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원고들은 피고 회사 등에 대한 기존 근로계약상 근로제공의무의 이행으로서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는 원고들에게 원고들이 중국 현지법인에서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임금지급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여지가 큰 반면, 근로계약의 해지에 관한 원고들과 피고 회사 등의 객관적인 의사가 일치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법원 2021.10.14. 선고 2017다204087 판결】
• 대법원 제2부 판결
• 사 건 / 2017다204087 임금
• 원고, 상고인 / 1. A ~ 5. E
• 피고, 피상고인 / F 주식회사의 소송수계인 회생회사 F 주식회사의 관리인 G
• 원심판결 / 부산고등법원 2016.12.22. 선고 (창원)2015나23331 판결
• 판결선고 / 2021.10.14.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들의 소송수계신청을 기각한다.
소송수계신청으로 인한 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 도과 후 제출된 서면은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과 사정을 알 수 있다.
가. H 기업집단이 주식회사 I, F 주식회사 및 J 주식회사(이하 ‘주식회사’를 생략하고 상호만으로 지칭한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중,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사이에 위 회사들의 출자에 의하여 중국 대련지역에 중국 현지법인인 K 유한공사, L 유한공사, M 유한공사 등(이하 ‘중국 현지법인’이라 한다)이 설립되었다. H 기업집단 소속 위 국내회사들은 중국 또는 홍콩 소재 지주회사를 통하거나 직접 중국 현지법인의 지분 전부를 소유하여 중국 현지법인을 지배하였다. 중국 현지법인은 위 국내 회사들이 영위하던 상선, 특수선 등 선박 건조 및 선박기자재 제조 등과 같은 사업을 주요 목적사업으로 하였다.
나. F 및 J(이하 통칭하는 경우 ‘피고 회사 등’이라 한다)은 중국 현지법인의 설립 무렵부터 위 법인의 인력 요청에 따라 소속 근로자들로 하여금 인사명령을 통해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도록 하였다.
다. 원고들은 2005년 내지 2009년경 피고 회사 등에 입사하였고, 2007년 내지 2012년경 F이 원고 E에게 ‘N 소속근무’를 명하는 것과 같은 피고 회사 등의 인사명령에 따라 국내에서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하여 그 무렵부터 2013년 또는 2014년 1월경까지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였다.
라. 피고 회사 등은 매년 말에 원고들을 비롯한 소속 근로자에게 당해 연도의 퇴직금을 중간정산하여 지급하여 왔다.
피고 회사 등은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을 명한 근로자들에게 2009년 이전에는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을 직접 지급하였으나, 2009년경부터는 중국 정부의 정책 등에 따라 인사이동 무렵을 기준으로 계산된 중간정산 퇴직금만을 지급하였고 인사이동 이후의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은 중국 현지법인이 지급하였다.
이에 따라 2007년경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한 원고 A, B, C, D은 2008년경까지는 국내 근무기간 뿐 아니라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기간에 대하여도 J으로부터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을 지급받았으나, 2009년경 이후부터는 중국 현지법인으로부터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한편, 2012.3.1.부터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원고 E은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할 무렵 2012년 중 국내 근무기간인 2012.1.1.부터 2012.2.29.까지의 근로에 대한 중간정산 퇴직금을 F으로부터 일할계산하여 지급받았고, 이후부터는 중국 현지법인으로부터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마. 원고들은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할 당시 피고 회사 등에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퇴직 의사를 표시한 바 없고, 중국 현지법인에 입사신청, 면접 등 실질적인 채용절차를 밟은 바도 없다. 원고들은 피고 회사 등의 인사명령에 따라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였고, 그 근무기간 중인 2012년 또는 2013년에 작성된 연봉계약서에는 ‘한국 원소속사’가 F이라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다.
바. 피고 회사 등은 원고들에게 중국 현지법인 근무기간 동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을 제공하는 한편, 내부 전산망에 원고들의 국내 소속 표시를 유지하였다. 또한 원고 A, B, C, D에 대하여 중국 현지법인 근무기간 중이던 2009.1.1.자로 위 원고들이 소속된 J의 사업부가 F으로 이전됨에 따라 위 원고들의 소속이 F으로 변경되었음을 내부 전산망에 공시하였다.
사. 위 나.항과 같이 피고 회사 등의 인사명령에 따라 중국 현지법인으로 이동하여 근무하였던 근로자들 중 상당수가 피고 회사 등 국내 소속회사로 복귀하였는데, 원고 B 및 D도 2013.6.경 중국 현지법인 근무를 마치고 F으로 복귀하였다. 원고 B 및 D이 2013.7.1. F과 사이에 작성한 연봉계약서에는 중국 현지법인 근무기간을 포함한 ‘2013.1.1.부터 2013.12.31.까지’를 연봉적용기간으로 하여 산정된 연봉금액이 기재되어 있고 그 중 월정급여에 속하는 직무수당에 관하여 ‘해외 주재원 파견으로 인해 주재수당을 지급’한 경우에는 직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다.
한편, 나머지 원고들은 중국 현지법인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한 것으로 보인다.
아. F에 대하여 2016.6.7.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회합100109호로 회생절차 개시결정이 내려졌고, 같은 달 28. 피고가 관리인으로 선임되었다.
2. 원심은,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중국 현지법인 근무기간 중 2012년 이후에 중국 현지법인으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임금 및 중간정산 퇴직금 등의 지급을 구함에 대하여, 판시와 같이 원고들은 피고 회사 등과의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하고 중국 현지법인과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설령 원고들과 F 사이의 근로계약 관계가 유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은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동안 F에 대한 근로제공을 중단한 것이라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배척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전적은 종전 기업과의 근로관계를 합의해지하고, 이적하게 될 기업과 사이에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서, 근로자가 전적명령에 응하여 종전 기업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수령한 다음 이적하게 될 기업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전적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대법원 1998.12.11. 선고 98다36924 판결 등 참조).
계약의 합의해지는 계속적 채권채무관계에서 당사자가 이미 체결한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 계약의 합의해지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대법원 2018.12.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 등 참조).
한편, 채권의 포기 또는 채무의 면제는 반드시 명시적인 의사표시만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고 채권자의 어떠한 행위 내지 의사표시의 해석에 의하여 그것이 채권의 포기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도 이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기는 하나, 이와 같이 인정하기 위하여는 당해 권리관계의 내용에 따라 이에 대한 채권자의 행위 내지 의사표시의 해석을 엄격히 하여 그 적용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87.3.24. 선고 86다카1907, 1908 판결, 대법원 2013.6.13. 선고 2011다94509 판결 등 참조).
나. 앞서 본 사실관계를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판단할 수 있다.
1) 피고 회사 등이 원고들에게 인사명령을 한 것과 중국 현지법인으로의 이동 무렵 원고들에게 중간정산 퇴직금을 지급한 것이 전적 등 근로계약의 종료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거나 근로계약의 종료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고들은 피고 회사 등의 인사명령에 따라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였고, 원고들이 중국 현지법인으로의 이동 무렵 피고 회사 등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퇴직의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달리 피고 회사 등과 원고들이 근로계약 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근로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볼 사정을 찾기 어렵다.
2) 근로관계에서 임금지급책임을 부담하는 주체의 임금지급능력은 근로자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런데 원고들이 중국 현지법인에서 제공하는 근로에 관하여 피고 회사 등에 대한 임금채권을 포기 또는 피고 회사 등의 임금지급책임을 면제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거나 그럴만한 사정을 찾기도 어렵다.
3) 원고들이 중국 취업비자를 발급받은 점, 중국 현지법인과 연봉계약을 체결한 점, 근로제공에 관하여 중국 현지법인의 지휘·감독을 받은 점, F에 대한 복귀 여부나 시기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점 등 원심이 드는 사정만으로는 원고들과 피고회사 등이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하였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원심과 같이 F이 원고들에게 고용보험 등을 제공한 사정이 H 기업집단의 계열회사로서 근로자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4) 따라서 원고들은 피고 회사 등에 대한 기존 근로계약상 근로제공의무의 이행으로서 중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는 원고들에게 원고들이 중국 현지법인에서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임금지급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여지가 큰 반면, 근로계약의 해지에 관한 원고들과 피고 회사 등의 객관적인 의사가 일치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5) 그럼에도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위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는 근로계약의 합의해지 및 임금지급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원고들의 소송수계신청
기록에 의하면, 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인 2017.7.3. F에 대한 회생절차 종결결정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나, 상고심 소송절차가 이와 같은 단계에 이르러 변론 없이 판결을 선고할 때에는 소송수계의 필요성이 없으므로(대법원 2014.1.16. 선고 2012다33532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의 소송수계신청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5.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며, 원고들의 소송수계신청을 기각하고 소송수계신청으로 인한 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동원(재판장) 조재연(주심) 민유숙 천대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