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의료인이 작성하는 진료기록부, 조산기록부, 간호기록부, 그 밖의 진료에 관한 기록은 위・변조 또는 허위 기재의 가능성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으나, 법령에 따라 의료진이 의무적으로 작성・보존하여야 하는 문서이고, 허위의 내용을 기재한 경우에는 자격정지처분을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원심은 서로 배치되는 관련자들의 진술내용에 대하여 법정에서 증인신문을 통하여 직접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그중 H의 확인서 등의 내용만을 채택하고, 의료인이 직무상 작성한 진료기록부 등의 기재 내용을 쉽사리 배척함으로써, 이 사건 요양결정 취소처분 및 이 사건 징수처분의 처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르지 아니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 대법원 제3부 2017.12.05. 선고 2017두57363 판결 [산재보험요양결정취소처분취소및부당이득징수처분취소]
♣ 원고, 피상고인 / A
♣ 피고, 상고인 / 근로복지공단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7.7.18. 선고 2016누81712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원심은, 원고가 B의 사업주인 C과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을 받았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가. 행정소송법 제8조제2항에 따라 행정소송에 준용되는 민사소송법 제202조가 선언하고 있는 자유심증주의는 형식적・법률적 증거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할 뿐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실인정은 적법한 증거조사절차를 거친 증거에 의하여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하여야 하고, 사실인정이 사실심의 재량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 한도를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14.8.20. 선고 2012두14842 판결, 대법원 2017.3.9. 선고 2016두55933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1) 원고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2003.5.1. 16:00경 D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였고, 2003.8.2. 퇴원하였다. 원고에 대한 D병원의 응급센터 경과일지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계단에서 발에 걸려 넘어졌다는 취지로, 환자간호력에는 ‘술 취한 상태로 계단(3m) 높이에서 떨어짐’이라고 각각 기재되어 있다.
한편 2003.5.27.자 D병원 재활의학과 입원환자기록지에는 학교 계단에서 굴렀다는 취지로, 재활의학과 퇴원요약지에는 ‘학교 계단에서 slip down’으로 각각 기재되어 있다. 2004.2.3.자 E병원의 의무기록에는 ‘대학원 공부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2) B의 근로자였던 F은 수사기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사건 사고 후 3년이 지나 원고의 부친인 G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G로부터 ‘원고가 학교에서 1층으로 내려오던 중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들어 알게 되었고, 소속 근로자들에게는 공공연하게 다 알려진 사실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3) 피고 소속 조사관이 B의 화물기사와의 대화내용을 녹취한 기록에는 “원고가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친구가 원고를 밀었는데 허리가 끊어져서 기절했는데 바로만 갔어도, 병원 갔어도 어쩌고 그 말만 했죠”라고 기재되어 있다.
(4) I의 근로자로서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던 H은 2003.12.24. ‘원고가 사고 당시 오후 3~4시 정도에 화물인수증을 사무실에 갖다 주고 바로 내려갔고, 몇 초 있다가 쿵 소리가 났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업무를 계속하다가 약 5분 후 출고 업무 관계로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원고가 계단 맨 밑에 쓰러져 앉은 채로 계단 옆 지지대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보았고, 원고에게 상황을 물어보니 맨 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졌다고 하였다’는 취지로 확인서를 작성하였다.
또한 H은 2016.2.11.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원고가 사고 당일 I에 서류를 전달하러 왔다가 계단에서 넘어진 것을 목격했고, 원고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여서 B에 전화해서 원고 동생인 J가 원고를 병원에 후송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들어, 원고가 학교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것을 업무상 재해로 조작하여 허위로 요양급여신청을 하였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1) 일부 진료기록에 사고 장소가 ‘학교 계단’이라고 기재되어 있기는 하나, ① 병원 입 장에서 사고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아니하고, ② 단지 원고가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사고 장소가 학교로 기재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③ 사고 당시 원고는 장기간 휴학 중이었으므로 학교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2) H의 진술은 그의 진술과 부합하여 신빙성이 있다. 그렇지만 B의 화물기사의 진술은 전문증거에 불과하여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F은 원고의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아니하므로, 허위로 진술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라. 그러나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의료인이 작성하는 진료기록부, 조산기록부, 간호기록부, 그 밖의 진료에 관한 기록(이하 ‘진료기록부 등’이라고 한다)은 위・변조 또는 허위 기재의 가능성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으나, 법령에 따라 의료진이 의무적으로 작성・보존하여야 하는 문서이고(의료법 제22조 참조), 허위의 내용을 기재한 경우에는 자격정지처분을 받거나(같은 법 제66조제1항제3호 참조),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같은 법 제88조제1호 참조).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경우에 사고 장소가 어디인지(특히 이 사건처럼 그 계단이 학교의 계단인지 아니면 사업장의 계단인지)는 환자 측의 진술 없이는 의료진이 알 수 없는 사항으로서, 경험칙상 이 사건 사고 당시 원고를 진료한 의료인이 자신과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사고 장소와 같은 사항을 위와 같은 행정적 제재처분이나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원고 측이 진술한 내용과 다르게 기재하거나 원고 측 진술이 없었음에도 임의로 사고 장소를 학교라고 기재하였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한 원고 측이 D병원 응급센터 등에 내원하였을 때 의료진에게, 사실은 I 사업장에 서 사고를 당하였으면서도 학교 계단에서 사고를 당하였다고 허위로 진술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진료기록부 등의 작성 과정과 기재 내용, 이 사건 사고를 둘러싼 정황 등에 비추어 보면, 사고 장소가 ‘학교 계단’이라고 하는 위 진료기록부 등의 기재는 원고 측의 진술 내용을 그대로 기재한 것으로서, 실제 사고 장소가 학교 계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런데도 원심은 서로 배치되는 관련자들의 진술내용에 대하여 법정에서 증인신문을 통하여 직접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그중 H의 확인서 등의 내용만을 채택하고,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의료인이 직무상 작성한 진료기록부 등의 기재 내용을 쉽사리 배척함으로써, 이 사건 요양결정 취소처분 및 이 사건 징수처분의 처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르지 아니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 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보영(재판장) 김창석 이기택(주심)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