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2] 다만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3] 한편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보호대상으로 삼는 아동·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그 나이, 성장과정, 환경,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일반적·평균적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또는 충분한 보호와 교육을 받은 또래의 시각에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4] 이와 달리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종전 판례인 대법원 2001.12.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대법원 2002.7.12. 선고 2002도2029 판결, 대법원 2007.9.21. 선고 2007도6190 판결, 대법원 2012.9.27. 선고 2012도9119 판결, 대법원 2014.9.4. 선고 2014도8423, 2014전도151 판결 등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그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 피고인이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으로 가장하여 14세의 피해자와 온라인으로 교제하던 중, 교제를 지속하고 스토킹하는 여자를 떼어내려면 자신의 선배와 성관계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이에 응한 피해자를 그 선배로 가장하여 간음한 사안임.
원심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는 종전 판례에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함.
대법원은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 이와 다른 취지의 종전 판례를 변경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음.
이러한 법정의견에 대하여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의 보충의견이 있음.
【대법원 2020.8.27. 선고 2015도9436 판결】
• 대법원 판결
• 사 건 / 2015도9436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위계등간음)]
• 피고인 / 피고인
• 상고인 / 검사
• 원심판결 / 광주고등법원 2015.6.11. 선고 2015노145 판결
• 판결선고 / 2020.8.27.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경위와 쟁점
가. 공소사실의 요지
1) 피고인은 2014.7. 중순경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알게 된 14세의 피해자에게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생인 공소외인’이라고 거짓으로 소개하고 채팅을 통해 피해자와 사귀기로 하였다.
2) 피고인은 2014.8. 초순경 피해자에게 ‘사실은 나(공소외인)를 좋아해서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을 해서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나의 선배와 성관계하면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였다.
3) 피해자는 피고인과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피고인의 제안을 승낙하였고, 피고인은 마치 자신이 공소외인의 선배인 것처럼 행세하며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4) 이로써 피고인은 위계로 아동·청소년인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에 대해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오인, 착각, 부지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라는 대법원 2001.12.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등(이하 ‘종전 판례’라고 한다)의 판시에 따라, 피해자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속았던 것뿐이므로 피고인의 간음행위는 형법 등에서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는 위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다. 이 사건의 쟁점
형법 등이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를 위와 같이 해석한 종전 판례가 유지될 수 있는지 여부가 원심판결의 당부를 가리는 쟁점이 된다.
이하에서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경위,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의 의미 등을 종합하여 종전 판례의 유지 여부를 판단한다.
2.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경위
가. 위계에 의한 간음에 대한 처벌규정은 1953년 제정형법에서 시작되었다. 제정형법은 이를 제2편 제32장 정조에 관한 죄의 일부로서 규정하였는데, 당시의 법정형은 강간죄는 물론 강제추행죄의 법정형보다도 가벼웠고, 그중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렇듯 제정형법 당시 위계에 의한 간음죄는 부녀의 정조 보호를 입법목적으로 하면서 강간죄·강제추행죄보다 가벌성이 낮은 보충적 유형의 범죄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 그 후 형법의 1995.12.29.자 개정으로 제2편 제32장의 표목에서 ‘정조에 관한 죄’라는 표현이 삭제되었다. 또한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도 대상으로 규정하였던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가 헌법재판소 2009.11.26. 선고 2008헌바58 등 위헌결정 및 그 취지 등을 반영하여 폐지됨에 따라 형법상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대상은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등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만으로 한정되었다.
다. 형사특별법에서도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 규정이 신설되었다.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는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그중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사항이 분리되어 2010.4.15.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고 한다)에 규정되었다]의 1997.8.22.자 개정으로, 여자 청소년에 대하여는 2000.2.3. 구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제명이 개정되었다. 이하 모두 ‘청소년성보호법’이라고 한다)의 제정으로,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여자에 대하여는 성폭력처벌법의 2011.11.17.자 개정으로 각 처벌규정이 마련되었고,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법정형으로 규정되었다. 그 후 13세 미만자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법정형은 무기징역까지로 상향개정되었다. 이는 형법상 강간죄보다 더 중한 형을 규정한 것이다.
라. 위와 같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개정경과 및 이 사건에 적용되는 2014년 무렵의 법률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아동·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을 보호대상으로 하고 강간죄 등과 비견되는 독립적인 가벌성을 지닌 범죄로 규정하여, 행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의 의미
가.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이다(대법원 2009.5.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성적 자기결정권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념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로 이해된다(헌법재판소 2002.10.31. 선고 99헌바40 등 결정 참조). 여기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성행위를 결정할 권리라는 적극적 측면과 함께 원치 않는 성행위를 거부할 권리라는 소극적 측면이 함께 존재하는데,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비롯한 강간과 추행의 죄는 소극적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대법원 2019.6.13. 선고 2019도3341 판결 참조).
나. 이 사건 피해자는 14세로서 19세 미만의 자를 일컫는 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청소년에 해당한다.
국가와 사회는 아동·청소년에 대하여 다양한 보호의무를 부담한다. 국가는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헌법 제34조제4항), 초·중등교육을 실시할 의무(교육기본법 제8조)를 부담한다. 사법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친권자는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양육하여야 하고(민법 제913조),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한 법률 행위는 원칙적으로 그 사유에 제한 없이 취소할 수 있다(민법 제5조).
법원도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아동·청소년이 특별히 보호되어야 할 대상임을 전제로 판단해왔다. 대법원은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행위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아동이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기인한 것인지 가려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고(대법원 2015.7.9. 선고 2013도7787 판결 참조), 아동복지법상 아동매매죄에 있어서 설령 아동 자신이 동의하였더라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5.8.27. 선고 2015도6480 판결 참조). 아동·청소년이 자신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제작하는 데에 동의하였더라도 원칙적으로 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제작죄를 구성한다는 판시(대법원 2015.2.12. 선고 2014도11501, 2014전도197 판결 참조)도 같은 취지이다.
이와 같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는, 아동·청소년은 사회적·문화적 제약 등으로 아직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지적·심리적·관계적 자원의 부족으로 타인의 성적 침해 또는 착취행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청소년은 성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성 건강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 침해 또는 착취행위는 아동·청소년이 성과 관련한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추구하고 자율적 인격을 형성·발전시키는 데에 심각하고 지속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아동·청소년이 외관상 성적 결정 또는 동의로 보이는 언동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의 이용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아동·청소년의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다. 그 외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보호대상으로 규정한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도 나이, 정신기능 등의 장애, 행위자와 피해자 사이의 종속적인 관계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행위자를 비롯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어렵고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과정에서 내부 정신작용이 왜곡되기 쉽다는 점에서는 앞서 본 아동·청소년의 경우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4.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
가.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위계의 개념 및 앞서 본 바와 같이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행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입법 태도, 피해자의 인지적·심리적·관계적 특성으로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 등을 종합하면,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왜곡된 성적 결정에 기초하여 성행위를 하였다면 왜곡이 발생한 지점이 성행위 그 자체인지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인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나. 다만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다. 한편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보호대상으로 삼는 아동·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그 나이, 성장과정, 환경,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일반적·평균적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또는 충분한 보호와 교육을 받은 또래의 시각에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라. 이와 달리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종전 판례인 대법원 2001.12.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대법원 2002.7.12. 선고 2002도2029 판결, 대법원 2007.9.21. 선고 2007도6190 판결, 대법원 2012.9.27. 선고 2012도9119 판결, 대법원 2014.9.4. 선고 2014도8423, 2014전도151 판결 등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그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5. 판단
가. 원심판결 이유 및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36세 남성인 피고인은 고등학교 2학년 공소외인의 행세를 하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14세의 피해자를 사귀게 되었다.
2) 그 과정에서 피고인은 공소외인을 스토킹하는 여성의 행세를 하며 피해자에게 자신도 공소외인을 좋아하는데 공소외인을 좋아하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도발하는 한편, 공소외인의 행세도 하며 피해자에게 자신을 스토킹하는 여성 때문에 너무 힘들고 만약 자신과 헤어지기 싫다면 그 여성의 요청대로 자신의 선배와 성관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러한 도발과 부탁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3) 결국 공소외인과 헤어질 것이 두려웠던 피해자는 공소외인의 선배를 만나 성관계하는 데에 동의하였고, 이를 위해 새벽에 고속버스를 타고 피고인이 지정한 장소로 이동하였다. 피고인은 공소외인의 선배 행세를 하며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4) 피해자는 이러한 사실을 부모가 알게 될 것이 두려워 사건 발생 후 12일이 지나서야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하였고, 그 후 부모와 떨어져 다른 도시의 청소년보호시설에서 생활하였다.
나. 위와 같은 사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14세에 불과한 아동·청소년인 피해자는 36세 피고인이 허구로 설정한 상황 속에서 상당기간 자극적인 내용의 도발과 부탁에 시달렸다. 아울러 이 사건 전후 피해자의 태도 및 행적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부모로부터 충분한 보호, 양육을 받지 못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러한 사정들은 당시 피해자가 온전하게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웠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속아 자신이 공소외인의 선배와 성관계를 하는 것만이 공소외인을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고 공소외인과 연인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오인하여 공소외인의 선배로 가장한 피고인과 성관계를 하였다. 피해자가 위와 같은 오인에 빠지지 않았다면 피고인과의 성행위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가 오인한 상황은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이고, 이를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인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한 것이므로 이러한 피고인의 간음행위는 위계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와 달리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6.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의 보충의견이 있다.
7.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의 보충의견
이 사건 쟁점과 관련한 최근의 법개정 상황에 비추어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를 보충하고자 한다.
가. 성폭력범죄를 규율하는 형법, 성폭력처벌법, 청소년성보호법은 역동적으로 개정되었으며 특히 폭행·협박에 이르지 않는 수단에 의한 성폭력범죄에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는 성폭력범죄를,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 즉 피해자의 의사가 완전히 제압될 수 있는 물리적 강제력을 수단으로 하는 것으로 상정하였던 전통적 사고의 틀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범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형법의 2018.10.16.자 개정으로 업무·고용을 매개로 보호감독 하에 있는 사람을 위계 등으로 간음한 경우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형 기준 종전의 5년에서 7년으로, 구금된 사람을 간음한 경우 법정형의 상한이 종전의 7년에서 10년으로 각 상향되었다. 성폭력처벌법은 같은 보호대상을 추행한 행위를 처벌하는데, 같은 일자 개정으로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형 기준 종전의 2년 또는 3년에서 3년 또는 5년으로 상향되었다.
직장·조직 내부에서 의사결정권·업무수행지시권 등을 매개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권력형 성폭력사건이 피해자 개인은 물론 사회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침에도 이를 상대적으로 낮은 형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어 부당하였다는 취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 특히 주목할 만한 법개정은 13세에서 15세 사이의 아동·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는 규정이다. 청소년성보호법의 2019.1.15.자 개정으로 19세 이상의 사람이 위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추행한 행위를 처벌하게 되었다가(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 형법의 2020.5.19.자 개정으로 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에서 15세 사이의 아동·청소년을 간음·추행하면 수단의 강제성 유무 및 정도를 묻지 않고 처벌하게 되었다(형법 제305조제2항). 이 사건 피해자는 14세, 피고인은 36세이므로 위와 같은 개정법 하에서는 수단을 불문하고 처벌대상이 된다.
성개방과 성상품화 풍조가 만연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아동·청소년은 성행위 및 그 상대방을 선택하는 사회규범과 성행위의 상호반응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하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거나 자신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이들은 폭행·협박이나 위계·위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개입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성행위에 응하는 경우가 있고, 그 결과 자신을 착취하고 학대하며 해를 끼치는 성행위의 대상이 된다. 이들의 성적 관계맺기와 의사결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령 성행위에 동의한 듯이 보이더라도 착취적이고 학대적인 성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동·청소년을 위한 법적 안전망을 강화하여야 한다.
성폭력피해자,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성폭력피해를 당하였음에도 자신이 비난받을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죄책감과 주변 사람에게 알려질 수도 있다는 걱정 및 자신이 당한 피해가 범죄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어렵고 신고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피해신고를 포기하는 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강제력 행사의 태양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외관상 성행위에 동의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이들의 성적 피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아동·청소년이 성매매에 나섰다가 오히려 이를 빌미로 협박 등을 당해 또 다른 성착취를 당하는 경우를 차단할 필요도 있다. 위 각 규정에는 이러한 형사정책적인 취지가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앞서 판시한 바와 같이, 성폭력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의 약한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결국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중대한 성폭력범죄에 해당한다는 규범적 판단과 맥을 같이 한다.
결과적으로 위와 같은 입법은 16세 미만자가 성행위에 동의한 외관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쉽게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16세 미만자의 성행위는 형식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존중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보호되어야 할 성이 침해되었는지 여부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상과 같이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주심)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김상환 노태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