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반도체 웨이퍼 가공공정에서 연마 및 세정 등의 업무를 수행해온 근로자가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진단받고 사망한 사안으로, 근로자가 근무하는 동안 디클로로메탄을 포함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전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 발병한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본 사례.


【서울행정법원 2025.4.18. 선고 2022구합70544판결】

 

• 서울행정법원 제3부 판결

• 사 건 / 2022구합70544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A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25.03.07.

• 판결선고 / 2025.04.18.

 

<주 문>

1. 피고가 2021.1.7.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고 B(19**.*.**.생,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2004.**.**.경부터 2016.*.**.경까지 C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에서 반도체 웨이퍼 연마 및 세정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나. 망인은 2016.12.1. 건강검진에서 혈색소 수치 이상 소견을 보였고 2017.3.5.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던 중 2018.12.30. 사망하였다. 망인의 사망진단서상 직접사인은 폐렴, 선행사인은 이 사건 상병이다.

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피고에게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피고는 2021.1.7. 원고에게 ‘망인이 작업 중 불산, 염산, 질산, 황산, 극저주파전자기장, 디클로로메탄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고 추정한다 하더라도, 작업환경측정 결과나 역학조사회신서를 참고할 때 취급하였던 유해물질의 양이나 노출 빈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고, 노출 물질과 이 사건 상병과의 관련성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므로,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다수 위원들의 의견 등을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라. 원고는 피고에 대한 심사청구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대한 재심사청구를 거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25, 26, 31호증, 을 제1, 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3.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망인은 D 주식회사(이하 회사명을 지칭할 때는 ‘주식회사’를 생략한다)에서 3년 4개월간 근무하면서 발암성과 제한적 관계를 갖는 디클로로메탄을 취급하였고,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11년 1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분산제(LW-850), 불산, 이소프로필 알코올, 과산화수소 등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점, 이 사건 사업장에 환기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아 유기용제의 증기가 작업공간에 잔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근로자에게 개인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점,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11년 1개월 동안 1주 평균 60시간의 과중한 주·야간 교대제 근무를 하면서 비타민 D결핍 증상이 있는 등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건강 상태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이 만성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 판단

1) 관련 법리

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현장에 존재하는 유해요소의 성격이나 그 정도, 근무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그 질병이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하여는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기는 하나, 그중에서도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가 적거나, 기술의 발달 및 사업구조의 변화로 기존의 작업환경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한 표본 자체가 부족할 수 있고, 연구의 필요성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던 요소의 위험성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산업재해의 특성상 근로자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칠 수 있는데,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이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기능을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여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이고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상당인과관계의 판단기준과 제도의 목적·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인과관계와 관련하여 상반되는 연구결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등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어느 한 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일정 수준 이상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그 유해요소와 특정 질환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근로자의 체질이나 기초질병 및 다른 유해요인과 결합하여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25.1.9. 선고 2024두45979 판결 등 참조).

2) 인정사실

가) 망인의 직업력 및 작업환경측정결과상 유해인자

망인의 직업력은 아래 표의 기재와 같다. <표 생략>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수행한 역학조사(이하 ‘이 사건 역학조사’라 한다)는 망인이 위 각 사업장에서 근무할 당시의 작업환경측정결과를 통해 망인이 노출된 유해인자를 살펴보았는데, F, G, H의 경우 작업환경측정결과가 없거나 소음 외의 유해인자는 명시되지 않았고, D의 경우 유해인자로 디메틸아세트아미드, 에탄올, 이소프로필알콜, 디클로로메탄, 혼합물질평가, 에탄올, 소음이 있었으나, 측정결과는 불검출 또는 노출기준 미만이었다. 구체적으로 디클로로메탄의 2002년 측정값은 0(불검출)이었고, 2003년 측정값은 113.7mg/m3(32.73ppm)으로 노출기준 미만이었다.

이 사건 사업장의 유해인자로는 불산(불화수소), 질산, 황산, 염산(염화수소), 기타광물성분진, 소음이 있었으나, 측정결과는 불검출이거나 노출기준 미만이었다. 구체적으로, 에칭 공정의 유해인자로는 2005년 질산(불검출), 황산(0.1244ppm), 염산(불검출), 2006년 질산(0.0885ppm), 2007년 질산(0.0455ppm), 불산(0.0087ppm), 2009년 불산(0.0012ppm)이 있었고, 랩핑 공정의 유해인자로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분진이 있었으나 노출기준 미만이었다.

I의 경우 측정 공정이 실험실 공정 하나였고(망인이 실험실 업무를 담당하였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유해인자로 혼합유기화합물에 벤젠, 크실렌, 톨루엔 같은 방향족탄화수소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측정결과는 모두 불검출이었다.

나) 이 사건 사업장의 작업 공정 및 망인의 직무

이 사건 사업장의 웨이퍼 가공 공정은 웨이퍼 입고 → 엣지 연마 → 랩핑 → 열처리 → 폴리싱(DMP, CMP) → 검사 순서로 진행되었다.

랩핑 공정은 2인치, 4인치 랩핑 장비를 이용하여 웨이퍼 양쪽 면을 균일하게 연마하는 작업으로, 근로자가 케리어라는 쟁반 같은 받침대 위에 웨이퍼를 올려 장비에 투입하고, 장비의 재료투입구에 비커로 연마제(Green silicon carbide, GC) 10kg, 분산제(LW-850) 4L, 물 40L를 투입한 후 자동 랩핑이 끝나면 이동식 압착기구로 웨이퍼를 빼내 라텍스장갑을 착용한 상태에서 흐르는 물에 세정하여 카세트에 하나씩 넣었고, 그 후 카세트에 있는 웨이퍼를 꺼내 제품의 두께 및 평탄도를 측정하는 샘플링검사를 하였으며, 검사 후에 세정조에 담긴 물에 초음파 디핑을 한 후 박스에 담아 열처리실로 인계하였다.

열처리 공정은 웨이퍼를 세정용 카세트로 교체한 후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된 후드 공간 안의 세척조에 세정제(ELTRIT PLC30)를 이용하여 세정하고, 세정완료 후 클린룸에서 세척조의 탈이온수 물을 이용하여 린스 작업 후 스핀드라이에서 웨이퍼를 건조시키고, 카세트에 있는 웨이퍼를 하나씩 꺼내 적층하는 검사 후 클린룸에서 나와 열처리로 투입하고, 열처리가 끝난 웨이퍼를 꺼내 육안검사 후 카세트에 다시 넣어 후공정으로 인계하였다.

망인은 랩핑 공정에서 약 8년 3개월(2004.12.27.부터 2007.9.30.까지, 2007.12.10.부터 2013.6.9.까지), 열처리 공정에서 약 2년 10개월(2013.6.10.부터 2016.4.30.)을 근무하였다. 또한 망인은 2004.12.경 입사 시부터 2008년 말 또는 2009년 초까지 약 4년 동안 랩핑실의 에칭 공정에서 웨이퍼 양면 연마 후 에칭기를 이용해 히팅한 불산 등으로 웨이퍼의 불순물과 스트레스를 제거하는 에칭 업무를 추가로 수행하였다(에칭 공정은 2009년경 폐쇄되었다). 망인은 진술서에서 에칭 공정 시 불산만 사용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망인의 2005년, 2006년 개인특수건강검진표나 작업환경측정 자료에 의하면 에칭 공정의 유해인자로 불산, 염산, 질산, 황산이 있었다.

한편, 이 사건 사업장에서 망인의 1주 평균 근무시간은 약 60시간이고 휴게시간은 1시간의 식사시간과 10분씩 2회에 걸친 휴식시간이 있었고, 2조 2교대 주 6일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였다(주간조는 08시부터 20시까지, 야간조는 20시부터 08시까지 근무하였다).

다) 이 사건 역학조사

이 사건 역학조사는 아래와 같이 업무관련성에 대하여 평가하였다.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웨이퍼의 랩핑, 열처리 작업을 약 11년 1개월간 수행하였고, 작업환경측정결과를 통해 노출된 유해인자로 확인된 것은 질산, 황산, 염산, 불산, 연마제, 분산제, 세정제, 극저주파자기장이다.
 2005년~2009년 작업환경측정결과상 TWA 최대치인 질산 0.885ppm, 황산 0.1244ppm, 불산 0.0087ppm, 염산 불검출 수준으로 보이고, 4년 동안 돌아가며 노출된 것으로 보이나, 이들과 이 사건 상병의 연관성은 부족하다. 특히 불산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발암성을 분류할 만한 충분한 데이터가 없음으로 미분류되어 있다.
 랩핑 공정에서 사용한 연마제 분진의 최대치는 0.483mg/m3으로 노출기준의 10% 수준이고, 열처리공정에서 사용한 세정제(ELTRIT PLC30)는 망인이 직접 취급하지 않았으며, 연마제, 분산제(LW-850), 세정제는 모두 이 사건 상병 또는 림프조혈기계암과의 관련성이 낮아서 평가에서 제외하였다.
 극저주파자기장은 랩핑 공정과 열처리 공정의 장비 수가 달라졌고 작업환경이나 기계는 거의 동일하다는 사업장측의 설명에 따라 현재 장비를 기준으로 직독식으로 밀착거리를 측정하였고, 측정결과 최대치는 1μT수준이다. 그러나 극저주파자기장과 이 사건 상병의 연관성은 논란이 있다.
 망인은 혈관조영제인 이오파미돌을 만드는 D에서 약 3년 4개월간 근무하였는데, 2002년, 2003년 과거 측정결과상 이 사건 상병과의 제한된 근거 물질인 디클로로메탄이 확인되었고, 2004년 상반기부터 디클로로메탄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망인은 2002년 중·하반기부터, 2004년 초·중반까지 최대 약 2년간 0~32.73ppm(113.7mg/m3) 전후 정도의 수준의 디클로로메탄에 노출되었다고 판단된다.
 이에 디클로로메탄, 극저주파전자기장과 이 사건 상병 간의 관련성에 대해 검토하였다. 디클로로메탄의 발암성에 대해 국제암연구소는 간담도암과 백혈병 및 림프종에 제한적(limited) 근거가 있는 Group 2A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급성 골수병 백혈병에 대한 디클로로메탄 노출력과의 연관성을 규명하기에 백혈병 자체에 대한 연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지 않아 통계적 유의성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다. 아직까지 디클로로메탄의 노출과 발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조사팀은 평가하였다.
 국제암연구소는 극저주파전자기장(ELF-EMF)을 Group 3로 분류하고 있고, 소아 백혈병에 제한적(limited)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문헌고찰 내용을 종합하면, 소아의 백혈병을 제외한 성인의 백혈병의 경우 극저주파전자기장과 백혈병의 연관성은 아직까지 그 결과가 일관성이 없다.
 망인의 이 사건 상병은 업무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라) 망인의 개인력 및 질병력

망인은 신장 167cm, 체중 62kg이고,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았으며, 혈액질환에 대한 가족력이 없다. 망인의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일반 건강검진내역상 당뇨질환, 빈혈관리, 이상지질혈증, 비만관리 등의 소견이 있다. 망인의 건강진단상 혈색소 수치는 2013년 12.5g/dL, 2014년 13.3g/dL, 2015년 11.9g/dL, 2016년 9.4g/dL로 감소하였고, 2017.2.11. 혈액검사에서 범혈구감소증 소견을 보였으며, 2017.3.5. 이 사건 상병으로 진단받았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5, 6, 27 내지 29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3) 구체적 판단

앞서 본 인정사실, 앞서 든 증거, 갑 제3, 4, 7 내지 24, 30, 32 내지 130호증, 을 제4 내지 8호증의 각 기재(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 법원의 L병원장(혈액종양내과, 이하 ‘제1 감정의’라 한다), M원장(직업환경의학과, 이하 ‘제2 감정의’라 한다)에 대한 각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 등에서 근무하는 동안 디클로로메탄을 포함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전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망인에게 이 사건 상병이 발생하였으므로, 이 사건 상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가) 망인은 D에서 3년 4개월간 근무하면서 디클로로메탄을 취급하였는데, 디클로로메탄은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Group 2A 인체발암추정 물질로 분류한 것으로, 간담도암과 백혈병 및 림프종에 제한적(limited) 근거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D의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의하면 디클로로메탄의 2002년 측정값은 0(불검출)이나, 2003년 측정값은 113.7mg/m3(32.73ppm)으로 노출기준(175mg/m3, 50ppm)의 약 65%에 해당하여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위 노출값은 단 한 차례의 측정결과이므로 위 노출값이 해당 사업장에서 3년 4개월 간 근무한 망인의 누적 노출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나아가 D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사업초기에 여러 가지 물질을 도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환경측정 때마다 측정물질이 달라졌다고 하고, 특히 1999년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대한 자료는 보관하고 있지 않아 위 기간 동안 취급한 물질은 아예 확인되지 않았는바, 이 사건 역학조사에서 망인이 위 측정 시점 이외의 시점에 사용한 유해화학물질을 누락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나)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11년 1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연마제(GC), 분산제(LW-850), 세정제(ELTRIT PLC30), 극저주파전자기장에 노출되었고, 그 중 약 4년 동안은 에칭 작업을 하면서 질산, 황산, 염산, 불산에도 노출되었다.

이 중 극저주파전자기장은 국제암연구소가 Group 3 인체발암성미분류물질로 분류한 것으로, 소아 백혈병에 제한적(limited) 근거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Group 3는 Group 4 인체비발암성추정물질과는 달리 사람에 대한 발암성의 근거가 불충분하고(inadequate), 실험용 동물에 대한 발암성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제한적인 경우(inadequate or limited)이므로, 위 등급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 곧바로 비발암성 물질이자 전반적으로 안전한 물질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역학조사에서 검토한 문헌에 의하여도 환자-대조군 연구에서 극저주파자기장과 백혈병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도 존재한다.

이 사건 역학조사는 망인이 근무할 당시와 역학조사 당시의 작업환경이 거의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역학조사 당시 장비를 기준으로 극저주파전자기장의 노출수준을 측정하였고, 측정결과 최대치는 1μT이었다. 이는 유럽환경의학학술원의 2016년 극저주파전자기장 노출권고 하한(최대값 1μT)에 해당하여 적지 않은 수준인 데다가, 망인이 근무할 당시에 비해 역학조사 시점에는 장비 수가 늘어났으므로 망인이 근무할 당시의 노출수준은 위 측정값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는 점, 위 한 차례 측정결과가 망인의 누적 노출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극저주파전자기장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이 이 사건 상병 발병에 유해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 반도체 제조업에서는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고 직접 취급하지 않더라도 공정 중 부산물로 발생할 수 있는 물질이 있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노출 가능한 유해물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작업환경측정 등은 대개 하루 동안 이루어지는 일회적인 것이므로 다른 시기에 발생한 유해물질이 누락되거나 작업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높은 농도의 화학물질이 발생하였음에도 최대치 측정이 누락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현재의 측정기술로 측정이 불가능한 유해인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일반 덴탈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 것 외에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만한 적절한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료 근로자가 ‘2006년경 인산, 황산 등 약품을 서로 희석할 때 약품이 서로 반응하여 수증기로 인해 호흡이 어렵고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웠다. 당시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건강에 지속적으로 영향이 가해진다고 생각된다’라고 진술한 점, 이 사건 사업장에 대한 2015.7.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도 ‘크린룸은 공조시설이 설치된 반면, 그 외의 대부분은 특별히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단지 벽에 부착된 팬에 의존하여 환기 작업을 한다. 별도의 유기시료 보관실은 있으나 일반 서랍장에 보관중이어서 휘발된 유기용제의 증기가 보관실에 남아있는 상태이다’라고 지적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근로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대부분의 공간에 환기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보인다.

이처럼 망인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만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환경측정결과상 측정된 유해인자의 노출값보다 더 높은 수준 또는 유해인자 외에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라) 특히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1주 평균 약 60시간, 주 6일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였다. N병원의 2012.11.9.자 소견서에 의하면 망인은 기존질환인 당뇨병 이외에도 상세불명의 비타민D결핍, 상세불명의 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치료를 받았고, 주·야간 교대근무로 인한 만성피로 등의 증상과 스트레스 관련 증상을 호소하였으며, 이에 대해 주치의의 개인적 소견으로 직업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혈당 조절이나 스트레스 관련 증상 호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주·야간 교대근무는 취침시간 불규칙, 수면부족, 생활리듬 및 생체리듬의 혼란으로 암 성장 억제 효과를 가진 호르몬이 교란될 가능성이 있어 그 자체로 질병을 촉발하거나 신체 면역력을 저하시켜 질병 발생 및 악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암연구소는 신체의 밤낮 주기를 붕괴시키는 주·야간 교대근무를 Group 2A로 분류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망인이 누적된 장시간 근무와 주·야간 교대근무로 인하여 신체 항상성이 취약하고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디클로로메탄을 포함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자기장 등과 같은 유해요소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망인의 신체에 악영향을 주어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마) 망인은 최초 입사 전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이 사건 상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 가족력이 없는데도,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60~70세)보다 훨씬 이른 만 44세 무렵에 이 사건 상병으로 진단받고 사망하였는바, 위와 같은 업무환경이 망인의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및 악화에 기여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바) 제1 감정의는 ‘국제암연구소는 발암인자의 종류만 분류하고 있고 노출의 양 및 기간에 대하여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위 발암인자와 동일한 물질이 존재한다고 하여 그 물질이 질병을 일으켰다고 단언할 수 없다. 원고가 제시한 자료는 발암인자의 종류에만 국한되어 있고, 암을 일으킨다는 것이 입증된 정도의 충분한 세기와 충분한 노출이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으므로, 이것만으로 위 물질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을 초래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하다’라는 소견을 제시하였으나, 앞서 본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을 고려한 관련 법리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이 이 사건 상병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확인할 만한 자료가 부족한 것을 두고 의학적·자연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해석하여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

사) 제2 감정의는 원고가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만한 요소로 주장하는 것 중 ‘망인이 젊어서부터 다양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무를 시작했다는 점, 만 44세 무렵에 발병하여 이 사건 상병의 평균 발병 연령대보다 빨랐다는 점(2016년 망인의 연령대인 40~44세의 이 사건 상병 발생률은 10만 명당 1.2명, 0.0012%), 과거 작업환경은 작업환경측정 결과보다 나빴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초기 사업장은 도전적인 생산 시기로 다양한 화학물질을 취급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물질이 기록에서는 누락 또는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잔업으로 인한 근무시간이 길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하였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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