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공장 엔진 부서에서 16년 동안 근무, 자가면역질환인 기타 피부근염을 진단. 노출된 유해물질과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서울행법 2021구단56117]
【서울행정법원 2025.6.11. 선고 2021구단56117 판결】
* 서울행정법원 판결
* 사 건 : 2021구단56117 요양불승인처분취소
* 원 고 : A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25.04.09.
* 판결선고 : 2025.06.11.
<주 문>
1. 피고가 2020.12.22. 원고에게 한 요양급여신청 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19**.*.*.생, 남성)는 1992.*.**.부터 B 주식회사 C공장(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다가 2019.8.22. 발열, 피부발진, 인후염 등의 증상으로 D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2019.8.29. 퇴원하였고, 2019.9.4. 피부발진 등의 증상으로 E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이후 자가면역질환인 ‘기타 피부근염’(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을 진단받았다.
나. 원고는 2020.5.6.경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방청유 등 유해물질에 오랜 기간 노출되었고, 교대근무 등으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다. 피고는 아래와 같은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을 근거로 하여 원고가 수행한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20.12.22. 원고에게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아래 생략>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3.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원고 주장의 요지
원고는 오랜 기간 이 사건 사업장에서 크랭크샤프트 가공작업을 하였는데, 이 사건 사업장에 설치된 집진기는 집진 기능이 상실된 상태였고, 에어덕트 등 환기 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방청유, 에탄올 등 유해물질에 과다 노출되었다. 여기에 원고가 평소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고 별다른 유전력도 존재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나. 판단
1)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37조제1항의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은 업무상의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있다(대법원 2021.9.9. 선고 2017두4593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증명이 있는 경우에 포함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20.5.28. 선고 2019두62604 판결 등 참조).
한편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앞서 본 사실 및 증거들에 갑 제3 내지 10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제14 내지 17호증, 제22호증, 제27 내지 29호증, 을 제2 내지 16호증, 제20호증의 각 기재 또는 영상, 이 법원의 H 주식회사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이 법원의 F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이 법원의 G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및 사실조회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하거나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고려하면,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방청유 등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여 발병하였거나 자연경과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되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므로,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가) 이 사건 상병은 골격근육의 염증발생을 특징으로 하는 자가면역질환인 특발염증근육병증의 하나로, 피부와 근육에 자가면역기전에 의한 염증이 발생하여 특징적인 부종과 홍반을 동반한 피부병변과 근육이 허약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만성질환이다. 이 사건 상병의 정확한 발병 기전에 대하여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나, 유전적으로 감수성이 있는 사람에게 외부의 환경적 요인의 자극에 의해 유발된 면역학적 기전에 의해 유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산재보험법 제34조 [별표3]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 제6호의 가.는 ‘톨루엔·크실렌·스티렌·시클로헥산·노말헥산·트리클로로에틸렌 등 유기용제, 자극성·알레르겐·광독성·광알레르겐 성분을 포함하는 물질 등에 노출되어 발생한 접촉피부염’을 업무상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13호는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에서 규정된 발병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거나,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에서 규정된 질병이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질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원고는 1992년경 입사하여 이 사건 사업장 조립 부서에서 자동차 내장 작업, 하체 조립 업무 등을 담당하다가 2003.7.경부터 이 사건 상병 진단일 무렵까지 약 16년 동안 엔진 부서에서 자동차 엔진 부품인 크랭크샤프트 가공 작업을 하였다. 크랭크샤프트는 자동차 엔진에서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부품으로, 강철 또는 연성 철로 제조되는데 표면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조공정에서 방청유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방청 작업은 방청기에서 방청유 및 오일미스트를 분사하는 작업과 작업자가 휴대용 방청윤활제를 도포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원고는 방청유를 공급하거나 직접 취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지는 않았으나, 방청기로 부터 상당히 근접한 곳에서 근무하면서 방청기에서 1일 약 900회 분사되는 방청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크랭크샤프트 가공 과정에서 방청 윤활제를 지속적으로 분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 이 사건 사업장에서 사용된 방청유인 ‘텍틱 알피 361B’에 관한 물질안전보건자료(을 제20호증)에 따르면, 위 방청유의 구성성분은 수소처리된 중질 나프타, 수소처리된 중질 파라핀 정제유, 설포산 바륨 석유, 부틸레이티드하이드록시톨루엔 등으로, 사용 빈도가 높거나 노출이 심한 경우에는 호흡용 보호구 등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피부접촉 시 알레르기 반응, 자국, 피부장애가 있을 수 있으며, 호흡기를 통한 흡입 시 경련, 구역, 자극, 폐 이상 등이 있을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방청유에 관하여 이 사건 사업장에 비치된 관리 요령에는 유해성·위험성 중 하나로 알레르기성 피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라) 그런데 원고와 이 사건 사업장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 근로자들은 ‘방청유를 분사하다보면 바닥이 미끄럽고 오랫동안 작업하다 보면 두통이 발생하며 메스껍기도 하여 선풍기를 틀고 하기도 한다’, ‘옆 공정에서 일하면서도 방청유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는데 더 방청기에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원고는 공기와 냄새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방청기에서 발생한 방청유 미스트가 집진기를 통해서 집진되어 방청기 외부로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집진기의 필터가 막혀 완전히 기능이 상실되어 작업진행 시 방청기 도어가 열리면서 방청유가 외부로 오버플로우 되는 현상이 발생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제출하였다. 이처럼 원고가 근무하던 공간은 접촉하거나 호흡시 피부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방청유가 상시 분사되는 상태였고, 그럼에도 집진기나 환기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원고는 유효한 보호구를 갖추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방청기와 근접한 곳에서 가공 작업을 수행하고 방청윤활제를 도포하던 원고로서는 방청유에 포함된 톨루엔이나 자극성 물질에 만성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단된다. 또한 원고는 크랭크샤프트 가공 과정에서 노출시 피부손상을 유발하는 스핀들유, 미스트유, 에탄올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 이 법원의 F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에 따라 진료기록감정을 실시한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이하 ‘제1감정의’라 한다)는 ‘방청유를 포함한 유기용제와 다발성 경화증, 피부근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과의 연관성을 입증한 연구결과는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유기용제가 면역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부근염을 포함한 결합조직 질환 환자군과 대조군을 비교한 연구에서 유기용제에 대한 위험도는 2.5배, 정제유에 대한 위험도는 1.8배로 확인되었다. 다른 논문에서도 피부근염이 포함된 자가면역질환이 유기용제에 의한 위험도가 1.54배 높다고 밝히고 있다. 원고가 장기간 유기용제에 노출된 업무환경, 2교대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이 사건 상병에 충분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피고는, 원고가 크랭크샤프트 가공업무를 한 것은 약 16년 동안이고, 방청기와의 거리는 9.4m에 해당함에도 제1감정의가 원고의 업무기간, 방청기와의 거리 등에 관하여 잘못된 전제에서 소견을 제시하였다는 점 등을 들어 위 소견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1감정의가 다소 다른 전제에서 회신하게 된 것은 제1감정의의 회신 이후 H 주식회사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하여 원고의 업무기간과 작업위치 등이 특정되었기 때문으로 제1감정의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나아가 제1감정의의 감정회신의 전체적인 취지는 원고의 업무환경과 원고가 수행한 업무가 이 사건 상병의 발병과 연관이 있다는 것으로, 이와 관련하여 의학 논문 등 객관적인 자료를 다수 제시하고 있는바, 피고가 주장하는 사정들만으로는 제1감정의의 소견의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피고가 주장하는 원고의 근무기간 역시 상당히 긴 기간이고, 방청기과의 거리 또한 상당히 근접한 것이므로, 피고의 주장과 같이 전제하더라도 제1감정의의 회신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여 안정적으로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 등에 비추어 보면, 설령 제1감정의가 제시한 연구결과들만으로는 방청유 등 유해물질과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거나, 해당 질환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사) 한편, 이 법원의 G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에 따라 진료기록감정을 실시한 감정의(류마티스내과, 이하 ‘제2감정의’라 한다)는 ‘이 사건 상병의 발병원인에 있어 원고의 업무인 유기용제와 관련한 의학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워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회신을 하였다. 그러나 위 회신은 어디까지나 의학적인 관점에서의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이고, 앞서 본 것과 같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인과관계의 존부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면 인정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위 소견은 원고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아니한다. 나아가 제2감정의는 사실조회회신에서 ‘연구결과가 아직 없다는 것으로 인과관계를 명시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 사건 상병의 발병원인을 찾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바이러스 감염 증상과 유전적인 요인, 유기용제 에탄올 흡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변하기도 하였다.
아)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 근무하기 이전에는 특별한 직업력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상병 진단 당시 만 51세로 수년간의 건강검진 내역상 기저질환 또는 이상소견이 없었다. 또한 이 사건 상병과 관련된 가족력이나 유전적 소인도 찾아볼 수 없고, 이 사건 상병 발생 이전까지 별다른 건강상 문제없이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상태였으며 다른 요인의 개입 없이 원고에게 자연경과적으로 이 사건 상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만한 자료를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원고의 작업환경에서의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이 사건 상병이나 발병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하였다고 봄이 타당하고,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대법원 2020.5.28. 선고 2019두62604 판결 등 참조), 설령 원고에게 이 사건 상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다른 요인이 존재하였다고 보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
4.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