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사전에 정한 남녀비율에 따른 신입직원 채용은 성차별에 해당하나, 은행장이 공범으로 가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 2023도6101, 서울서부지법 2022노296, 서울서부지법 2019고정171]
【대법원 2023.9.14. 선고 2023도6101 판결】
• 대법원 제2부 판결
• 사 건 / 2023도6101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위반
• 피고인 / A
• 상고인 / 검사
• 원심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2023.4.27. 선고 2022노296 판결
• 판결선고 / 2023.09.14.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무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동정범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권영준(재판장) 민유숙 이동원(주심) 천대엽
【서울서부지방법원 2023.4.27. 선고 2022노296 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3형사부 판결
• 사 건 / 2022노296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위반
• 피고인 / A
• 항소인 / 검사
• 원심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3.11. 선고 2019고정171 판결
• 판결선고 / 2023.04.27.
<주 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 : 법리오해, 사실오인
주식회사 C(이하 ‘C’이라고 한다) 인사부장 D, 인사부 팀장 F, 인사부 대리 G이 수사기관 또는 원심 법정에서 한 각 진술, 피고인이 직접 서명한 품의서, 이 사건 범행 이후에도 동일한 취지로 성별에 따라 직원을 차별하여 채용하는 내용의 2014년 하반기 채용 설명 자료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C장인 피고인이 2013년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 당시 C에서 남녀 성비에 따른 차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 나마 인식하였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오히려 위와 같은 차별적인 채용 관련 서류에 최종결재권자로서 서명하는 방법으로 D 등 인사 담당 직원들과 공모하여 각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된 남성지원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형 점수를 취득한 여성 지원자를 전형별 합격자에 선발하지 않는 등 사전에 정한 남녀 비율에 따라 신입직원 채용절차를 진행함으로써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 과정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공동정범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2.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2.3.경부터 2014.11.경까지 서울 중구 B에 있는 C의 은행장으로서 직원 채용 및 인사 등 은행업무 전반을 총괄하였다.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되고, 직종·직무별로 남녀를 분리하여 모집하거나 성별로 채용 예정인원을 배정함으로써 특정 직종·직무에 특정 성의 채용기회를 제한하여서는 아니 된다.
피고인은 2013년 하반기 C 신입직원 공개채용(이하 ‘이 사건 공개채용’이라고 한다)을 시작할 무렵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사부장인 D으로부터 C 전체 직원 중 남자 직원이 부족하여 향후 남성 위주로 신입직원을 뽑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함으로써 이 사건 공개채용 과정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남성을 우대하기로 공모하였다.
피고인은 이러한 명시적·묵시적 공모에 따라 2013.9. 중순경 이 사건 공개채용을 실시하기로 하는 ‘2013년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안)’ 품의문을 결재하고, D은 인사부 직원들에게 서류전형, BEI면접, 합숙면접, 임원면접 등 각 전형별로 남녀 지원자를 미리 정한 약 4:1의 비율에 따라 차별 선발하도록 지시하였다.
D과 인사부 직원들은 위 각 전형별 절차를 거쳐 최종 합격자 수를 총 123명으로 하되 미리 정한 남녀 직원 합격자 비율에 맞추어 남성 최종 합격자는 104명, 여성 최종 합격자는 19명(여성 합격자 비율 15.4%)으로 한다는 최종 품의문 결재를 올리고, 피고인은 위와 같은 현저히 불균형한 남녀 합격자 선정 결과에 관하여 은행장으로서 최종 결재를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D 등과 공모하여 각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된 남성 지원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형 점수를 취득한 여성 지원자를 전형별 합격자에 선발하지 않는 등 사전에 정한 남녀 비율에 따라 신입직원 채용절차를 진행함으로써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 과정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였다.
3. 판 단
가. 원심의 판단
원심은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들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1)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라고 한다) 제7조제1항을 위반하여 남녀를 차별하여 채용하였다는 남녀고용평등법위반죄가 성립하려면 그 채용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는 부당한 차별이 개재되었음을 인식하여야 하고, 이러한 인식 내지 범의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2)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공개채용은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제1항에 반하는 차별 채용에 해당한다.
① 이 사건 공개채용 당시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은, 사전에 남녀별 합격자 비율 내지 인원수를 개략적으로 내정한 후 성별로 지원자 군을 나누어 단계별로 전형을 진행하면서, 전체 지원자들의 남녀 성비는 비등하였음에도 첫 관문인 서류심사 전형단계에서부터 남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자를 여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자보다 3~5배 정도 더 선정함으로써 다음 전형 단계에서 심사 대상이 되는 여성 지원자 군의 모수 자체를 대폭 줄였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여성 지원자 군의 내부 경쟁률이 남성 지원자 군의 내부 경쟁률보다 높고, 여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기준 점수 역시 남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기준 점수보다 현저히 상향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② C은 E은행과 통합된 2015.9.경 이전까지는 기업전담 직무와 채널마케팅 직무로 직군을 나누어 이원화된 공개채용을 실시하면서, 기업전담 직무에 관한 공개채용에서는 남성 위주로, 채널마케팅 직무에 관한 공개채용에서는 여성 위주로 채용함으로써, 직군별로 특정 성에 편중되도록 성별을 차별하여 채용하였다. 이후 C이 E은행과 통합됨에 따라 직군을 이원화한 기존의 채용 방식이 폐기되고 직군을 통합한 채용 방식이 새로 채택되었음에도,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은 여전히 지원자들을 성별로 나누어 심사하면서 최종적으로 남성 합격자가 여성 합격자의 약 4~5배에 이르도록 합격기준 및 합격인원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였다.
③ C의 고용 현황상 직무별로는 기업전담에 비하여 채널마케팅에 편중된, 성별로는 남성에 비하여 여성에 편중된 고용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기는 하나, 이는 그간 C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을 채용하는 기업전담 직군에서는 남성을,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을 채용하는 채널마케팅 직군에서는 여성을 우대한 기존의 채용 방식에 기인하는 것일 뿐인바, 이 사건 공개채용에서 남성 위주로 채용하는 것이 성별 비중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부득이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3)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성별 편중 현상 등 인력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외부에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그와 같은 정도의 의사표명만으로 피고인에게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 채용에 관한 인식, 즉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2011.1.경부터 2015.12.경까지 C 인사부장으로서 인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였던 D은, 피고인 등 역대 C장들(이하 ‘피고인 등’이라 한다)을 비롯한 C 임원진 사이에 ‘남성 인원이 많이 부족하니 남성을 더 많이 채용하여야 한다’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있었다고 진술하는 한편, 피고인 등이 D에게 ‘전체적인 인원비가 남성이 많이 부족하니 남성을 많이 뽑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거나, D이 피고인 등에게 ‘남성을 많이 채용하여야 한다’고 보고하면 피고인 등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고도 진술하였는바, 피고인이 인사에 관한 의사결정권자의 지위에서 성비 불균형 해소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고 볼 수는 있다.
②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위반죄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 채용이 인정되려면, 단순히 특정 성이 더 많이 채용되었다는 결과값 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같은 결과가 지원자들의 성별로 차별적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도출되었다는 과정 내지 수단까지 개재되어야 할 것인데, 피고인이 성별로 군을 나누어 합격기준을 달리하는 채용 방식을 보고받은 적이 있다는 등 차별 채용의 구체적인 과정이나 수단까지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검사는 ‘남성 위주 채용’에 관한 계획이 기재된 채용안 등이 피고인 등에게 보고되었음이 틀림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③ 위와 같은 C의 채용 방식은 적어도 10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왔고, 은행장의 변경 여부와 관계없이 남녀별 합격자 비율 내지 인원수를 사전에 내정하고 차별적 기준을 적용하는 동일한 방식의 채용이 계속되었으므로, 은행장들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C 인사부 내부적으로 전승되어 온 지침에 의하여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으로 보이고, 임기가 수년에 불과한 은행장들의 의사결정이 거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 당심의 판단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다가,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피고인이 제출한 자료들을 보태어 추가로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까지 더하여 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되므로, 원심판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이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1) 아래와 같은 사실 또는 사정에 비추어 이 사건 공개채용 당시 C의 인사부 채용 담당자들은 각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된 남성 지원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형점수를 취득한 여성 지원자를 전형별 합격자에 선발하지 않는 등 사전에 정한 남녀 비율에 따라 신입직원 채용절차를 진행하였고, 이는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제1항을 위반하여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 과정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가) 형사재판에 있어서 이와 관련된 다른 형사사건의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는 것이나, 당해 형사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 내용에 비추어 관련 형사사건의 확정판결에서의 사실판단을 그대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이를 배척할 수 있다(대법원 2002.10.25. 선고 2002도3328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 공개채용 당시 인사부장으로서 공개채용 등 인사업무를 총괄하였던 D은, 서울서부지방법원 2018고단1160호로 이 사건 공개채용 과정에서 사전에 남녀 합격자 비율을 약 4:1로 정한 후 각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된 남성 지원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형 점수를 취득한 여성 지원자를 해당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하지 않는 등 성별을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에 있어 여성에게 불리한 조치를 하고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에서 남녀를 차별하였다는 남녀고용평등법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공소제기되었다(이하 ‘관련 형사사건’이라고 하고, 그중 남녀고용평등법위반의 공소사실을 이하 ‘관련 공소사실’이라고 하며, D에 대한 관련 공소사실은 사실상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 은행장인 피고인과 공모하였다는 부분을 제외한 것이나 다름없다). 관련 형사사건의 제1심은 2020.12.9. 관련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한편 업무방해의 공소사실 중 일부를 유죄로, 일부를 무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D과 검사가 서울서부지방법원 2020노1607호로 항소하였으며, 관련 형사사건의 제2심은 2022.2.14. 업무방해와 관련한 D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도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관련 공소사실에 관한 제1심의 유죄 판단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아래 생략>
이에 D과 검사가 대법원 2022도3393호로 상고하였으나, 2023.3.16. 위 각 상고가 모두 기각되었다(위와 같이 확정된 판결을 이하 ‘관련 형사확정판결’이라고 한다).
다) 그런데 D에 대한 관련 형사사건의 수소법원이 관련 형사확정판결에서 한 위와 같은 판단을 그대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볼만한 증거들이 원심 및 당심에 제출되었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 의하면 원심이 적절하게 판시한 바와 같이 관련 형사확정판결의 위와 같은 판단에 부합하는 사실관계가 확인된다.
라)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및 변호인은, 원심 및 당심에서 ‘기업전담 직무에 남성이 더 적합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으나,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의 그러한 인식은 해당 업무에 있어 성별 직무성과에 대하여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면밀한 분석 없이 일부 채용담당자들의 근무경험에서 형성된 주관적 인식으로 보일 뿐인바, 인사부 채용 담당자들의 위와 같은 주관적 인식을 이유로 이 사건 공개채용이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제1호 단서 가.목에서 정한 ‘직무의 성격에 비추어 특정 성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과 변호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그러나 한편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은행장인 피고인이 인사부 채용담당자들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공모하여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의 합리적 이유 없는 성별차별행위, 즉 남녀고용평등법위반 범행에 공범으로 가담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가) C의 직무전결 규정상 직원 채용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은행장이 행사하더라도, ‘채용계획의 수립’은 본부장에게 전결권이 있고, ‘채용전형의 주관’은 인사부장에게 전결권이 있는 데다가, 신입직원 채용 업무가 은행장의 업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극히 적었던 사실이 확인되므로, 은행장이 매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실시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신규직원 공개채용 중 특정 연도의 공개채용에 있어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이 성별로 차별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면서 관련 문서에 결재하는 방법으로 인사부 채용담당자들과 공모하여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범행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은행장이 해당 공개채용을 통한 성별 채용인원과 분포 등 채용계획의 세부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보고 받고 이를 지시한 사실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 의하여 증명될 필요가 있다.
나) 그런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 의하면, 은행장인 피고인이 최종 결재한 ‘2013년 하반기 정규직 신입직원 채용(안)’이라는 품의서에는 전체 채용인원(90명)만 기재되어 있을 뿐 성별 채용인원에 관한 아무런 기재도 없었던 반면, HR본부장 H이 전결권자로서 결재한 ‘2013년 하반기 C 인재채용 서류전형 합격자 확정 및 1차 면접 실시 (안)’, ‘2013년 하반기 C 인재채용 1차 면접 합격자 확정 및 합숙면접 실시(안)’, ‘2013년 하반기 C 인재채용 합숙면접 합격자 확정 및 임원면접 실시(안)’에만 비로소 성별로 전형별 합격자 수가 기재되어 있었다가, 피고인이 최종적으로 결재한 ‘2013년 하반기 인재채용(기업전담 및 글로벌 부분) 최종합격자 선발의 건’이라는 문건에 비로소 성별로 전형별 합격자 수와 최종 합격자 수가 기재된 사실이 확인된다.
다) 위 나)항의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은행장으로서 이 사건 공개채용 실시 전에 채용 예상인원 정도만 보고 받고 이를 승인 또는 지시하였다고 볼 수 있을 뿐이고, 인사부장 D, 인사팀장 F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 인사부 대리 G의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이 직접 은행장인 피고인에게 이 사건 공개채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며, 오히려 D, F, G과 H의 각 원심 법정진술에 의하면 정기적인 직원 신규채용에 관한 권한은 사실상 인사부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서 D 등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은 종전의 관행에 따라 사전에 성별로 채용인원을 차별하여 배정하는 방법으로 기업전담 직무 관련 직원 신규채용 절차를 진행하면서도 HR본부장인 H에게조차도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고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은행장인 피고인이 이 사건 공개채용 전에 또는 이 사건 공개채용 과정에서 HR본부장 H, 인사부장 D 등 해당 전결권자들을 비롯한 부하 직원들로부터 직접 자신이 전결권을 행사하지 않은 서류전형, BEI면접, 합숙면접, 임원면접 등 각 전형별로 남녀 지원자를 약 4:1의 비율로 미리 정하여 차별 선발하는 채용계획에 관하여 구체적인 보고를 받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이 사건 공개채용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인지한 후 관련 채용계획을 승인하거나 지시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라) 또한 위와 같이 본다면 피고인이 D 등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의 합리적 이유 없는 성별차별행위가 개재된 이 사건 공개채용 절차가 종료된 후 성별로 채용인원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2013년 하반기 인재채용(기업전담 및 글로벌 부분) 최종합격자 선발의 건’이라는 문서에 최종 결재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피고인이 D 등의 남녀고용법위반행위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이에 가담할 의사로써 위 문서를 결재하였다고 볼 수 없다.
4. 결 론
따라서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순형(재판장) 이주현 정문성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3.11. 선고 2019고정171 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
• 사 건 / 2019고정171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위반
• 피고인 / A
• 검사 / 김상균(기소), 이상돈(공판)
• 판결선고 / 2022.03.11.
<주 문>
피고인은 무죄.
<이 유>
1.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2.3.경부터 2014.11.경까지 서울 중구 B에 있는 ㈜C(이하 ‘C’이라 한다)의 은행장으로서 직원 채용 및 인사 등 은행업무 전반을 총괄하였다.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되고, 직종·직무별로 남녀를 분리하여 모집하거나 성별로 채용 예정인원을 배정함으로써 특정 직종·직무에 특정 성의 채용기회를 제한하여서는 아니 된다.
피고인은 2013년 하반기 C 신입직원 공개채용을 시작할 무렵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사부장인 D으로부터 C 전체 직원 중 남자 직원이 부족하여 향후 남성 위주로 신입직원을 뽑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함으로써 2013년 하반기 C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남성을 우대하기로 공모하였다.
피고인은 이러한 명시적·묵시적 공모에 따라 2013.9. 중순경 2013년 하반기 공개채용을 실시하기로 하는 ‘2013년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안)’ 품의문을 결재하고, D은 인사부 직원들에게 서류전형, BEI면접, 합숙면접, 임원면접 등 각 전형별로 남녀 지원자를 미리 정한 약 4:1의 비율에 따라 차별 선발하도록 지시하였다.
D과 인사부 직원들은 위 각 전형별 절차를 거쳐 최종 합격자 수를 총 123명으로 하되 미리 정한 남녀 직원 합격자 비율에 맞추어 남성 최종 합격자는 104명, 여성 최종 합격자는 19명(여성 합격자 비율 15.4%)으로 한다는 최종 품의문 결재를 올리고, 피고인은 위와 같은 현저히 불균형한 남녀 합격자 선정 결과에 관하여 은행장으로서 최종 결재를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D 등과 공모하여, 각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된 남성 지원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형 점수를 취득한 여성 지원자를 전형별 합격자에 선발하지 않는 등 사전에 정한 남녀 비율에 따라 신입직원 채용절차를 진행함으로써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 과정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였다.
2. 판단
가. 관련법리 및 쟁점정리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라 한다)은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면서(제7조제1항), ‘차별’을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제2조제1호 본문). 여기에서 말하는 ‘남녀의 차별’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차별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06.7.28. 선고 2006두3476 판결, 대법원 2019.10.31. 선고 2013두20011 판결 등 참조).
공모공동정범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2인 이상의 사람이 특정한 범죄행위를 하기 위하여 일체가 되어 서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공모를 하고 이에 따라 범행을 실행한 사실이 인정되어야 하는바, 여기서의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전체적인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하고, 이러한 공모가 이루어진 이상 실행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자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 형사적 책임을 부담하여야 하지만, 그 의사는 타인의 범행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아니하고 용인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공동의 의사로 특정한 범죄행위를 하기 위하여 일체가 되어 서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공모나 모의는 범죄사실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이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엄격한 증명에 의하여야 하므로, 피고인이 공모의 점과 함께 범의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은 사물의 성질상 범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를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
공모공동정범의 성립 여부는 범죄실현의 전과정을 통하여 각자의 지위와 역할, 공범에 대한 권유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종합하여 위와 같은 상호이용의 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하고, 그와 같은 입증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5.3.11. 선고 2002도5112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제1항을 위반하여 남녀를 차별하여 채용하였다는 남녀고용평등법위반죄가 성립하려면 그 채용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는 부당한 차별이 개재되었음을 인식하여야 하고, 이러한 인식 내지 범의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이하에서는 순차적으로, 2013년 하반기 C 신입직원 공개채용(이하 ‘이 사건 공개채용’이라 한다)의 과정 및 결과가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제1항을 위반한 차별 채용에 해당하는지, 만일 해당한다면 당시 은행장이었던 피고인에게 그러한 차별 채용에 관한 고의 및 공모가 인정되어 공동정범이 성립하는지 본다.
나. 이 사건 공개채용이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제1항을 위반한 차별 채용 해당 여부
기록 및 변론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공개채용이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관한 전형적인 고정관념에 근거한 정책에 의한 것으로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제1항을 반하는 차별 채용에 해당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사건 공개채용 당시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은, 사전에 남녀별 합격자 비율 내지 인원수를 개략적으로 내정한 후 성별로 지원자 군을 나누어 단계별로 전형을 진행하면서, 전체 지원자들의 남녀 성비는 비등하였음에도 첫 관문인 서류심사 전형 단계에서부터 남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자를 여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자보다 3~5배 정도 더 선정함으로써 다음 전형 단계에서 심사 대상이 되는 여성 지원자 군의 모수 자체를 대폭 줄였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여성 지원자 군의 내부 경쟁률이 남성 지원자 군의 내부 경쟁률보다 높고, 여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기준 점수 역시 남성 지원자 군에서의 합격기준 점수보다 현저히 상향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C은 E은행과 통합된 2015.9.경 이전까지는 기업전담 직무와 채널마케팅 직무로 직군을 나누어 이원화된 공개채용을 실시하면서, 기업전담 직무에 관한 공개채용에서는 남성 위주로, 채널마케팅 직무에 관한 공개채용에서는 여성 위주로 채용함으로써, 직군별로 특정 성에 편중되도록 성별을 차별하여 채용하였다. 이후 C이 E은행과 통합됨에 따라 직군을 이원화한 기존의 채용 방식이 폐기되고 직군을 통합한 채용 방식이 새로 채택되었음에도,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은 여전히 지원자들을 성별로 나누어 심사하면서 최종적으로 남성 합격자가 여성 합격자의 약 4~5배에 이르도록 합격기준 및 합격인원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였다.
C의 고용 현황상 직무별로는 기업전담에 비하여 채널마케팅에 편중된, 성별로는 남성에 비하여 여성에 편중된 고용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기는 하나, 이는 그간 C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을 채용하는 기업전담 직군에서는 남성을,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을 채용하는 채널마케팅 직군에서는 여성을 우대한 기존의 채용 방식에 기인하는 것일 뿐인바, 이 사건 공개채용에서 남성 위주로 채용하는 것이 성별 비중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부득이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또한 인사부 채용담당자들이 남성 우대 채용의 근거로 든, 기업전담 직무에 남성이 더 적합하다는 취지의 주장은,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발로하는 것일 뿐 이를 실증할 만한 근거가 없는바, 이를 이유로 이 사건 공개채용이 이른바 이유 있는 차별에 해당한다는 변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한편 이 사건 공개채용 당시 인사부장으로서 공개채용 등 인사업무를 총괄하였던 D은, 위 공개채용 과정에서 사전에 남녀 합격자 비율을 약 4:1로 정한 후 각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된 남성 지원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형 점수를 취득한 여성 지원자를 해당 전형별 합격자로 선정하지 않는 등 성별을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에 있어 여성에게 불리한 조치를 하고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에서 남녀를 차별하였다는 남녀고용평등법위반의 점으로 공소 제기되어 관련사건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위 사건에 관하여 현재 상고심 계속 중이다.
다. 공동정범의 성립 여부에 관한 판단
기록 및 변론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성별 편중 현상 등 인력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외부에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위와 같은 정도의 의사표명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채용에 관한 인식 및 고의를 구성하기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바, 피고인에 대하여 공동정범이 성립된다고 볼 수 없다.
2011.1.경부터 2015.12.경까지 C 인사부장으로서 인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였던 D은, 피고인 등 역대 C장들(이하 ‘피고인 등’이라 한다)을 비롯한 C 임원진 사이에 ‘남성 인원이 많이 부족하니 남성을 더 많이 채용하여야 한다’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있었다고 진술하는 한편, 피고인 등이 D에게 ‘전체적인 인원비가 남성이 많이 부족하니 남성을 많이 뽑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거나, D이 피고인 등에게 ‘남성을 많이 채용하여야 한다’고 보고하면 피고인 등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고도 진술한바, 이로써 피고인이 인사에 관한 의사결정권자의 지위에서 성비 불균형 해소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위반죄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 채용이 인정되려면, 단순히 특정 성이 더 많이 채용되었다는 결과값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같은 결과가 지원자들의 성별로 차별적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도출되었다는 과정 내지 수단까지 개재되어야 할 것인데, 피고인이 성별로 군을 나누어 합격기준을 달리하는 채용 방식을 보고받은 적이 있다는 등 차별 채용의 구체적인 과정이나 수단까지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검사는 ‘남성 위주 채용’에 관한 계획이 기재된 채용안 등이 피고인 등에게 보고되었음이 틀림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위와 같은 C의 채용 방식은 기록 및 변론에 의하여 확인되는 바에 의하더라도 적어도 10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왔고, 은행장의 변경 여부와 관계없이 남녀별 합격자 비율 내지 인원수를 사전에 내정하고 차별적 기준을 적용하는 동일한 방식의 채용이 계속된바, 은행장들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C 인사부 내부적으로 전승되어 온 지침에 의하여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으로 보이고, 임기가 수년에 불과한 은행장들의 의사결정이 거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3.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되, 피고인이 무죄판결공시 취지의 선고에 동의하지 아니하므로 형법 제58조제2항 단서에 따라 무죄판결공시의 취지는 선고하지 아니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박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