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사직서가 제출된 것만으로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고, 법인 대표자가 이를 수리하여야만 비로소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 [대구고법 2023나15029]
【대구고등법원 2024.3.20. 선고 2023나15029 판결】
• 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 판결
• 사 건 / 2023나15029 징계의결무효확인
• 원고, 피항소인 / A
• 피고, 항소인 / B조합
• 제1심판결 /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2023.6.23. 선고 2022가합2667 판결
• 변론종결 / 2024.02.21.
• 판결선고 / 2024.03.20.
<주 문>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의 이사회가 2020.9.3. 2020년 제8차 이사회에서 한 원고에 대한 징계의결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2.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 유>
1. 기초사실
가. 피고는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C시 일원을 구역으로 하여 설립된 지구별 D조합이고, 원고는 2017.2.25.부터 피고의 상임이사로 재직한 자이다.
나. 원고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던 직원 E는 ‘18억 원 상당의 고객예탁금 및 시재금을 횡령하였다’는 등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2020.9.10.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2020고합19호), 2020.12.10. 이에 대한 검사의 항소가 기각(대구고등법원 2020노395호)됨에 따라 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다. F단체(이하 ‘F단체’라 한다)는 2020.5.22. 피고에 대하여 위 E 횡령사고(이하 ‘이 사건 횡령사고’라 한다) 관련자들의 처분수위를 정하여 처분을 요구하였는데, 상임이사인 원고에 대하여는 ‘개선(改選; 임원에 대한 해임 및 새로운 임원의 선임)’ 처분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피고 이사회가 2020.7.22. 징계하향의결을 하자, F단체는 2020.7.31. ‘피고 이사회가 새로운 특별한 감면 사유 없이 부당하게 징계하향의결을 하였다’는 이유로 1개월 이내에 F단체의 처분 요구를 준수하여 재의결할 것을 요구하였다.
라. 원고는 2020.8.24. 피고의 이사인 G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G는 2020.9.1. 이를 피고에게 제출하였다.
마. 피고는 2020.9.3. 개최된 2020년 제8차 이사회에서 ‘신용사업 총괄업무 관리·감독 부적정 등’의 사유로 원고에 대한 ‘개선’을 명하는 내용의 징계를 의결(이하 ‘이 사건 징계의결’이라 한다)하였고, 이 사건 징계의결에 따른 인사명령을 발령하였다(2020.9.3.부).
바. 수산업협동조합법, 금융기관검사및제재에관한규정,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 피고 정관, 회원조합징계·변상업무처리규정(이하 ‘이 사건 징계규정’이라 한다), 조합인사업무처리요령(이하 ‘이 사건 인사요령’이라 한다) 중 이 사건과 관련된 조항은 별지 ‘관련 법령 및 규정’ 기재와 같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6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을 제1 내지 5, 7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
1) 이사의 사임은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로서 의사표시 도달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므로, 원고가 2020.9.1. 피고에게 사직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그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였다.
2) 원고의 경우에 사직서 수리가 필요하다고 보더라도, 원고의 사직서는 2020.9.1. 피고 조합장이 이를 결재함으로써 수리되었으므로 원고는 위 날짜에 퇴직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퇴직 후의 임직원에 대하여 징계가 가능하다고 볼 만한 특별규정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원고의 퇴직 이후인 2020.9.3. 이루어진 이 사건 징계의결은 징계대상이 아닌 자에 대한 것으로서 무효이다.
3) 원고는 무효인 이 사건 징계의결을 이유로 퇴임공로금의 절반을 감액 지급받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피고 임원 피선거권도 제한받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존재하는 위험과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 징계의결의 무효 확인을 구한다.
나. 피고
1) 이 사건 징계규정 제11조에 따라 사고관련자에 대하여는 징계 확정시까지 사직서를 수리할 수 없고, 원고는 이 사건 인사요령 제91조에서 정한 서류를 사직서에 첨부하지도 않았으므로, 피고 조합장이 원고의 사직서 결재서류에 서명한 것은 사직서접수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의미에 불과하여, 원고의 사직서가 그 결재일인 2020.9.1.에 수리되었다고 볼 수 없다. 설령 원고의 사직서가 2020.9.1. 수리되었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검사및제재에관한규정 제16조제2항에 의하면 피고의 퇴직 임직원에 대하여도 징계가 가능하므로, 이 사건 징계의결은 유효하다.
2) 원고는 상임이사로 근무할 당시 E에 대하여 이 사건 인사요령을 근거로 사직 처리를 거부한 사실이 있고, 이 사건 징계의결을 이유로 절반으로 감액 산정된 퇴임공로금을 지급받으면서 아무런 이의를 유보하지 않았으며, 이후 피고가 신청한 지급명령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지 퇴임공로금 감액 지급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바, 이 사건 징계의결일로부터 약 2년 가까이 경과한 후에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하여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 또는 금반언, 실효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3. 판단
가. 원고의 사직서 제출만으로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였는지 여부
1) 관련 법리
수산업협동조합법 제58조, 상법 제382조제2항에 의하면 지구별D조합과 이사의 관계에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 이사는 민법 제689조제1항이 규정한 바에 따라 언제든지 사임할 수 있고, 법인의 이사를 사임하는 행위는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이므로 그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함과 동시에 그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나(대법원 2006.6.15. 선고 2004다10909 판결 등 참조), 법인이 정관에서 이사의 사임절차나 사임의 의사표시의 효력을 발생하는 시기 등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둔 경우에는 그에 따라야 하는바(대법원 1996.4.15.자 95마1504 결정 등 참조), 위와 같은 경우에는 이사의 사임의 의사표시가 법인의 대표자에게 도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곧바로 사임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정관에서 정한 바에 따라 사임의 효력이 발생한다(대법원 2008.9.25. 선고 2007다17109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F단체가 원고에 대하여 횡령사고 관련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개선 처분을 요구한 사실, 이 사건 징계규정 제11조에서 ‘사고관련자가 사직원을 제출하였을 때에는 징계·변상 확정시까지 동 처리를 보류하였다가 그 확정내용에 따라 수리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제1항). 사직원을 제출한 임직원에 대해서는 그 제출경위를 조사하여 비위사실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민법 제660조에 의한 의원면직의 효력이 발생되기 전에 징계조치 및 사고금 보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는 사실은 앞서 본 것과 같다.
원고는 이 사건 횡령사고의 관련자로 위 징계규정 제11조에서 정한 사고관련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비록 원고가 피고의 이사라고 하더라도 원고의 사직서가 피고에게 제출된 것만으로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고, 피고가 이를 수리하여야만 비로소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원고의 사직서가 2020.9.1. 수리되었는지 여부
앞서 든 증거들, 을 제6, 8, 17, 18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의 사직서는 2020.9.1. 제출되어 같은 날 피고 조합장이 이를 결재함으로써 수리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① 원고 사직서 결재서류(갑 제3호증)의 ‘접수’란 일자시간에는 ‘2020.9.1.’, 번호에는 ‘532’가 기재되어 있고 담당자의 날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위 ‘접수’란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지시’란에 피고 조합장 ‘H’의 서명이 되어 있고 ‘결재·공람’란에 3개의 날인이 되어 있다. 위와 같은 사직서 결재서류의 형식, 내용, 날인자 내지 서명자 등을 살펴보면, 위 ‘접수’란은 사직서가 접수되었을 때 그 담당자가 기재하는 항목이고, 위 ‘지시’란은 사직서를 최종적으로 수리할 권한이 있는 피고 조합장이 이를 수리하고 퇴직 처리를 지시하였을 때 기재하는 항목으로 보인다.
② 피고의 원고에 대한 2020.9.23.자 ‘임원(원고) 퇴임공로금 지급’ 결재서류(을 제9호증), 2020.10.6.자 ‘임원(원고) 퇴임공로금 착오 지급 회수요청’ 결재서류(을 제10호증)에 원고의 재임기간이 모두 ‘2017.2.25. ~ 2020.9.1.’로 기재되어 있고, ‘퇴직소득원천징수영수증/지급명세서’에도 원고의 퇴사일이 ‘2020.9.1.’로 기재되어 있으며, 법인등기부(을 제17호증)의 임원에 관한 사항에도 원고가 ‘2020.9.1. 사임’한 것으로 등기된바, 피고 스스로도 원고가 2020.9.1. 퇴직하였음을 전제로 퇴임공로금 지급, 퇴직소득원천징수, 등기변경 등 관련 업무를 처리한 사실이 인정된다.
③ 이 사건 징계의결의 원인이 된 횡령사고의 당사자인 E 역시 징계처분 이전인 2020.4.21. 피고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는데, 피고는 같은 날 이 사건 인사요령 제91조제5항제1호(비위사실이 적발되어 관련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을 때에는 징계확정 전에 의원면직 처리하여서는 안 된다)를 이유로 E의 사직 처리를 거부하고, 이를 E에게 통지하였다(을 제6호증). 이와 달리 원고의 사직서 제출에 대해서는 피고가 위와 같이 사직 처리 거부 통지를 한 바 없고, 피고 조합장이 2020.9.1. 원고 사직서를 결재하기까지 하였으므로, 위 E와 달리 이 사건 징계의결 이전에 원고의 사직서를 수리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④ 피고는, 이 사건 인사요령 제91조제2항에 의하면 사직원을 제출받은 소속장은 사고유무 확인증과 함께 ‘서약서, 신분증, 비밀취급 인가증, 기타 대여물품 일체’를 첨부하여 조합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는데, 원고가 2020.9.1. 제출한 사직서에는 위 서약서 등이 첨부되지 않았으므로 유효한 사직서 제출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인사요령 제2조에 의하면 위 규정은 조합 ‘직원’에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임원인 원고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원고에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위 서류들은 사직서 제출의 효력을 좌우할 수 있는 정도의 필수적인 서류라고 보기도 어렵다.
⑤ 이사회 회의록(을 제2호증)에 의하면 피고 이사회 참석 임원들은 F단체로부터 개선명령을 요구받은 자에 대해서는 사직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고, 원고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당시 피고 측은 개선명령 대신 원고가 자진사퇴하는 방향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F단체 측에 계속하여 건의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따라 피고 이사회는 징계의결을 2020.8.28.에서 2020.8.31.로, 다시 2020.9.3.로 유예하였으며, 결국 피고 측이 F단체 측으로부터 원고의 사직서를 받겠다는 답변을 받아 원고가 2020.9.1. G를 통하여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고, 피고 조합장은 같은 날 원고 사직서를 결재한 후 F단체 측에도 송부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피고 임원들은 피고 조합장이 2020.9.1. 원고의 사직서를 수리한 것을 전제로 원고의 퇴직일을 2020.8.24.자로 소급하여 처리할 수 없는지 논의하기까지 하였다.
⑥ 이 사건 징계규정 제11조제1항에서 “사고관련자가 사직원을 제출하였을 때에는 징계·변상 확정시까지 동 처리를 보류하였다가 그 확정 내용에 따라 수리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규정만으로 피고 조합장에게 원고 사직서를 수리할 권한이 없다고 보기 어렵고, 사직서가 수리된 이상 위 규정만으로 이미 이루어진 사직의 효력을 부정할 수도 없다.
다. 이 사건 징계의결이 무효인지 여부
1) 징계처분은 징계절차를 운영하는 기관 내지 단체와 징계대상자 사이에 신분관계가 존속함을 전제로 하여 내부적으로 구속력 있는 불이익 처분을 가하는 것을 본질로 하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이미 신분관계가 소멸한 사람에 대하여는 징계처분을 할 수 없다. 다만 금융기관에서 퇴직한 임직원의 경우, 비위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소속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동일·유사한 비위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등의 목적에서 징계퇴직 상당의 처분을 받을 정도로 중대한 비위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사후적으로라도 이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징계처분을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도 관련 법령이나 규정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2) 이 사건에서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의 사직서는 2020.9.1. 수리되어 같은 날 원고에 대한 퇴직의 효력이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로서는 더 이상 피고와 신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원고에 대하여 징계처분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수산업협동조합법은 그 소속 임직원만을 징계대상자로 규정하고 있고(제146조제3항, 제170조제2항 등 참조), 피고에게 적용되는 관련 법령이나 정관, 이 사건 징계규정 등에서도 퇴직한 임직원에 대해 징계처분을 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바, 원고의 퇴직 이후인 2020.9.3. 이루어진 이 사건 징계의결은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3) 이에 대하여 피고는 금융기관검사및제재에관한규정(금융위원회고시) 제16조제2항이 “금융기관은 자체감사결과 등으로 발견한 정직 이상 징계처분이 예상되는 직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치하여야 한다. 위법·부당행위가 명백하게 밝혀졌을 경우에는 지체 없이 직위를 해제하되 징계확정 전에 의원면직 처리하여서는 아니 된다(제1호).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동 사직서 제출경위를 조사하고 민법 제660조 등 관계법령에 의한 고용계약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징계조치 및 사고금 보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제2호).”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피고 퇴직자인 원고에 대하여 징계처분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규정이 피고의 퇴직자에 대하여 징계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볼 만한 명시적 규정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징계확정 전에 의원면직 처리하여서는 아니 된다’거나 ‘고용계약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징계조치를 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의원면직이나 고용계약의 해지 이후에는 징계처분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 규정으로 보일 뿐이다.
라. 신의칙, 금반언 내지 실효의 원칙 위반 여부
1) 관련 법리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권리의 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짐이 정당한 상태에 있어야 하며, 이러한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11.3.10. 선고 2007다17482 판결 등 참조). 또한 신의칙의 파생원칙 중 하나인 금반언의 원칙이란 어떤 자가 일정한 법률관계에서 자신의 선행행위를 통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정당한 신뢰를 가지게 한 경우 후에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후행행위를 하여 상대방의 신뢰를 부당하게 침해하게 되면 후행행위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08.2.15. 선고 2006다9545 판결 등 참조). 일반적으로 권리의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고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므로, 권리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의무자인 상대방으로서도 이제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된 다음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결과가 될 때에는 이른바 실효의 원칙에 따라 그 권리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 측과 상대방 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한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2.12. 선고 2013다93081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앞서 든 증거들, 을 제9, 10, 12 내지 16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원고가 2020.4.21. E에 대하여 이 사건 인사요령을 근거로 사직 처리를 거부하는 서류에 결재한 사실, 원고가 이 사건 징계의결을 이유로 절반으로 감액 산정된 퇴임공로금을 지급받으면서 아무런 이의를 유보하지 않았고, 이후 피고가 신청한 지급명령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지 위와 같은 퇴임공로금 지급에 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사실들 및 피고 제출 증거들만으로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징계의결의 효력을 다투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부여하였다거나 원고가 이 사건 징계의결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 사건 소가 신의칙, 금반언 내지 실효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① 원고가 2020.4.21. E에 대하여 이 사건 인사요령을 근거로 사직 처리를 거부하는 서류에 결재하였다는 것만으로는, 그 후 원고가 제출하는 사직서가 이 사건 징계의결 전에 수리되었다는 것을 주장하지 아니하거나 이 사건 징계의결의 효력을 다투지 아니할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피고에게 신뢰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② F단체가 재차 피고에게 원고에 대하여 개선 처분을 할 것을 요구한 상황에서, 피고 측의 거듭된 건의와 F단체 측의 양보로 원고가 자진사퇴하는 형식으로 퇴직하게 된 것이므로, 원고로서는 피고가 입장을 바꾸어 원고에게 기지급 퇴임공로금의 반환을 요구하기 전까지 퇴임공로금의 감액지급에 대한 적극적인 이의제기를 보류해온 것으로 보인다.
③ 피고가 2022.6.28. 원고를 상대로 퇴임공로금 지급금 40,868,920원의 반환을 청구하는 내용의 지급명령(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2022차전1116호)을 신청하자, 원고는 2022.7.8. 위 지급명령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하는 한편 2022.9.29. 이 사건 징계의결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위와 같은 이 사건 소 제기의 경위를 고려하면, 원고가 이 사건 징계의결일로부터 약 2년이 경과한 후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고 하여, 그 소 제기가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④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소제기가 신의칙 및 실효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대법원 1992.5.26. 선고 92다3670 판결, 대법원 1993.9.24. 선고 93다21736 판결을 들고 있으나, 위 판결들은 근로자가 면직 내지 해임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함으로써 고용관계의 존속을 주장하는 사안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고용관계(근로자의 지위)의 존부를 둘러싼 노동분쟁은 신속히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원고 스스로가 이미 퇴직하여 피고와의 위임관계가 종료되었음을 전제로 그 퇴직의 원인이 사직서의 수리인지, 이 사건 징계의결인지 여부를 다투는 이 사건과는 사안의 성격을 달리 하므로, 그대로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마. 소결론
결국 이 사건 징계의결은 징계대상이 아닌 자에 대한 것으로 그 효력이 없고, 피고가 이를 다투고 있는 이상 원고가 그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도 인정된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여야 하고,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손병원(재판장) 남명수 이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