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망인은 공무에 해당하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각종 업무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로를 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 발병·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 서울행정법원 2016.6.23. 선고 2014구합73098 판결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김○○
♣ 피 고 / 공무원연금공단
♣ 변론종결 / 2016.5.26.
<주 문>
1. 피고가 2014.9.17. 원고에게 한 유족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김◇◇는 1992.1.18. 순경으로 임용되어 사망할 때까지 경찰공무원으로 재직을 하였던 사람이다.
나. 김◇◇는 2010.11.15. 진도경찰서 정보보안과 정보경비계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진도경찰서의 관할 구역인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2014.4.16.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여 승객 대다수가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고(이하 ‘세월호 사고’라 한다)가 발생하였다. 김◇◇는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부터 2014.6.26.까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다. 김◇◇는 2014.6.26. 21:55경 진도대교에서 울돌목 해상으로 투신하였고, 2014.7.5. 그 인근에서 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이하 김◇◇를 ‘망인’이라 한다). 망인에 대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망인의 사망 원인은 ‘익사에 의한 기도 폐쇄’였고, 사고의 종류는 ‘자살에 의한 익사’였다.
라. 망인의 아내인 원고는 2014.7.16. 피고에게 망인의 사망과 관련하여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여 달라고 청구하였다. 피고는 2014.9.17. 원고에게 ‘망인의 투신은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 되었다기보다는 과거의 개인적인 사유에서 기인한 심리적 외상과 기질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대했던 특진 심사에서 탈락한 데 따른 좌절감 또는 서운함으로 과도하게 마신 술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순간적인 판단력 저하 또는 우발적 충동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보이므로 망인의 사망은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위 유족보상금 청구에 대하여 부지급 결정을 한다고 통보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4, 5, 6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세월호 사고 이후 투신일까지 73일 중 3일만 귀가하였을 뿐 나머지 70일을 진도 팽목항이나 실내체육관 등지에서 지냈다. 망인은 그 73일 동안 거의 매일 인양된 시신을 접하였고 가족의 죽음을 맞은 유가족과 접하였다. 이처럼 망인은 세월호 사고현장에서 과로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죽음에 관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으며 이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투신을 하였다. 그렇다면 망인의 업무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관련 법령
▣ 구 공무원연금법(2015.6.22. 법률 제1338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공무원연금법’이라 한다)
제61조(유족보상금 및 순직유족보상금) ① 공무원이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한 경우 또는 재직 중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하거나 퇴직 후 3년 이내에 그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그 유족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한다.
다. 인정 사실
아래의 사실은 갑 제2, 3, 5, 7, 8호증, 을 제1, 2, 3호증의 각 기재, 증인 송○○의 증언, 이 법원의 각 감정촉탁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1) 세월호 사고 이후 사망 이전까지 망인의 근무 상황
가) 망인은 2014.4.16.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이후 사망할 때까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주요 정보 업무와 사고 수습 업무를 수행하였다. 망인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직후 단독으로 민간 어선을 타고 세월호 침몰 현장에 나가 상황을 살피고 관련 정보를 입수하여 보고하였으며, 그때부터 2014.6.26. 투신할 때까지 재난 상황을 파악하여 보고하는 업무, 실종자와 유실물을 수색하는 업무, 사고 희생자의 시신이 인양되면 그 시신의 상태와 인상착의를 확인하여 유가족을 찾아주는 업무,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를 장소(팽목항, 실내체육관 등)를 마련하고 관리하는 업무, 실종자 가족들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전달하는 업무, 세월호 사고에 따른 인근 어민들과 소상공인들의 피해에 대하여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업무 등을 계속해서 수행하였다.
나) 망인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이후 24시간 정보 외근 활동 및 정보·경비 상황유지 업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따라 세월호 사고 발생일인 2014.4.16.부터 투신을 한 2014.6.26.까지 70여 일 동안 3~4일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였다. 망인은 세월호 사고 발생 전인 2014년 1월부터 3월까지는 매월 54~65시간 가량 시간 외 근무를 하였고 휴일 근무는 전혀 하지 않았으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이후인 2014년 4월에는 139시간의 시간 외 근무와 3일의 휴일 근무를, 2014년 5월에는 206시간의 시간 외 근무와 10일의 휴일 근무를, 2014년 6월에는 130시간의 시간외 근무와 7일의 휴일 근무를 각각 하였다.
2) 세월호 사고 이후 사망 이전까지 망인의 육체적·정신적 상태 등
가) 망인은 위와 같이 두 달여에 걸쳐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동료들이나 가족들에게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망인은 아내인 원고에게 가끔 전화하여 ‘잠도 잘 못 자고 차에서 잔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집에 자주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원고와 딸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또한 망인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시신을 찾은 날에는 종종 원고에게 전화하여 ‘안쓰러워 못 보겠다’고 하면서 가슴이 아프다며 계속 울기만 하다 전화를 끊곤 하였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너무 깊숙이 빠져 들었다, 나를 꺼내주라’는 호소를 하기도 하였다.
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며칠 후인 2014.4.20. 망인의 아버지 등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일이 진행되었는데, 망인은 위와 같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수습 업무 등을 수행하느라 그 자리에 가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 이후 망인이 사망하기 전까지 망인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족 간의 불화 등은 없었다.
3) 투신하기 전과 투신 당시의 망인의 상황
가) 한편 2014.6.경에는 망인 등을 대상으로 2014년 상반기 특별승진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특히 망인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행정 업무(재난사고 조치 등)’ 유공으로 특진 대상자로 추천되었다. 망인은 투신하기 전날인 2014.6.25. 오후에 특진 심사를 위한 면접을 보았다. 그러나 망인은 최종적으로 특진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였고, 그 사실을 면접을 본 당일 저녁 무렵에 알게 되었다. 망인은 특진에서 탈락한 사실을 안 직후 동료인 이○○과 만나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망인은 특진에서 탈락한 것이 다소 서운하다는 말을 하였으나 그 밖에는 이○○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나) 망인은 위와 같이 특진에서 탈락한 다음 날이자 투신을 한 당일에도 통상적인 날과 마찬가지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즉 망인은 2014.6.26. 오전부터 오후까지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면담하였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실종자 가족들의 의견을 전달하였으며, 진도 팽목항을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면담하였다. 망인은 위와 같이 업무를 수행한 이후 저녁 무렵 동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20:00경 원고에게 전화하여 ‘나 지금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하고 있다’고 하였고, 동료들에게 전화를 바꿔 주어 원고와 통화하게 하였다.
다) 망인은 위와 같이 동료들과 자리를 가진 후 동료들과 헤어져 혼자 귀가를 하게 되었다. 망인은 귀가를 하는 과정에서 20:30경 진도읍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러 주인에게 ‘일곱 살 딸이 있다, 우수영이 집인데 검문소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요청하였고, 망인이 경찰관임을 알아본 위 음식점 주인은 이를 수락하여 자신의 승용차에 망인을 태우고 우수영 방향으로 향하였다. 차를 타고 가는 과정에서 망인은 갑자기 큰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이에 놀란 위 음식점 주인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망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집에는 세 번밖에 가지 못했다, 일곱 살 딸이 있는데 많이 보고 싶다, 실내체육관에서 유족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없던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 아들이 죽어 힘이 많이 들었는데 유가족들을 보니까 더 괴롭다, 내가 잘못되면 일곱살 딸을 위해 5만 원 부조해 달라’고 하였다. 망인은 위 음식점 주인에게 ‘유가족들이 경찰을 무시하고 우습게 본다, 사장님도 내가 우습게 보이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위 음식점 주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하였다. 위 음식점 주인은 망인의 상태를 보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차를 두세 번 정도 멈추었는데, 그러자 망인은 ‘여기서 차를 세우면 내려서 그냥 차에 뛰어들어 버리겠다’고 하였고, 이에 위 음식점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우수영 쪽으로 계속 차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진도대교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망인이 진도대교 중간 지점에서 내려 달라고 하였고, 그 말을 들은 위 음식점 주인은 진도대교까지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차를 진행 방향 우측으로 세우려고 하였는데, 그 순간 망인이 운전대를 붙잡으며 차를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였으나 위 음식점 주인은 차를 세웠다. 그러자 망인은 차에서 내렸고, 위 음식점 주인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하였으나 대답을 하지 않고 진도대교 쪽으로 뛰어갔다. 이에 위 음식점 주인은 진도대교 부근 경찰 초소에 있던 경찰관에게 신고를 하였다.
라) 그 후 망인은 진도대교 위에서 다른 경찰관에게 발견되었는데, 망인의 동료인 이○○이 연락을 받고 그 현장에 나갔을 때 망인은 진도대교의 난간을 넘어가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하면서 뛰어내린다고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은 망인에게 접근하여 ‘무슨 일이냐’고 하면서 말을 걸었고, 그 후 망인과 이○○은 난간을 사이에 두고 앉은 상태에서 약 25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망인은 ‘세월호 사고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원고와 딸에게 미안하다, 최근에 아버지 묘 이장을 했는데 가 보지도 못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였고, 이○○에게 자신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여 이○○이 전화를 걸어 바꿔 주자 동생에게 ‘원고와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후 망인은 이○○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면서 옆에 있던 소주병에 든 소주를 몇 모금 더 마시고 담배를 몇 대 더 피운 다음 갑자기 ‘간다’라고 하면서 진도대교 아래로 투신하였다.
4) 망인에 관한 그 밖의 사정
가) 망인은 이혼을 한 후 2006년에 원고와 재혼하였는데, 이혼 전 아내와 사이에서 딸과 아들 1명씩을 두었고, 원고와 사이에서 딸 1명을 두었다. 그런데 망인의 아들은 2012년 2월경 투신하여 자살을 하였다.
나) 망인은 사망 이전까지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없고, 세월호 사고 발생 이전까지 정신과적 질병을 추측할 만한 증상을 보였던 적도 없다.
5) 망인에 대한 의학적 소견
가) 이 사건 소송에서 망인의 사망에 관하여 감정을 한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소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은 다음과 같은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1) 비록 세월호 사고의 처리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피로가 상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진급에서 누락되기 전까지는 망인에게 자살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 식당 주인이 진도대교로 데려다주는 동안에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로 확고한 자살 의도를 지속적으로 표출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망인이 음주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식당 주인과의 대화에서 주변 상황과 개인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어 사고 당시 망인이 음주로 판단력을 잃을 정도였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3) 망인은 승진 탈락 이후 자살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사고 당일 지인들과의 음주 도중 자살을 결행하기로 결정하고 자살에 따른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만취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4) 망인의 이혼과 아들의 자살은,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여 망인이 이미 그에 따른 심리적 부담·충격에 적응하였다고 볼 수 있고, 망인이 그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치료를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망인의 자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였다고 할 수 없다.
(5) 세월호 사고 처리와 관련된 신체적·심리적 고통이 과도한 음주와 투신자살의 한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사고 처리에 따른 정신적 어려움으로 죽겠다고 결정하였다면 승진 신청을 하거나 면접에 가지 않고 포기했어야 하나 망인은 특진에 대하여 희망적으로 기대하고 있었고, 세월호 사고 후 2개월여가 경과하여 사고 처리과정이 비교적 안정 단계였기 때문에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줄 만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없으며, 사고 처리를 담당하였던 다른 직원들도 같은 수준의 업무 과다 상태(과로)였을 것이나 같은 문제(자살)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세월호 사고 처리의 과도한 업무가 망인의 투신자살에 직접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승진탈락이 망인의 과도한 음주 및 투신자살과 더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 이 사건 소송에서 망인의 사망에 관하여 감정을 한 국립나주병원 소속 정신과 전문의 송○○은 다음과 같은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1) 망인은 세월호 사고 이후 개인이 감당하기에 과다하다고 할 수 있는 업무량의 증가를 경험하였다.
(2) 망인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희생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의 훼손된 시신을 반복해서 확인하며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여겨지나, 업무상 이를 피하지 못하고 지속해야 하면서 괴로움이 더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망인은 세월호 사고 이후 희생자 가족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 가족들이 느끼는 슬픔과 대부분의 실종자들이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감정적으로 그 가족들에게 일부 동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는 자살로 사망한 자신의 아들사건이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3) 망인은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감정적 변화를 보였을 것이다. 망인은 세월호 사고 후 수습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이나 동료 경찰들에게 ‘나를 꺼내주라’, ‘요즘 돌아버리겠다’,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자 봤으면 좋겠다’ 등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말을 하거나 평소와 달리 민원인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등 감정 조절이 안 되는 모습이 점차 심해졌으며, 우울, 불안, 절망감, 불면 등 당시 보인 모습을 토대로 판단하였을 때 지속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장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망인은 위와 같이 세월호 사고 수습으로 격무에 시달리며 육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도중 특진 시험 자격에 해당하여 면접을 보았을 것이고, 결과에 대해 기대를 품던 중 탈락 소식을 듣고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망인은 70여 일이 넘는 기간 동안 가족들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매달려 왔던 업무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였다는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다.
(5) 투신 직전 식당 주인이나 동료 경찰들과 했던 대화 등을 통해 유추해 볼 때 망인은 중증의 우울 상태였다고 판단된다. 망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지속되고 과다한 공무상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승진 누락이라는 스트레스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라. 판단
1) 구 공무원연금법 제61조제1항에서 정한 유족보상금 지급 요건이 되는 ‘공무상 질병’은 공무 집행 중 그 공무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을 뜻하는 것이므로, 공무와 질병의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공무원이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공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공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자살자의 질병이나 후유 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 기간, 회복 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6.11. 선고 2011두32898 판결 참조).
2) 앞서 본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가) 먼저 망인이 공무 수행 과정에서 과로를 하였고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즉 망인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투신을 한 날까지 70여 일 동안 3~4일을 제외하고는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채 경찰서나 세월호 사고 현장 등에서 숙식하면서 공무에 해당하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각종 업무들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망인은 위 70여 일 동안 시간 외 근무를 한 시간이 그 전보다 2~3배나 늘었고, 특히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던 휴일 근무를 월 3~10일씩 하였다. 그중 2014년 5월에는 휴일 근무를 10일 하였는데 이는 어린이날과 주말을 포함하여 그 달의 공휴일에 모두 근무를 한 것에 해당하며, 2014년 4월, 6월에 휴일 근무를 각각 3일, 7일 한 것 역시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시점과 망인이 투신한 시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세월호 사고발생 이후 거의 모든 공휴일에 근무를 한 것에 해당한다. 나아가 망인은 세월호 사고발생 당일 사고 장소에 출동하여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이후에도 인양된 희생자의 시신을 확인해 유가족에게 인계하는 업무를 계속 수행하면서 수많은 시신을 접하였을 뿐 아니라, 가족의 사망·실종으로 인한 슬픔과 상실감을 안고 있는 희생자·실종자의 유가족들을 직접 대면하고 면담하는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위와 같이 망인이 대형 재난을 수습하는 최전선에서 공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죽음과 슬픔·상실감에 직접적·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받은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수준을 양적·질적으로 훨씬 초과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봄이 타당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보다 스트레스 요인에 더 많이 노출되는 환경에 있는 경찰공무원으로서도 통상적으로는 겪기가 어려운 이례적인 스트레스라고 봄이 타당하다.
나) 그리고 위와 같은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위 70여 일의 기간이 지나는 동안 망인에게 급성으로 우울증이 발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망인은 위 기간 가족에게 ‘집에 자주 가지 못해 미안하다’,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고, 동료들에게도 ‘나를 꺼내주라’, ‘요즘 돌아버리겠다’,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잠을 자 봤으면 좋겠다’는 등의 호소를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망인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시신을 찾은 날에는 종종 가족에게 전화하여 ‘안쓰러워 못 보겠다’,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울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망인의 말과 행동은 우울증이 발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망인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기 약 2년 전인 2012년 2월경 아들이 자살로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바가 있는데, 이러한 경험이 위에서 본 수많은 죽음에 직접적·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겹쳐 망인에게 급격히 우울증을 발병케 하였을 개연성이 있다. 비록 피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망인이 직접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여 우울증의 발병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망인이 세월호 사고 이전까지 우울증 등 정신적 질환으로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은 전력이 없었다는 사정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추단케 하는 사정으로 봄이 타당하다(대법원 2015.1.29. 선고 2013두16760 판결 참조).
다) 한편 위와 같이 망인에게 우울증이 발병한 상태에서 2014.6.25. 있었던 특진심사에서 망인이 탈락하게 된 사정이 망인에게 이미 발병해 있던 우울증을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즉 망인은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두 달 가까이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도 상반기 특별승진 대상자로 추천되었는데, 최종 면접 단계에서 특별승진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자 실망을 하면서 서운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감과 서운함이 망인에게 발병해 있던 우울증을 악화시켰을 개연성이 있다. 피고는 망인이 위와 같이 특진 심사에서 탈락하였다는 사정은 망인의 사망과 공무 수행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뿐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위 특진은 정기 승진 등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승진 절차와는 달리 세월호사고라는 대형 재난에 임하여 두 달 가까이 격무를 무릅쓰고 성실히 직무에 임하였던 경찰공무원들의 노고와 공을 치하하고 평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망인 역시 약 두 달 동안 가족들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과로와 스트레스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이를 감내하고 성실히 근무하였던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실망감과 서운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므로, 망인의 위 특진 탈락은 단순히 ‘승진에서 탈락하였다는 사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망인이 당시 두 달 넘도록 거의 매일 출근하여 수행하고 있던 ‘세월호 관련 업무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정’으로 작용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위 특진 탈락은 망인이 수행하던 세월호 관련 업무와 망인의 우울증 악화 등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다(서울고등법원 2013.12.19. 선고 2012누27505 판결 참조).
라) 나아가 위와 같은 망인의 우울증 발병 및 악화로 인하여 망인은 투신하기 직전 통상적인 사람에게 기대되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및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망인은 2014.6.26. 투신하기 직전인 20:30경~21:55경 사이에 앞서 본 바와 같이 음식점 주인의 차에 동승해 진도대교를 향해 가던 중 갑자기 큰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세월호 참사이후 집에는 세 번밖에 가지 못했다, 일곱 살 딸이 있는데 많이 보고 싶다, 실내체육관에서 유족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없던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 아들이 죽어 힘이 많이 들었는데 유가족들을 보니까 더 괴롭다, 내가 잘못되면 일곱 살 딸을 위해 5만 원 부조해 달라’, ‘여기서 차를 세우면 내려서 그냥 차에 뛰어들어 버리겠다’는 등 계속해서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하였고 위 음식점 주인이 망인의 자살을 우려하여 진도대교로 향하던 차를 세우려 하자 이를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으며, 진도대교에서는 난간 밖으로 걸터앉아 동료인 이○○에게 ‘세월호 사고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원고와 딸에게 미안하다, 최근에 아버지 묘 이장을 했는데 가 보지도 못했다’는 말 등을 하고 전화로 동생에게 ‘원고와 딸을 잘 부탁한다’는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하였는데, 이러한 망인의 행위는 정상적인 인식능력과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을 가진 사람의 언행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마) 이상에서 살펴본 사정들에다가, ① 피고는 망인이 투신 직전 만취해 있었으므로 공무상 정신 질환의 개입 없이 음주와 자의에 의하여 투신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앞서본 바와 같이 망인이 투신하기 직전 음식점에 들러 음식점 주인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위 음식점 주인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였고 그 대화의 과정에서 주변 상황과 개인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진술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에 망인이 만취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② 망인은 사망 이전까지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없었고, 세월호 사고 발생 전까지 정신과적 질병의 발현으로 추측될만한 증상을 보였던 적도 없는 점, ③ 망인은 2006년에 재혼을 한 이후로 가족 관계가 원만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그 밖에 달리 망인을 자살에 이르게 할 만한 다른 동기나 계기가 되는 사유를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더해 보면, 망인은 공무에 해당하는 세월호사고와 관련된 각종 업무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로를 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 발병·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와 달리 그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을 전제로 원고의 유족보상금 지급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유진현(재판장) 서범욱 이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