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2항과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에 관하여는 이를 원칙적으로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하지 아니하면서, 다만 ①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근로자가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른 경우, ②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근로자가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른 경우, ③ 근로자가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그 사망을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 중 자살함으로써 이루어진 경우 당초의 업무상 재해인 질병에 기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에 빠져 그 상태에서 자살이 이루어진 때에는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이 상당인과관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 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2] 망인이 비록 자살로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망인은 업무상 재해인 이 사건 상병으로 인하여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등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이 발병하였고 그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사망과 이 사건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 서울행정법원 제12부 2016.12.08. 선고 2016구합59805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장○○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16.11.24.
<주 문>
1. 피고가 2016.1.20.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이 사건 처분의 경위
가. 원고의 남편인 추○○은 ○○○○타운아파트(이하 ‘이 사건 아파트’라 한다)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2014.10.30. 11:30경 사다리와 장대 등을 이용하여 이 사건 아파트에 있는 모과나무의 열매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몸의 균형을 잃고 2m 30cm 높이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였다(이하 ‘이 사건 추락사고’라 한다).
나. 추○○은 이 사건 추락사고로 ‘요추3번 방출성 골절, 마미총증후군, 신경인성방광, 신경인성장’(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에 대하여 요양승인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던 중 2015.5.7. ○○○○병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이하 추○○을 ‘망인’이라 한다).
다.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2015.12.16.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2016.1.20. ‘망인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해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망인은 이 사건 상병과 그 후유증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평생 동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착용하여야 하는 등 사고 전의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감과 좌절감, 가족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인하여 우울증이 생겨 정신적인 이상 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보아야 하므로, 망인의 사망과 이 사건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결국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고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청구를 거부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인정사실
1) 망인의 치료 경과와 사망 경위 등
가) 망인은 2014.10.31. 이 사건 추락사고를 당하여 요추3번 방출성 골절 및 척수신경손상을 입었고, 2014.11.4. 영남대학교병원에서 척추후궁절제술 등을 받았으나 마미총증후군, 신경인성방광, 신경인성장, 변실금, 요실금 등의 후유증이 발생하였다.
나) 망인은 재활치료에 집중하기 위하여 2015.1.2. ○○○병원으로 전원하였고, 전기자극요법, 중추신경계발달재활치료 등을 받으면서 혼자서 음식을 섭취하거나 살살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대소변 장애는 크게 호전되지 아니하여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다) 망인은 2015년 2월부터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였고 이에 ○○○항문외과를 방문하였으나 담당의사로부터 ‘항문의 기능이 거의 상실되었고 치료를 받더라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항문기계를 삽입하여 생활을 하여야 하며 지금보다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으며, 영남대병원에서도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고 평생 대소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라) 이후 망인은 통증과 완치에 대한 조급증으로 짜증을 내고 우울해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원고는 이러한 사실을 간호사에게 알리는 한편 망인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자고 하였으나 망인이 짜증을 내면서 거부하는 바람에 실제 진료를 받지는 못하였다.
마) 망인은 2015.5.4. 이 사건 아파트 관리소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너무 고통스럽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 죽고 싶다. 유서는 이미 써놓았다’라는 등의 말을 하였다.
바) 망인은 사망하기 2주 전쯤 원고에게 자신이 쓴 유서를 보여주면서 ‘더 이상 병이 치료가 안 되어 평생 이래야 한다면 살지 못한다. 통증도 너무 심하고 못 살 것 같다’라는 말을 하였고, 자살할 무렵에는 ‘나는 이렇게 기저귀를 찬 상태에서는 못 산다. 통증이 너무 심하다. 더 이상 못 살겠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사) 망인은 2015.5.7. ○○○병원의 화장실 문 위쪽 고리에 운동화 끈을 연결하여 그 끈에 목을 매어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망인이 남긴 유서에는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하다. 기저귀를 계속 차는 것도 너무 불편하다. 너무 아파서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작업 지시를 받고 모과나무 열매를 따다가 사고를 당하였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다친 놈만 억울하다. 경제적으로도 말이 아니고 앞으로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원고와 두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취지의 글이 적혀 있다.
아) 한편, 망인은 이 사건 추락사고를 전후로 정신과적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적은 없다.
2) 의학적 소견
가) 주치의(○○○병원)
◼ 상병상태와 증상 : 일어나 앉기 가능
◼ 정신적 이상상태 등의 관찰 여부 : 특이한 소견 없었음
◼ 망인의 상병상태로 정신적 이상상태 등이 유발될 수 있었는지 여부 :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인해 힘들어 하였음
나) 피고 원처분기관 자문의
망인은 척추마미총손상으로 요실금 및 회음부 통증이 남아 있는 사람으로 정신과적 상담이나 진료를 받은 적이 없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점에 비추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다) 진료기록감정의
◼ 척추손상으로 인한 신체장애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대소변 가리기, 이동(거동) 등이 제한되기 때문에 환자가 느끼는 삶의 주관적인 질이 매우 낮게 평가됨. 따라서 척추 손상 후에는 많은 환자들이 불안장애나 우울장애로 이환될 가능성이 많음
◼ 망인은 영남대병원과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병행하였으나, 지속적인 통증과 대소변 가리기 실패, 사지마비로 인한 거동 제한 등이 있었음을 진료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음. 또한 치료를 통해 일시적인 통증의 경감 등은 있었으나 증상이 크게 완화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 망인은 영남대병원과 ○○○병원에서 수면제인 졸피뎀을 투여 받음. 기존에 수면제를 투여 받지 않고 지내왔던 환자가 척추 손상 이후 졸피뎀이 투여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우임. 첫 번째로 손상부위의 통증이 심한 경우 수면 장애가 발생하므로 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사용됨. 두 번째로 불안 우울 등의 정신건강의학적 증상이 발생하였을 경우 수면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수면제가 처방됨
◼ ○○○병원 간호기록지에 의하면, 망인은 통증과 대소변 가리기 문제에 대하여 우울감을 호소하였고, 간호사 관찰에서도 우울감이 관찰된다고 기록되어 있음
◼ 유서에 나타난 망인의 심리상태는 첫 번째, 척추 장애로 인한 통증과 대소변 실패 등이 영구 장애로 남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실망감, 두 번째, 사회와 책임자 등에 대한 분노감과 공격성 표출, 세 번째, 경제적 문제 등의 어려움에 대한 좌절감임
◼ 망인이 정신과적 증상으로 진료를 받은 적이 없어 자살을 기도한 주원인이 척추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우울장애인 것인지는 확답을 할 수 없음. 하지만 시간의 인과관계상 일반적인 척추 손상 환자가 심한 우울장애로 자주 이환된다는 점, 망인의 통증, 척추 손상과 관련한 우울감 호소, 간호사에 의하여 관찰된 우울감 등의 자료를 토대로 하여 볼 때, 망인에게는 척추 손상으로 인하여 주요 우울장애가 발생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였을 가능성이 여러 원인 중에 가장 높다고 판단된다. 결국 망인의 자살은 인과관계 면에서 척추 손상 및 그 후유증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4호증, 을 제2 내지 10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
다. 판단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2항과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에 관하여는 이를 원칙적으로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하지 아니하면서, 다만 ①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근로자가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른 경우, ②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근로자가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른 경우, ③ 근로자가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그 사망을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 중 자살함으로써 이루어진 경우 당초의 업무상 재해인 질병에 기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에 빠져 그 상태에서 자살이 이루어진 때에는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이 상당인과관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 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1993.12.14. 선고 93누9392 판결, 대법원 2010.8.19. 선고 2010두8553 판결 등의 취지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인장한 사실과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망인이 비록 자살로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망인은 업무상 재해인 이 사건 상병으로 인하여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등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이 발병하였고 그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사망과 이 사건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① 망인이 이 사건 추락사고를 당한 때로부터 6개월 가량이 지난 후에 자살을 하여 요양기간이 비교적 짧고, 사고 이후 수술과 재활치료를 통하여 혼자서 식사를 하거나 살살 걸을 수 있게 되는 등 일상생활 동작의 수행능력이 부분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망인은 2015년 2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였고 대소변 장애가 있어 기저귀를 사용하기까지 하였다.
② 망인은 의사로부터 이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에 관하여 치료가 불가능하고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실제 요양기간 중 이들 증상이 유의미한 정도로 호전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보면, 망인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통증과 대소변 장애를 평생 동안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한 절망감과 무기력감, 수치심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③ 망인이 요양기간 중 우울증에 대하여 정신과적 진료를 받지는 아니하였으나, 망인과 같이 척추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로 이환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망인은 통증이 심해진 2015년 2월부터 자주 우울감을 호소하며 수면장애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며, 사망 무렵에는 ‘통증이 심해 너무 고통스럽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는 등 우울증이 의심되는 증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진료기록감정의는 망인이 자살하기 전 이 사건 추락사고로 입은 척추 손상으로 인하여 주요 우울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다.
④ 망인이 작성한 유서의 내용에 비추어 보더라도 척추 손상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그리고 이들 증상이 영구 장애로 남을 것에 대한 신병 비관이 자살의 주된 이유임을 알 수 있다.
⑤ 망인이 자살 당시 유서를 남겨 자살을 계획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으나, 위 유서는 자살하기 2주전 쯤 작성된 것인데다가 이를 원고에게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망인이 신변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자살 방법을 준비하는 등 진지한 의사로 자살을 결의한 후 작성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여기에 앞서 본 유서의 내용과 사망 무렵 망인이 처한 육체적・정신적 상태 및 망인이 보여준 언행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유서를 작성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망인의 자살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⑥ 결국 망인은 이 사건 상병으로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등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우울증이 생겼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진료기록감정의 역시 망인의 자살과 이 사건 추락사고로 입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고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청구를 거부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장순욱(재판장) 박기주 이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