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죄의 수단인 ‘협박’의 의의와 판단 기준
◆ 대법원 2013.09.13. 선고 2013도6809 판결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 피고인 /
♣ 상고인 / 피고인
♣ 원심판결 / 대전지법 2013.5.23. 선고 2013노283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한다.
1.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내용과 함께 피해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한 메모지를 피해자가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집 현관에 부착한 점, 피고인은 이 사건 공갈 범행 무렵 하루에도 10여 회 이상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면서 욕설과 피해자를 협박하는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금전채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정도의 수단과 방법으로 피해자를 협박하여 금원을 교부받은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갈의 점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2. 그러나 이러한 원심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공갈죄의 수단으로서의 협박은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하고, 해악의 고지는 반드시 명시의 방법에 의할 것을 요하지 않고 언어나 거동에 의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떠한 해악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면 족하며, 이러한 해악의 고지가 비록 정당한 권리의 실현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라고 하여도 그 권리실현의 수단·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다면 공갈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여기서 어떠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 것인지는 그 행위의 주관적인 측면과 객관적인 측면, 즉 추구된 목적과 선택된 수단을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5.3.10. 선고 94도2422 판결 참조).
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의하면, 피해자는 피고인과 2002.1.3.부터 동거를 하면서 피고인 명의의 국민은행 계좌(계좌번호 생략)를 이용하여 인터넷 게임머니를 환전해주는 사업을 함께 영위하고 있었던 사실, 피해자는 2002.5.13. 피고인과 헤어질 목적으로 가출하여 대전에 있는 친정집으로 가면서 피고인의 휴대전화와 국민은행 통장을 들고 나간 사실, 그 바람에 게임머니를 구입하기 위하여 대금을 입금하였음에도 피고인이 그 입금한 고객을 확인할 수 없어서 게임머니 아이템을 공급해 주지 못하자, 고객들이 피고인을 사기죄로 고소하겠다고 위협을 한 사실, 피해자가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둔 채 연락을 피하자 피고인은 2002.5.14. 피해자가 머물고 있던 대전에 있는 피해자의 친정집에 찾아가 게임머니를 입금한 사람들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되었다면서 임의로 가져간 고객정보와 게임머니 환전 사업을 하면서 피고인의 통장에서 임의로 인출해간 돈을 배상하여 준다면 경찰서에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메모를 붙인 사실, 피해자는 2002.5.15. 메모지를 확인하고서야 게임머니를 구입한 내역과 고객정보를 피고인에게 알려준 사실, 피고인은 2012.5.17. 피고인과 피해자가 동업으로 게임머니 판매 사업을 하면서 번 3,000만 원 중 절반가량인 1,500만 원 상당은 피고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면서 1,500만 원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그 무렵부터 피해자에게 훔쳐간 장부와 통장을 빨리 반환하라거나 소장 부본을 빨리 송달받으라거나 재판을 통해 자신이 받을 돈을 지급받고 빨리 끝내기를 바란다는 등의 내용으로 된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낸 사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하자 그 직후 친정집 대문에 메모를 붙인 행위 등에 대하여 폭행 및 협박죄로 고소장을 제출하였는데, 그 당시 고소장에서 피고인이 금품을 요구한다는 내용을 언급한 적은 없었던 사실, 그 이후 피고인과 피해자는 2012.5.25. 변호사사무실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1,50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되 피고인은 위 민사소송을 취하하는 한편 향후 피해자 또는 그 가족들에게 전화나 서면 등으로 면접하지 않고 돈 등을 요구하지 않으며 인터넷 등에 피해자 혹은 ‘K양’ 등의 내용으로 피해자와 관련된 내용을 기재하지 않기로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1,500만 원의 10배의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각서를 작성한 사실, 피해자는 2012.5.25. 자신이 한 형사 고소를 취하하였고 피고인은 같은 날 피해자에게 자신 소유의 에쿠스 자동차를 증여하겠다면서 배송하였으나 피해자가 이를 피고인에게 다시 돌려보낸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게임머니 환전 사업에 필수적인 휴대전화와 장부 및 피고인 명의의 예금통장을 피해자가 가출하면서 몰래 가지고 간 행위를 따지는 한편 위 장부와 예금통장 등의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거나 메모를 친정집에 붙이고, 피해자를 상대로 게임머니 환전 사업을 하면서 번 돈 중 절반의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후 그 소장 부본 수령을 재촉하면서 판결 결과에 따라 빨리 손해배상금을 정산할 것을 요구한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라 할 것이고, 그러한 정당한 권리행사를 하면서 다소 위협적인 언사를 사용하였다고 하여도 이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정도의 것으로서 공갈죄의 수단인 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1,5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2012.5.25.자 합의각서에 따라서 14,550,000원을 지급하였는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합의각서의 내용은 피해자가 변호사의 조력 등을 받아 작성한 것으로서 그 내용 대부분이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것일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이를 위반할 경우 피고인이 지급받은 돈의 10배에 해당하는 돈을 배상하기로 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점, 피고인과 피해자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협박에 의하여 외포심을 느껴서 이 사건 합의각서를 작성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피해자의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피고인이 제기한 민사소송 등을 취하시키는 한편 피해자 측과 향후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겠다는 피고인의 확실한 약속을 문서화하기 위하여 이 사건 합의각서를 작성받기 위한 반대급부로 피해자의 자의적인 선택에 따라 피고인에게 금품을 교부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금품을 갈취할 고의로 사회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정도의 수단과 방법으로 피해자를 협박하였고, 이에 외포된 피해자가 이 사건 합의각서를 작성한 후 그에 따라 피고인에게 14,550,000원을 지급하였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갈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공갈죄 부분은 파기되어야 할 것이나, 원심은 이를 나머지 죄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처단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신(재판장) 민일영 이인복(주심) 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