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2021.12.23. 선고 2020구합71918 판결

 

• 서울행정법원 제13부 판결

• 사 건 / 2020구합71918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 원 고 / 송○○

• 피 고 /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 피고보조참가인 / 한국○○○스 주식회사

• 변론종결 / 2021.09.23.

• 판결선고 / 2021.12.23.

<주 문>

1. 중앙노동위원회가 2020.6.26. 원고와 피고보조참가인 사이의 중앙2020부해92호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하여 내린 재심판정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 중 보조참가로 인한 부분은 피고보조참가인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재심판정의 경위

 

가. 피고보조참가인(이하 ‘참가인’이라고 한다)은 1998.2.1. 설립되어 의약품의 수입, 판매, 유통 등 사업을 영위하는 법인이고, 원고는 2019.6.3. 참가인에 입사하여 2019.9.30.까지 수습근로자로 근무한 사람이다.

나. 참가인은 수습기간의 말일인 2019.9.30. 17:00경 원고에게 구두로 수습평가 불합격 통보를 하였고, 같은 날 원고는 사직서(이하 ‘이 사건 사직서’라고 한다)를 작성하여 참가인의 인사담당 직원인 최○○ 대리에게 제출하였다가, 20:20경 최○○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건 사직서의 철회를 요청하고, 20:46경 같은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참가인은 위 철회요청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다. 이에 원고는 2019.10.24. ‘이 사건 사직서는 원고가 참가인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작성한 것이므로, 참가인이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받은 직후에 원고로부터 사직철회 요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것은 해고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다(서울2019부해2807호).

라.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9.12.18. ‘원고는 참가인의 사직 권고를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였고, 참가인은 원고의 사직 철회 요청에 앞서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였다. 그렇다면 원고와 참가인 사이의 근로관계는 합의해지에 따라 적법하게 종료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원고가 주장하는 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하여 원고의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초심판정을 내렸다.

마. 원고는 초심판정에 불복하여 2020.1.17.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으나(중앙2020부해92호), 중앙노동위원회는 2020.6.26. 초심판정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재심판정(이하 ‘이 사건 재심판정’이라고 한다)을 내렸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 을나 제3호증(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관계 법령 등

 

별지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3.  원고의 주장 요지

 

가. 이 사건 사직서의 효력 부재

이 사건 사직서는 그 문언에 부합하는 원고의 진의가 없는 상태에서 작성·제출된 것이므로 무효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 이를 즉각 철회하였으므로 이 사건 사직서의 효력은 소멸하였다.

나. 참가인의 서면통지의무 위반

따라서 참가인은 원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받아 원고를 해고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하여 원고에게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결국 참가인의 해고는 효력이 없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4.  판 단

 

가. 이 사건 사직서의 효력 발생 여부

1) 관련 법리

가) 사용자가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아래의 법리에서 보는 바와 같이 퇴직권유 또는 종용의 방법·강도는 특별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것이 사직서의 진의 여부를 결정짓는 유일한 사정도 아니다. 따라서 사용자의 퇴직권유 또는 종용은 묵시적인 방법으로도 가능하고, 그 강도가 반드시 근로자가 갖는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할 정도에 이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해당 판례에 기재된 ‘어쩔 수 없이’라는 문구는,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일체의 의사 형성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대한 강박을 당한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용자의 퇴직권유 또는 종용으로 말미암아 근로자가 사직서 제출 시점까지 사직의 효과의사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상황을 널리 아우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후 이를 수리함으로써, 이른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이므로, 사용자가 위 사직서를 수리하는 행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해고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근로자의 ‘진의’라 함은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근로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근로자가 사직을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사직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을 경우에는 이를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0.4.25. 선고 99다34475 판결 등의 취지 참조).

나)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근로자가 진의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라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근로자가 진정으로 근로관계의 종료를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사직서를 제출할 당시의 상황에서 남아 있는 선택의 가능성들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중에서 사직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였어야 한다.

특히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먼저 본인의 근로관계 종료 의사를 밝히면서 근로자로 하여금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권고하였다면, 근로자로서는 당장 사용자의 의사를 번복시켜서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고, 일단 근로관계의 종료 방법을 선택하여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 근로자는 사용자의 권고에 응하여 사직을 하는 것과 사용자로부터 해고를 당하는 것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① 사용자가 밝힌 근로관계 종료 의사의 타당성, ② 그 타당성을 다투는 난이도, ③ 사용자의 해고를 기다려서 분쟁을 개시할 경우에 상실하는 기회비용, ④ 해고가 아닌 자진사직의 형태로 근로관계를 종료함으로써 얻는 이익 등 해고와 사직 사이의 유·불리에 관한 사정들을 비교·검토한 다음, 근로관계의 종료 방법으로 해고보다는 사직이 더 유리하다고 결론을 내렸을 때, 비로소 근로자가 사직을 최선이라 판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근로자가 위와 같은 비교·검토의 과정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였다면, 이를 두고 근로자가 해고와 사직 가운데에서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최선의 방법으로 사직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는 없다.

다) 개별적인 사안에서 근로자가 진의를 형성한 상태로 사직서를 제출하였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 경위, 사직서의 기재 내용과 회사의 관행, 사용자 측의 퇴직권유 또는 종용의 방법, 강도 및 횟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직서 제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제공 여부, 사직서 제출 전후의 근로자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2.3. 선고 2016다255910 판결 등의 취지 참조).

2) 판 단

앞서 인정한 사실과 갑 제3, 12, 13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사직서는 사직의 진의 없이 제출된 것이라 판단되고, 참가인 측도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 참가인은 원고에게 이 사건 사직서 제출을 권유하기에 앞서 약 1시간에 걸쳐 원고가 수습평가에서 탈락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원고는 “(수습평가 결과를) 받아들여야 되겠지만...... 과연 참가인의 다른 직원들은 수습평가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다 갖추고 통과한 것인지. 그 점에 대하여는 제가 의문을 가지고 나갈 것 같습니다”, “분명 제가 잘못한 사실은 있는 것 같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받았던 평가를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안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등, 원고 본인의 결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수습 평가의 심사기준이 형평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갑 제3호증 제21, 22 쪽).

그렇다면 당시 원고가 아무런 이의를 유보하지 않고 수습평가 결과에 승복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나) 위와 같은 상황에서 원고가 참가인으로부터 수습기간 만료통보(이하 ‘만료통보’라고 한다)를 받기 전에 자발적인 의사로 사직을 한다면, 참가인의 해고 자체가 성립할 여지가 없으므로, 원고는 참가인을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여 수습평가 결과의 당부를 다툴 기회를 원천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반면 이 사건에서 원고가 자발적인 사직으로 인하여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참가인은 만일 원고가 만료통보를 받아 퇴직한 사실이 동종 업계에 알려지면 재취업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참가인이 만료통보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 한 원고에게 위와 같은 어려움이 발생하리라 보기 어렵고, 이 사건처럼 원고가 공교롭게 수습기간 만료일에 맞추어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만료통보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에 못지않게 원고의 재취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

오히려 원고가 참가인으로부터 만료통보를 받았다면 비자발적인 퇴직임이 명백하여 아무런 문제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나, 이 사건 사직서가 작성·제출된 탓에 원고는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이 사건 사직서의 기재를 뒤집고 실제로는 비자발적으로 퇴직하였다는 사실을 따로 증명하여야 하는 불이익을 입게 되었다. 설령 참가인의 주장처럼 참가인이 원고의 실업급여 수급권을 배려할 목적으로 고용보험 상실사유를 ‘권고사직’이 아니라 ‘계약만료’로 신고하였더라도, 위 상실신고의 내용과 이 사건 사직서의 존재가 상충하는 이상,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둘러싼 분쟁의 여지는 남아 있게 된다.

그렇다면 원고가 설령 참가인이 설명한 수습평가 탈락 사유를 납득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구태여 참가인의 만료통보를 기다리지 않고 자진사직의 방식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켜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다) 그럼에도 참가인은 원고에게 ① 사직서를 제출하는 방안 외에 만료통보를 받는 방안까지 같이 제시하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고지한 바 없고, ② 만료통보를 받는 경우에 비하여 사직서를 제출하는 경우에 어떠한 점이 유리한지 설명하지도 않았으며, ③ 수습평가 탈락 사유만을 상세하게 알려주고는, 마침 원고가 소지하고 있던 휴대용 비품을 그 자리에서 반납하도록 안내하고, ④ 즉석에서 사직서 양식을 건네며 거기에 기재할 사직사유까지 불러주었다고 보인다(갑 제3호증 제27, 28쪽).

사정이 위와 같다면, 참가인은 원고에게 ① 오로지 사직서 작성만을 권유하는 한편 만료통보를 받는 방안에 관한 언급은 의도적으로 회피하였고, ② 만료통보 수령 방안과 사직서 제출 방안의 장·단점을 비교·검토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고 시간조차 제공하지 않았으며, ③ 단순히 사직서 양식을 교부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직서를 신속하게 완성할 수 있도록 기재사항을 알려주고, 동시에 비품 반납과 같은 후속조치까지 재촉한 것이다.

그렇다면 참가인이 원고에게 사직에 응하지 않을 경우의 불이익을 경고하며 위협을 가한 바는 없더라도, 원고로서는 이러한 참가인의 사직권유 또는 종용행위로 말미암아 미처 사직의 진의를 형성할 여유가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라) 실제로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한 지 불과 3시간 만에 참가인에게 이 사건 사직서를 철회한다는 뜻을 밝혔고, 같은 날 23:00경 참가인의 직원과 통화하면서 수습평가의 부당함을 토로하기도 하였다(갑 제12, 13호증).

이는 원고가 사직의 진의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정황이라 할 것이다.

3) 소결론

이 사건 사직서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이다.

 

나. 이 사건 사직서가 적법하게 철회되었는지 여부

1) 관련 법리

근로자의 사직 의사표시가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인지 아니면 사용자에 대한 근로계약관계 합의해지의 청약인지 여부는 그 의사표시가 기재된 사직서의 구체적인 내용, 사직서 작성·제출의 동기 및 경위, 사직서 제출 이후의 상황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사직 의사표시가 해약의 고지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근로자로서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이를 철회할 수 없다.

반면에 사직 의사표시가 근로계약관계 합의해지의 청약에 해당한다면, 사직에 대한 사용자의 승낙의사가 형성되어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이전에는 사직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다(대법원 2000.9.5. 선고 99두8657 판결, 2003.4.25. 선고 2002다11458 판결, 2007.10.11. 선고 2007다11668 판결 등의 취지 참조).

2) 판 단

원고가 참가인의 인사담당 직원인 최○○ 대리에게 이 사건 사직서를 교부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바, 최○○ 대리가 이 사건 사직서를 수령함으로써 참가인이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상태에 이르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 사건 사직서가 참가인에게 도달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20.8.20. 선고 2019두34630 판결의 취지 참조).

한편 참가인이 이 사건 사직서를 수령한 것에 더하여 별도로 원고에게 이 사건 사직서를 승낙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가 참가인에게 도달하였으나 아직 참가인의 승낙 의사표시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사직서를 철회한 것인데, 앞서 인정한 사실과 갑 제4호증, 을나 제6, 13 내지 15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직서는 근로계약에 대한 해약고지가 아니라 합의해지의 청약에 해당하므로, 위에서 본 법리에 따라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적법하게 철회하였다 할 것이다.

가) 원고가 사직의 진의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진의는 원고가 독단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라 참가인의 권유로 인하여 수동적으로 형성된 것에 불과하다.

위와 같은 의사형성의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사직서는 원고가 참가인의 의사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사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보기는 어렵고, 어디까지나 원고와 참가인과 사이에 의사합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두었다고 해석하여야 자연스럽다.

나) 원고가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함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별다른 이익이 없는 반면, 참가인은 아래에서 보는 서면통지의무를 이행할 필요 없이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에 원고가 참가인을 상대로 근로관계의 종료 여부를 다 투더라도 ‘최소한 참가인이 원고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은 아니고, 원고가 자발적으로 퇴사한 것이다’라는 점을 내세우며 한결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다.

따라서 참가인이 원고에게 사직을 권유하여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받은 것은 참가인의 이익에 치중한 조치이므로, 여기에 대응하여 원고가 참가인의 승낙 의사표시를 받기 전에 이 사건 사직서를 철회할 수 있다고 보더라도, 참가인에게 불측의 손해를 가한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그렇게 보아야 당사자 사이의 형평에 부합한다.

다) 원고는 참가인의 권유에 따라 사직 여부를 결정할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였다. 그렇다면 원고가 그 사이에 사직의 진의를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고 보더라도, 나아가 철회 여부를 재고할 기회마저 포기할 정도로 확고하게 사직을 결심하였다고는 보기 어렵고, 이 사건 사직서의 작성·제출을 재촉한 참가인도 이러한 원고의 진의 형성 정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보인다.

라) 이 사건 사직서에는 “본인은 상기와 같은 사유로 인하여 회사를 사직하고자 본 사직서를 제출합니다”라는 문구를 비롯하여 원고가 일방적으로 사직하겠다는 표현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고, 달리 참가인의 승낙을 기다리겠다는 취지의 기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갑 제4호증).

그러나 이 사건 사직서의 양식은 참가인이 마련하여 원고에게 제공한 것이고, 위와 같은 문구도 미리 부동문자로 인쇄된 것이며, 참가인이 별도로 원고에게 이 사건 사직서에 가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사건 사직서의 표면적인 기재만을 들어서 이 사건 사직서를 원고의 일방적인 해약고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마)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기 전에도 참가인에게 수습평가 기준의 형평성에 관하여 의문을 드러낸 바 있고, 결국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한 지 3시간 만에 정식으로 수습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이 사건 사직서를 철회하였다.

바) 참가인의 취업규칙 제50조제3호는 “직원은 사직서를 제출하여 회사가 이를 수리한 때에는 퇴직한다”라고 규정하는바, 위 조항 자체가 직원이 제출한 사직서에 대하여 참가인의 수리 절차를 예정하고 있다(을나 제6호증).

이에 대하여 참가인은, 이 사건에 이르기까지 참가인의 직원들은 이 사건 사직서와 동일한 양식을 사용하여 사직서를 작성·제출한 후 곧바로 퇴사하였고, 그동안 참가인이 별도의 수리 절차를 거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을나 제13 내지 15 호증).

그러나 위 직원들은 사직의 경위(참가인의 권고 여부), 사직의 목적, 사직을 결정하는 데 소요된 시간, 사직의 철회 여부 및 그 시점 등 여러 면에서 원고의 사례와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보이므로, 위 직원들의 사례를 들어서는 이 사건 사직서까지 근로관계의 해약고지로 보아 수리 절차의 적용 대상에서 배제시킬 수는 없다.

3) 소결론

설령 이 사건 사직서가 원고의 진의에 따라 작성된 것이어서 유효하게 성립하였다고 보더라도, 원고가 참가인의 승낙 의사표시를 받기 전에 이 사건 사직서를 적법하게 철회함으로써 그 효력이 소멸하였다.

 

다. 참가인이 서면통지의무를 위반하였는지 여부

1) 관련 법리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하여 사용자에게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에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근로자의 직업적 능력, 자질, 인품, 성실성 등 업무적격성을 관찰·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시용제도의 취지·목적에 비추어 볼 때, 사용자가 시용기간 만료 시 본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일반적인 해고보다 넓게 인정될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여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근로기준법 규정의 내용과 취지, 시용기간 만료 시 본 근로계약 체결 거부의 정당성 요건 등을 종합하면, 시용근로관계에서 사용자가 본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거부사유를 파악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구체적·실질적인 거부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11.27. 선고 2015두48136 판결).

2) 판 단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원고가 수습기간을 마칠 무렵에 제출한 이 사건 사직서는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소멸하였으므로, 참가인이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였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참가인이 일방적으로 원고에 대한 본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참가인은 원고에게 본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구체적·실질적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참가인이 원고에게 위와 같은 거부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앞서 참가인이 원고에게 수습평가 결과를 구두로 상세하게 설명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서면통지의무를 면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이에 대하여 참가인은 이 사건 사직서를 통하여 원고에게 거부사유를 통지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 사건 사직서는 원고가 작성하여 참가인에게 제출한 서면인데다, ‘수습기간 종료’를 사유로 하여 사직한다는 취지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 수습기간이 종료된 뒤로 참가인이 원고를 더 이상 채용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는 간략한 언급조차 없으므로, 참가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소결론

참가인은 수습기간이 만료된 원고에 대하여 본계약 체결을 거부하면서 그 거부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아니하여 서면통지의무를 위반하였다.

 

라. 중결론

참가인은 서면통지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원고와 사이의 본계약 체결을 거부함으로써 근로관계를 종료시켰는바, 이는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재심판정은 위와 다른 결론을 내려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4.  결 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장낙원(재판장) 신수빈 정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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