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원고가 이 사건 사업장(○○전자 주식회사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된 산화에틸렌,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원고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급성 골수성 백혈병, 왼쪽 결장 반절제술 후 상태)을 발병케 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한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경험칙에 부합하므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 서울행정법원 2018.11.29. 선고 2017구단75661 판결 [요양불승인처분취소]
♣ 원 고 /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18.11.08.
<주 문>
1. 피고가 2017.3.8. 원고에게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2003.6.25. ○○전자 주식회사 반도체 ○○공장(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에 입사하여 ER 샘플관리, FA(Failure Analysis), PA(Process Architecture) 등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2010.5.6.경 ‘급성 골수성 백혈병, 왼쪽 결장 반절제술 후 상태’(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 진단을 받은 후 피고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나. 피고는 ‘근무하였던 장소는 조사일 현재 남아 있지 않아서 과거 업무 현장에 대한 파악 및 위해 요인 노출 위험성에 대한 평가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원고는 식각(Decap)작업 시 주로 사용한 BOE(Buffered Oxide Etch) 용액의 주요 구성성분인 TRITON X-100에 산화에틸렌이 미량 포함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어 정성분석을 하였으나 산화에틸렌은 불검출되었고, 이로 인한 산화에틸렌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이며, 기타 발암성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 또한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으로 이 사건 상병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전문가 소견을 근거로, 2017.3.8. 원고에게 불승인 결정(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다. 이에 원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 청구를 하였으나 2017.8.2.경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로부터 재심사 청구 기각 재결을 받았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이 사건 상병과 관련된 개인 이력이나 가족력이 없던 원고는 어린 나이인 만 18세에 이 사건 사업장에 입사하여 유해한 업무환경으로 알려진 클린룸과 분석실에서 식각작업 등 각종 유해한 업무를 하면서 7년 동안 벤젠, 포름알데히드, 산화에틸렌 등의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고, 상시적으로 연장, 야간, 휴일 근무를 함으로써 위 각 유해인자의 상가작용으로 이 사건 상병이 발병 내지 자연경과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되었으므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됨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인정사실
1) 원고의 경력
원고는 2003.6.25. 이 사건 사업장에 입사하여 LSI제품 기술팀에서 3개월 동안 입문교육연수를 받은 후 2004.6.경까지 ER 샘플관리 업무를, 2004.7.경부터 2008.7.경 까지 DDI(Display Driver IC) PA(Process Architecture) 부서에서 FA 업무를, 2008.8.부터 C&M(Chips card & Microcontroller) 부서에서 PA 업무를 각각 수행하였다.
2) 원고의 구체적인 업무내용과 작업환경 등
가) ER 샘플관리 업무
(1) ER 샘플관리 업무는 비양산 샘플 웨이퍼(대량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견본으로 만들어진 웨이퍼)를 각 업체에 보내기 위해 EDS공정(Electric Die Sort, 웨이퍼상 각각의 칩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공정)까지 끝난 웨이퍼의 수량을 하나하나 세어서 캐리어에 담고 분류하고 전산 입력하는 업무이다.
(2) 원고는 개인보호구는 착용하지 않고 방진복만 착용한 상태로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EDS공정에 1일 2~3회(1회 출입 시 평균 20~40분 정도 체류하였다) 정도 출입하였다.
나) FA 업무
(1) FA 업무는 EDS공정까지 마친 웨이퍼 불량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과 불량과의 연관성, 그 원인을 유발한 생산공정 및 기계 설계상의 문제 등을 분석하여 같은 불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업무로 주로 국소배기장치가 없었던 분석실에서 행해졌다.
(2) FA 업무는, ① EDS공정과 웨이퍼 가공공정(FAB)에서 불량 웨이퍼를 수거하는 작업, ② MS라는 기계로 불량 칩을 찾아내는 작업, ③ 가스 처리작업, ④ 웨이퍼 칩 중 불량 부분을 잘라내는 Cutting작업, ⑤ 웨이퍼 표면을 갈아주는 Grinding작업, ⑥ Grinding작업이 잘 되었는지 Scope로 웨이퍼를 확인하는 Inspection작업, ⑦ 화공 약품을 이용하여 웨이퍼 표면을 처리하는 식각(Decap)작업 및 Package 시료를 발열질산으로 끓여 표면을 제거하는 발열질산작업, ⑧ 고배율 광학 현미경 등으로 불량을 분석하는 작업 순으로 이루어졌다.
(3) 원고는, 불량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확산공정, 포토공정, 식각공정, 증착공정, 이온주입공정 및 연마공정으로 구성된 웨이퍼 가공공정과 EDS공정의 모든 설비 라인에 1주에 3~4일, 1일 수회 정도(1회 체류시간은 최소 30분 이상 최대 3~4시간이었다) 출입하였고, 웨이퍼 표면 코팅을 하면서 검은 그을음을 남기는 성분을 알 수 없는 가스에 노출되었으며, 웨이퍼 칩 중 불량 부분을 잘라내면서 생긴 부서진 가루를 흡입할 수밖에 없었고, 주로 ‘TOP 분석’ 방법과 1~2주에 1회 정도의 ‘버티컬 분석’ 방법으로 실시된 Grinding작업을 하면서 성분을 알 수 없는 하얀 액체를 사용하였는데, 마찰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면서 생긴 고약한 냄새를 흡입하였으며, 식각작업을 하면서 주로 성분을 알 수 없는 Metal 용액, BOE 용액, 발열질산, 불산(HF) 용액, 알루미나 현탁액, 불화수소, 과산화수소, 아세톤과 기타 용액을 사용하면서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원고는 분석실에서 근무할 때 방독마스크가 아닌 일반 마스크와 보안면, 케미컬 침투 방지용 안전장화와 보호장갑을 착용하고 업무를 수행하였다.
(4) 원고가 직접 식각작업을 수행한 분석실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결과표는 아니지만, 2004년 하반기부터 2008년 하반기까지의 이 사건 사업장의 다른 공정의 식각작업 장소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결과표에 의하면, 그 장소에서 모두 기준치에 미달하기는 하나 아세톤(발암성 ACGIH A4), 이소프로필 알콜(발암성 IARC 3, ACGIH A4), 질산, 황산(발암성 고용노동부고시 1A, ACGIH A2), 초산, 과산화수소(발암성 고용노동부고시 2, IARC 3, ACGIH A3), 수산화칼륨(KOH), 인산, 염산(발암성 ACGIH A4)이 검출되었다. 또한 원고가 식각작업을 하면서 사용한 BOE 용액의 구성성분 중 TRITON X-100은 다우케미칼이 개발한 계면활성제로, 그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미량이지만 산화에틸렌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환기상태에서 취급하도록 주의하고 있는데, 산화에틸렌은 IARC(국제암연구소)가 Group 1의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백혈병 등 조혈계암의 유발과 관련하여 인체에는 제한적 증거가 있는 물질이다.
다) PA 업무
(1) PA 업무는 웨이퍼를 제조할 때 사용하여야 할 화학 약품의 용량, 두께, 순서 등을 전산으로 입력하여 타 부서에 결재를 받는 웨이퍼 가공공정 전산관리 업무와 보강되거나 변경되는 웨이퍼 공정을 빠르게 적용시키고 진행시키기 위해서 사람이 투입되는 웨이퍼의 분류 및 물류 이동 업무를 말한다.
(2) 원고는 웨이퍼 가공공정에 출입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약 1시간 동안 그곳에 체류하였고, 웨이퍼의 분류와 이동을 위해 약 4시간 동안 그곳에 체류하였다.
(3) 원고는 심각한 웨이퍼 불량이 발생한 경우에는 FA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라) 원고가 위 업무들을 하면서 출입한 웨이퍼 가공공정의 작업환경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산보연’이라 한다)이 2012.2.경 국내 반도체 제조사업장 3개사의 5개의 웨이퍼 가공공정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한 후 작성한 ‘반도체 제조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 노출특성 연구’에 의하면, 모두 기준치에 미달하기는 하나, 웨이퍼 가공공정에서 포름알데히드, 벤젠, 톨루엔, 크실렌, 페놀(IARC 3, ACGIH A4), 크레졸 등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발생된 사실, 전리방사선과 비전리방사선의 노출이 있는 사실 및 반도체 사업장의 경우 제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입자상 물질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생산 공정이 클린룸 설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공기를 재순환하는 클린룸 설비의 특성상 생산과정에서 발생하여 국소배기장치를 통해 배출되지 않은 유해물질이 생산 공정 내로 재 유입될 수도 있고 인근 작업공정에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3) 원고의 평소 건강상태 등
가) 원고는 1985.10.10.생 여성으로, 평소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았고, 특이 질환력이나 조혈기계 악성질환을 포함한 악성신생물의 가족력 또한 없다.
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작성의 2013.4.16.자 ○○반도체 질병 제보 현황에 의하면, ○○전자 주식회사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 피해 제보는 2013.4.16. 당시 105명(사망자 37명 포함)이고, 이중 80여 명이 암 피해자이며, 백혈병과 림프종, 즉 림프조혈계암 피해자는 39명으로 다른 질환 피해자보다 많다고 하고, 이 사건 사업장에서도 포토 또는 시각 작업을 하던 근로자 5명이 백혈병 또는 비호지킨 림프종 또는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하였다.
다) 산보연은 2008년 국내 6개 반도체 회사 근로자의 고용보험자료와 인사자료를 이용하여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시행한 후 ‘여성의 백혈병 위험도 분석결과, 고용보험 코호트에서 백혈병 사망과 발생이 모두 일반 인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고, 인사자료 코호트에서 표준화사망비와 표준화암등록비는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약간 높았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으나, 이후 2010.1.11.경 2017년 최신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시행한 후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근로자가 대조군에 비하여 백혈병의 표준화발생비가 2.57배로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4) 의학적 견해
가) 원고 주치의
- 급성 골수성 백혈병, 왼쪽 결장 반절제술 후 상태
- 백혈병 진단 후 상태, 호증구 감소 상태로 인한 장염 상태
- 2010.5.경 ○○○○○ 병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된 뒤 항암치료 후 호증구 감소 상태에서 본원 이송됨. 호증구 감소 상태에서 병합된 진균성 장염으로 장절제수술 시행함. 2010.6.23. 완전 관해 확인하였으며 2011.5.2.까지 골수검사상 관해 상태이며 2012.4.24. 말초혈액검사상 정상으로 유지되고 있음.
나) 산보연의 역학조사결과
- 원고의 경우 주로 식각 업무를 담당하였음.
- 현재 원고가 근무했던 장소는 남아 있지 않아서 과거 업무 현장에 대한 파악, 위해요인 노출 위험성에 대한 평가는 제한적임, 하지만 원고가 일했을 당시 적절한 보호구 없이 근무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 원고가 사용했던 유기 화합물 중 BOE의 경우 TRITON X-100이라는 계면활성제가 포함되어 있고, 이로 인해 산화에틸렌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매우 낮음.
-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원고의 백혈병은 업무로 인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생각됨.
다) 피고 자문의
- 진료기록상 급성 골수성 백혈병 소견 확인됨, 상병 왼쪽 결장 반절제술 후 상태는 치료 과정 중 병발한 상태 소견으로 사료됨.
라) 이 법원의 감정촉탁의
(1) 혈액종양내과
-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은 전반적인 여러 피의 세포, 특히, 혈소판, 적혈구, 백혈구, 단핵구 등을 만드는 상부의 혈액줄기세포의 기능이 망가져서 특정한 피의 세포가 과잉으로 만들어지며, 그 결과 정상 세포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져서 빈혈, 혈소판 감소, 좋은 백혈구의 감소 등이 나타남.
- 원인에 대해서는 비유전적 원인과 유전적 원인으로 나누어지며 대부분은 전자, 비유전적 요인임. 한편, 직업적 원인과 비직업적 원인으로 나눌 수도 있겠으며 대부분이 비직업적 원인임. 원인이 일조하는 것들로는 흡연, 항암치료의 경력, 방사선 치료의 경력, 골수이형성질환의 경력, 벤진과 벤진유도체 등임.
- 원고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산업장에서 노출된 chemical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미흡하다고 봄.
(2) 직업환경의학과
-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혈액, 골수 및 기타 조직들이 조혈계의 악성 세포들에 의해 침윤되는 특징을 갖는 이질질환군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병률은 연간 10만 명당 약 3.5명이고, 연령 보정된 발병률은 남자에서 여자보다 높음, 발병률은 나이에 따라 증가하여 65세 미만에서는 1.7이고 65세가 넘으면 15.9임.
- 원인으로는 유전, 방사선, 화학물질 그리고 다른 직업적인 노출 및 약물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병과 관련되어 있음.
- 발암물질인 벤젠의 노출 가능성과 관련하여 화학물질 중 유기용제, 특히 벤젠은 백혈병, 그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의 관련성을 산업, 직종, 노출 매트릭스(노출기간, 노출량)를 통해 보여주고 있음. 벤젠의 원인적 역할에 대한 생물학적 타당성은 모든 백혈병 및 관련 질환이 발생하는 조혈 줄기세포 또는 전구세포에 작용하는 독성에서 비롯되며, 이 독성효과는 직업적으로 낮은 수준의 벤젠 노출에서도 백혈구 저하 현상으로 나타남. 벤젠은 이러한 특징적인 경로를 통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음.
- IARC는 방사선을 1등급에 해당하는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음. 전리방사선은 1급 발암물질로서 고형암과 백혈병 발생과의 관련성이 보고되고 있음. 이와 관련하여 체르노빌 원전사고 시 cleanup 종사자와 핵 관련 산업 종사자, 방사선의 의학적 적용 및 비전리방사선 노출과의 관련이 보고가 되고 있고 용량-반응 관계를 보여주나, 일관성을 보이지 않고 또한 일반 산업 종사자의 전리방사선 노출로 인한 백혈병의 발생 위험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음.
- 상가작용이란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함께 투여하였을 때에, 그 작용이 각 작용의 합과 같은 현상을 말함. 같은 표적기관에 대해 유사한 독성을 가진 두 가지 이상의 혼합물질에 노출된다면 상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봄.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상호작용은 상가적 상호작용이므로, 서로 다른 기관에 작용하지 않는 독성물질이 환경 중에 혼재한 경우에는 각 독성물질의 농도를 그 노출 기준치로 나눈 값을 모두 더하여 1이 넘는 경우에는 기준치를 초과한다고 판단함.
- 화학물질 중 유기용제, 특히 벤젠은 백혈병, 그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의 관련성을 산업, 직종, 노출 매트릭스를 통해 보여주고 있음, 비록 일반 인구집단에서 ppb 단위의 벤젠 노출이 백혈병의 주요 원인인 것 같지는 않으나 최근의 연구에서 사업장에서 벤젠에 노출되는 근로자의 경우 아주 낮은 노출수준에서도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음, 또한 장기간의 저선량의 방사선 노출도 백혈병 발생과 관련이 있음을 보고한 최근의 연구도 있음.
-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아주 드문 질환이고, 비유전적인 원인으로서는 80%가 원인불명이고 나머지가 흡연, 전리방사선, 암 화학요법,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이 약 2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생의 비직업적인 원인(가족력)과 (선천성 질환) 질병력 등을 찾을 수 없다면, 비록 그 노출량이 낮다 하더라도 원고가 화학물질(유기용제 등),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그리고 전리방사선 및 극저주파 자기장이 노출에 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생이 가능하며, 비록 직접적인 직업적 원인으로서 벤젠, 전리방사선의 노출량이 아주 낮은 노출수준이어서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또한 이와 같은 조건(물리적/화학적/정신심리적-장시간 근무/스트레스) 환경에서의 작업은 원인불명의 백혈병의 악화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판단됨.
[인정근거] 위 거시증거, 갑 제4 내지 16호증, 을 제2 내지 4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이 법원의 산보연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이 법원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목동병원장,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장에 대한 각 감정촉탁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다. 판 단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여 안정적으로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분야에서는 작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한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첨단산업은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빈번히 바뀌고 화학물질 그 자체나 작업방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 산업재해의 존부와 발생 원인을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사업장이 개별적인 화학물질의 사용에 관한 법령상 기준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화학물질에서 유해한 부산물이 나오고 근로자가 이러한 화학물질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데, 이러한 위험을 미리 방지할 정도로 법령상 규제 기준이 마련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첨단산업분야의 경우 수많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규범적 차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기업 등 사업자의 과실 유무를 묻지 않고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을 하되,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도록 한다. 산업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발전하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은 이러한 기능은 첨단산업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첨단산업은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은 근로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도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해관계 조정 등의 필요성과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4.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5.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보았듯이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참조).
위 인정사실과 거시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의 사정들을 종합하여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된 산화에틸렌,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원고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을 발병케 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한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경험칙에 부합하므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됨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1) 원고는, 약 4년 동안 FA 업무 중 식각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산화에틸렌, 아세톤, 이소프로필 알콜, 황산, 과산화수소 등에, 또한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내내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제대로 보호장비를 갖추지 못한 채로 웨이퍼 가공공정이나 EDS공정에 수시로 출입하거나 상당한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그 공정에서 발생하였을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에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원고가 웨이퍼 가공공정이나 EDS공정을 직접 담당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그 노출의 정도가 낮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에 낮은 정도로 노출되더라도 발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러한 사정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2) 2004년 하반기부터 2010년 하반기까지의 이 사건 사업장의 다른 공정 식각작업 장소의 작업환경측정 결과표에 벤젠은 측정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위 결과표에서 유해물질의 측정수치가 노출기준을 초과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결과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일정한 시기에 각 공정, 작업장소별로 1회 측정하는 방식은 실제 작업환경의 측정결과로서 한계가 있으며,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유해성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노출 수준 이하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3) 이 사건 상병 중 ‘왼쪽 결장 반절제술 후 상태’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으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방법의 부작용으로 인하여 새로운 상병이 발생하였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원고의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이 역시 업무상 질병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4) 이 법원의 감정촉탁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아주 드문 질환이고, 비유전적인 원인으로서는 80%가 원인불명이며 나머지가 흡연, 전리방사선, 암 화학요법,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이 약 2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생의 비직업적인 원인(가족력)과 (선천성 질환) 질병력 등을 찾을 수 없다면, 비록 그 노출량이 낮다 하더라도 원고가 화학물질(유기용제 등),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그리고 전리방사선 및 극저주파 자기장이 노출에 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생이 가능하며, 비록 직접적인 직업적 원인으로서 벤젠, 전리방사선의 노출량이 아주 낮은 노출수준이어서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또한 이와 같은 환경에서의 작업은 원인불명의 백혈병의 악화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판단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5) 원고가 이 사건 사업장에서 ER 샘플관리 업무, FA 업무, PA 업무를 하면서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수시로 웨이퍼 가공공정 등에 출입하거나 체류한 사실이 인정됨에도, 산보연은 원고가 수행한 위 3가지 업무만을 중심으로 그중 식각 작업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다른 공정의 식각 작업환경에 집중하여 역학조사를 하였을 뿐이고, 벤젠 등 발암물질의 노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웨이퍼 가공공정 등에 대한 작업환경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산보연의 역학조사결과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6)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백혈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6년 동안 근무한 이후에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24세 무렵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
7)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발병률이 우리나라 전체 평균발병률이나 원고와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발병률과 비교하여 유달리 높다면, 이러한 사정 역시 원고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사정으로 볼 수 있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한다.
판사 심홍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