정한 이후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담보물의 보관의무 및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
그 해석이 다수의견이 변경대상으로 지적하는 몇 개의 대법원 판결을 넘어서 최근까지 이루어진 많은 대법원 판결들 및 전원합의체 판결의 흐름에 부합하고, 범행 실체에 따른 처벌 필요성에 부응한다.
배임죄의 성부를 가르는 기준은 담보권설정 약정의 불이행인지, 담보권 설정 후 유지관리임무를 위배한 처분인지에 달려 있고, 구체적인 사건에서 동산담보권이 설정되었는지 여부는 사실인정의 문제로서 사실심 재판과정에서 심리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의 견해에 찬성할 수 없음을 밝힌다.
7.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김상환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가. 형법 제355조제2항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범죄이다. 대법원은 배임죄의 본질을 신임관계에 기한 타인의 신뢰를 저해하는 임무위배행위로써 타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게 하는 데에 있다고 파악하고, 이러한 ‘임무위배행위’에는 ‘처리하는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령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가 포함된다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2008.5.29. 선고 2005도4640 판결, 대법원 2018.5.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위와 같은 배임죄의 본질 및 임무위배행위에 관한 규범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의 추상성으로 인하여 배임죄의 성립이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으므로 배임죄의 행위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범위를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그 사무의 본질에 입각하여 제한해석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왔다. 즉 형법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임무위배행위를 처벌하는 형벌법규이므로, 피고인 의 행위가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이전에 과연 그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여야 하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에서 신임관계의 유형과 정도를 살펴 그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타인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대법원은 동산 매매계약의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아니하고 타에 처분하였다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고(대법원 2011.1.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채무자가 담보 목적으로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후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대법원 2014.8.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다수의견은 이러한 판례의 취지에 충실히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대법원 2018.5.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종래의 견해를 유지하였다. 위 판결은 부동산이 국민의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부동산 매매대금은 통상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뉘어 지급되는데,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의 상당부분에 이르는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하더라도 매도인의 이중매매를 방지할 충분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래의 현실을 고려하여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종래의 판례가 여전히 타당하다는 이유에서 종래의 견해를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위 판결을 이유로 다수의견이 대법원 판결의 흐름에 반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한편, 대법원은 ‘사무의 처리가 오로지 타인의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하여야 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성질도 아울러 가진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위한 사무로서의 성질이 부수적·주변적인 의미를 넘어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경우에도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2.5.10. 선고 2010도3532 판결, 대법원 2017.4.26. 선고 2017도2181 판결 등). 반대의견은 위와 같은 판시를 들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해석에 관한 다수의견이 선례와 배치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판시는 위임 등 계약에 기하여 위임인 등으로부터 맡겨진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약정된 보수 등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상대방과의 신임관계에서 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 리하여야 할 지위에 있다는 취지로서 종전의 판례, 즉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것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는 판단기준을 변경하거나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반대의견의 비판은 위와 같은 판시의 의미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동의하기 어렵다.
나. 배임죄는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급부의 내용이 타인의 재산상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데에 있는 경우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타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한다. 반면 행위자가 점유하고 있는 어떤 물건이나 권리가 타인에게 귀속되었는지 여부는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지를 판가름할 요소가 아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이사가 회사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이사가 회사와의 계약관계상 부담하는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수임인으로서 회사의 재산상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사에게 회사 재산을 관리하는 사무가 있다하더라도 이사가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의 주체가 되는 것은 그가 위탁받은 사무 또는 위임인과의 신임관계의 유형이나 내용으로 인한 것이지 재산이 회사 소유이기 때문이 아니다.
특정 재산이나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과 같은 대향적 계약관계에서 계약의 이행 단계에 따라 계약 목적인 물건이나 권리가 계약상대방에게 귀속되었다 하여 그 계약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계약상대방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데에 있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도 채무자가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근저당권설정계약 또는 전세권설정계약을 체결하고 그 설정등기를 마쳐준 이후 등기관계 서류를 위조하여 그 등기를 말소한 사안에서 해당 등기를 임의로 말소하여서는 안되는 것은 물권의 대세적 효력의 당연한 귀결로서 채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부담하는 의무이고 채무자가 담보제공약정에 따라 채권자의 재산의 관리보호를 위하여 특별히 부담하는 의무는 아니라는 이유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1987.8.18. 선고 87도201 판결, 대법원 2007.8.24. 선고 2007도3408 판결, 대법원 2010.5.27. 선고 2009도5738 판결 등 참조).
다. 대법원은 종래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를 설정하되 그 담보물을 계속 점유하는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가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이를 보관할 의무를 지게 되어 채권자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게 된다고 판시하여 왔다. 종전 대법원 판결들이 설시한 담보물 보관의무의 의미와 내용이 반드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채권자의 담보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부담하는 채무자의 담보물 유지·보전의무나 담보물을 처분하거나 멸실·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라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를 들어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채무자가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한 직접점유자로서 담보물을 점유하는 과정에서 이를 보관한다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임대차의 경우를 본다.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어 그 목적물이 임차인에게 인도되면 점유매개관계가 설정 된다. 임차인은 임차목적물의 직접 점유자, 임대인은 간접 점유자의 지위에 서게 되고,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임대목적물을 반환할 때까지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하거나 멸실·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임대차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임차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하고, 임차인은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하는 것이다(민법 제618조).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직접 점유하며 사용, 수익하는 것은 임대차계약에 기한 자신의 권리에 기한 것이지 임대인을 위하여 임차목적물을 보관·관리하는 사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점유하는 과정에서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하지 않을 의무 등은 임대차계약 종료 시의 임차목적물 반환의무에 부수되는 소극적인 의무에 해당할 뿐이다. 이러한 의무를 근거로 임차인이 임대인과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임대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할 임무를 부여받았다거나 임대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임대차계약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을 이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임차인을 임대인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
요컨대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한 직접점유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 등의 내용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살펴보지 아니한 채 점유매개관계에서 직접점유자에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보관자 지위를 근거로 혹은 채무의 이행이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중요하다는 이유로 만연히 당사자 관계의 본질적 내용이 타인의 재산 내지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데에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배임죄의 구성요건 요소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
라. 계약은 지켜져야 하고,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당사자 간의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반대의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채무자가 양도담보에 제공된 동산을 타에 처분하는 행위를 할 때에는 이 사건과 같이 이미 채무자가 변제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 이른 경우가 많고, 따라서 채무자의 그러한 행위로 채권자는 채권을 변제받지 못하는 재산상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러한 점을 주목하여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그와 같은 행위를 예방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 제12조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여야 하며,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3.11.28. 선고 2012도4230 판결, 대법원 2017.12.21. 선고 2015도833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따라서 계약위반 내지 계약상 의무의 불이행에 대하여 형벌법규에 의한 제재를 하기 위하여는 구성요건에의 해당 여부를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계약관계에서 상대방의 이익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였고, 그 행위가 비난가능성이 높다거나 처벌의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배임죄의 죄책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부합하지 아니한다.
마. 별개의견은 ‘신탁적 양도설’의 입장에서 점유개정에 따라 담보목적물을 직접 점유하는 채무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고, 그가 채권자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하므로 배임죄는 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공소가 제기되지도, 원심에서 심판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던 범죄사 실인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이를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산 양도담보의 법적 구성에 관한 별개의견의 견해에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러한 별개의견은 양도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점유하는 채무자는 자기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셈이 되어 횡령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현재 대법원 판례에 반하고, 배임죄와 횡령죄는 구성요건이 다른 별개의 범죄라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며, 무엇보다 이러한 별개의견의 태도는 불고불리의 원칙이나 대법원의 심판범위 등에 관한 형사소송절차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동의하기 어렵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한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주심)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