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인 피고인은 다른 매장으로 발령 받자 사직 의사를 밝히고 퇴사하기 회사 직원들에게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낸 혐의로 기소되었는바, 이 사건 이메일은 피고인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한 피고인의 주된 동기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설령 부수적으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 전보인사에 대한 불만 등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22.1.13. 선고 2017도19516 판결】
• 대법원 제3부 판결
• 사 건 / 2017도19516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 피고인 / A
• 상고인 / 피고인
• 원심판결 / 서울동부지방법원 2017.11.10. 선고 2017노903 판결
• 판결선고 / 2022.01.13.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관련 법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고 한다) 제70조에서 정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란 가해의 의사와 목적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는 드러낸 사실의 내용과 성질,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 표현 자체에 관한 여러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비방할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라는 방향에서 상반되므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 여기에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란 드러낸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드러낸 것이어야 한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그 밖에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 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공인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침해의 정도,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2020.3.2. 선고 2018도15868 판결 등 참조).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행위자에게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12.10. 선고 2020도11471 판결 등 참조).
2. 가.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피고인은 2013.6.3. B 주식회사(이하 ‘C'라고 한다)에 입사하여 2014.8.27.부터 본사 마케팅본부 마케팅팀 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피해자는 2000.12.11. C에 입사하여 2014.8.27.부터 본사 영업운영본부 영업지원팀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15.4.1.부터는 본사 경영지원본부 HR(Human Resource, 인사)팀 과장으로, 2015.6.21.부터는 HR팀 차장(팀장)으로 근무하였다.
2) 피고인과 피해자는 피고인이 C에 입사할 당시 피해자가 채용 및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피고인의 입사 이후 같은 부서나 팀에서 근무하지는 않았다.
3) 피해자는 2014.10.20.경 퇴근 시간 이후 피고인 및 다른 사원 3명과 함께 술자리(이하 ‘이 사건 술자리’라고 한다)를 갖게 되었는데, 이 사건 술자리에서 원형 테이블 옆자리에 앉아 있던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테이블 아래로 손을 잡는 등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다. 다만 그 경위와 관련하여 피고인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의사에 반하여 테이블 아래로 다른 사원들 몰래 피고인의 손을 잡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해자는 피고인이 먼저 테이블 아래로 피해자의 손을 여러 번 잡아 당황하였고, 1차 끝나고 나올 때 술에 취한 피고인이 갑자기 피해자에게 안겨서 깜짝 놀라 피고인을 밀어내기까지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4) 피해자는 이 사건 술자리가 끝날 무렵인 20:59경부터 23:49경까지 약 12회에 걸쳐 피고인에게 일방적으로 ‘오늘 같이 가요’, ‘맥줏집 가면 옆에 앉아요. 싫음 반대편’, ‘답 안 주네. 힘들게 안 할게’, ‘집에 데려다줄게요’, ‘얘기할 것도 있는데’, ‘나 그냥 가요?’, ‘언제까지 기다려’, ‘왜 전화 안 하니’, ‘남친이랑 있어. 답 못 넣은거니’ 등의 문자메시지(이하 ‘이 사건 문자메시지’라고 한다)를 보냈다. 피고인은 위 문자메시지에 대하여 아무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5) 피고인은 2016.3.21. C 둔촌동 매장으로 전보 발령(이하 ‘이 사건 전보인사’라고 한다)을 받았고, 2016.4.3. 회사에 사직의 의사를 표시한 후 2016.4.20.경 퇴사하였다.
6) 피고인은 2016.4.4. 16:28경 C 소속 전국 208개 매장 대표와 본사 직원 80여명에게 ‘C 성희롱 피해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이하 ‘이 사건 이메일’이라고 한다)을 보냈는데, 위 이메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 HR팀장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사람들을 모아 마련한 자리에서 테이블 밑으로 손을 잡으며 성추행이 이뤄졌고, 그 이후에 문자로 추가 희롱이 있었다. 당황스러웠고 무서웠으며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다. 현재 절차상 성희롱 고충 상담 및 처리 담당자가 성희롱을 했던 HR팀장이므로 불이익이 갈까 싶어 말하지 못하였다. 이제 C를 떠나게 되었고 C의 발전을 위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또 불편부당 신고안내문에 적힌 내용처럼 C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처리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이 메일을 보낸다. 사내에서 성희롱 교육을 담당하고 성희롱 고충 상담을 들어주고 처리하는 업무를 하는 현 HR팀장이 직장 내 성희롱을 한 자신의 사례가 있으니 같은 일이 발생한 직원들은 팀장님이나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가족부 등으로 신고하기 바란다. 또한 관련 사건에 대한 고소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또 다른 피해자분들이 있으면 현명하게 판단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피고인은 이 사건 이메일에 이 사건 문자메시지를 캡처한 사진,「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라고 한다) 중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 등 관련 규정, C의 ‘매장 내 불편부당한 내용 신고안내문’ 등을 첨부하였다.
7) C 영업관리 본부장은 이 사건 이메일이 발송된 다음 날인 2016.4.5.경 피고인과 피해자를 순차적으로 따로 면담하였는데,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가 잘못했다, 안 했다를 떠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 (피해자가) HR팀장을 하는 것은 맞지 않으니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하고, 피해자는 ‘본인은 아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술 취해서 그런 것 같다, 2년 전 일이라 본인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얘기하였다. 그 후 피해자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2016.4.8. HR팀장에서 경영지원본부 EHS팀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8) 피고인은 2016.4.6. 직장 내 성희롱이 있었다는 이유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C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였으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2016.5.23.경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행정종결 처리하였다.
나. 이러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1) 이 사건 이메일에서 문제가 되는 명예훼손적 표현은 현재 HR팀장으로서 직장 내 성희롱 등 고충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피해자로부터 과거에 성추행을 당하고 성희롱적인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직장 내 성추행이나 성희롱의 문제는 회사조직 자체는 물론이고,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으로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2) 이 사건 술자리 당시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동석한 다른 사원들 몰래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고, 그 직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일방적으로 옆에 앉으라거나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면서 답장이나 전화를 채근하는 이 사건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한다. 한편 이 사건 술자리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의사에 반하여 손을 잡았는지 여부가 다소 불분명하기는 하나, ① 이 사건 술자리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② 당시 피해자는 유부남이었고, 피고인은 비공개 사내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남자친구가 위 술자리에 동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피해자는 이 사건 이메일 발송일 다음 날 있었던 본부장과의 면담 과정에서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말하였다가, 이 사건 고소 이래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을 먼저 잡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과정 및 횟수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나아가 ‘피고인이 갑자기 안기는 바람에 깜짝 놀라 피고인을 밀어냈다’고까지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주장과 같이 회사에 입사한 지 채 2년이 안 된 사원인 피고인이 다른 사원들 몰래 테이블 아래로 15년 차 다른 팀 과장인 피해자의 손을 먼저 잡거나 피해자를 껴안았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3) 피해자는 이 사건 술자리에서 이성(異性)의 부하직원과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였고, 피고인에게 성희롱적인 내용이 포함된 이 사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스로 위와 같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4) 피고인은 이 사건 이메일의 수신인을 C 매장 대표와 본사 소속 직원들로 한정하여 발송하였고, 이 사건 이메일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등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이메일에서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하여 유사사례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인 신고와 처리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그 동기를 밝히고 있고,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 등 관련 규정과 C의 ‘매장 내 불편부당한 내용 신고안내문’을 함께 첨부하였다.
5)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곧바로 알리거나 문제로 삼을 경우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 내에서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 등 이른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가질 수 있고, 더구나 피해자는 2015.4.1.부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었는바, 피고인이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이를 문제 삼거나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 사건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
다. 이러한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 사건 이메일은 피고인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이메일을 전송한 피고인의 주된 동기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설령 부수적으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 전보인사에 대한 불만 등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보통신망법 제70조제1항에서 정한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재형(재판장) 안철상 노정희(주심) 이흥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