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계약금만 지급된 단계에서는 어느 당사자나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그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자유롭게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되지 않는 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단계에 이른 때에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있게 된다. 그때부터 매도인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지위에 있는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계약 내용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주기 전에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고 제3자 앞으로 그 처분에 따른 등기를 마쳐준 행위는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 또는 보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이다. 이는 매수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배임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8.5.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리고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순위보전의 효력이 있는 가등기를 마쳐주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향후 매수인에게 손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준 것일 뿐 그 자체로 물권변동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매도인으로서는 소유권을 이전하여 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가등기로 인하여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변경된다고 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보건대, 피고인이 피해 회사에게 이 사건 가등기를 마쳐주었다고 하더라도 피해 회사로부터 계약금, 중도금 및 잔금 중 일부까지 지급받은 이상 매수인인 피해 회사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야 할 신임관계에 있고 따라서 피고인은 피해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20.5.14. 선고 2019도16228 판결】
• 대법원 제1부 판결
• 사 건 / 2019도16228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 피고인 / A
• 상고인 / 검사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9.10.30. 선고 2019노1025 판결
• 판결선고 / 2020.05.14.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2015.9.18. 피해자 주식회사 D(이하 ‘피해회사’라고 한다)에게 피고인 소유의 이 사건 토지를 52억 원에 양도하되 10억 원(계약 금 4억 원, 중도금 2억 원, 잔금 4억 원)은 실제 지급하고, 나머지 42억 원은 이 사건 토지에 설정된 E조합 명의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를 변제하는 방법으로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이 사건 매매계약 및 사업시행대행계약을 체결한 후 2016.3.경까지 피해 회사로부터 계약금, 중도금 및 잔금 중 일부로 합계 825,225,110원을 교부받았으므로 피해 회사에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어야 할 임무가 있었음에도, 2016.3.31. F에게 이 사건 토지를 매도하고 2016.4.4. F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줌으로써 이 사건 토지의 매매대금 5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피해 회사에 같은 금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는 것이다.
2. 이에 대하여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피고인이 2015.10.29. 피해 회사로부터 계약금 4억 원 중 약 3억 2,100만 원만 지급받은 상태에서 피해 회사 명의로 이 사건 가등기를 마쳐줌으로써 피고인의 이중매매에도 불구하고 피해 회사가 피고인의 아무런 협력 없이도 가등기의 순위보전 효력에 의해 자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준 이상, 피고인이 피해 회사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신임관계가 양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설령 피해 회사가 이후 중도금까지 지급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 회사에 대하여 배임죄에 있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3.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과 대조하여 살펴본다.
가.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계약금만 지급된 단계에서는 어느 당사자나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그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자유롭게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되지 않는 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단계에 이른 때에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있게 된다. 그때부터 매도인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지위에 있는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계약 내용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주기 전에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고 제3자 앞으로 그 처분에 따른 등기를 마쳐준 행위는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 또는 보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이다. 이는 매수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배임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8.5.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리고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순위보전의 효력이 있는 가등기를 마쳐주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향후 매수인에게 손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준 것일 뿐 그 자체로 물권변동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매도인으로서는 소유권을 이전하여 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가등기로 인하여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변경된다고 할 수 없다.
나.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피해 회사에게 이 사건 가등기를 마쳐주었다고 하더라도 피해 회사로부터 계약금, 중도금 및 잔금 중 일부까지 지급받은 이상 매수인인 피해 회사의 재산보전에 협력하여야 할 신임관계에 있고 따라서 피고인은 피해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피고인이 피해 회사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정화(재판장) 권순일(주심) 이기택 김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