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소정의 ‘도주’의 의미

[2]사고 후 현장을 이탈한 것이 다시 음주를 함으로써 음주운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도주의 범의를 인정하지 아니한 원심판결을 제반 사정에 비추어 도주차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을 위배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1]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소정의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때’라 함은 사고 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반드시 확정적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하면 족한 것이다.

[2]사고 후 현장을 이탈한 것이 다시 음주를 함으로써 음주운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도주의 범의를 인정하지 아니한 원심판결을 제반 사정에 비추어 도주차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을 위배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

 

◆ 대법원 2001.01.05. 선고 2000도2563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도로교통법위반(음주측정거부)·도로교통법위반]

♣ 피고인 / 피고인

♣ 상고인 / 검사

♣ 원심판결 / 수원지법 2000.5.22. 선고 2000노 1219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내용

 

피고인은, ① 2000.1.24. 10:40경 술에 취한 상태에서 소나타 승용차를 운전하여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소재 병점육교 앞 도로를 안용 쪽에서 병점사거리 쪽으로 진행함에 있어서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피고 조향 및 제동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하여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한 채 운전한 과실로, 전방에서 신호대기로 정차중인 피해자 이◌진 운전의 포터 화물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아, 그 충격으로 위 화물차가 밀리면서 그 앞에 정차중인 피해자 양◌두 운전의 그랜저 승용차의 뒷부분을 들이받고, 그 충격으로 위 그랜저 승용차가 다시 밀리면서 그 앞에 정차중인 피해자 이◌임 운전의 크레도스 승용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음으로써, 피해자 이◌진으로 하여금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뇌진탕 등의, 피해자 이◌임으로 하여금 약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부염좌 등의 각 상해를 입게 함과 동시에, 피해자 이◌진 소유의 위 화물차를 수리비로 금 2,955,000원이, 공소외 ◌◌화학 주식회사 소유의 위 그랜저 승용차를 수리비로 금 1,300,500원이, 피해자 이◌임 소유의 위 크레도스 승용차를 수리비로 금 845,950원이 각 소요될 정도로 각 손괴하고도, 즉시 정차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도주하고, ② 같은 날 12:27경 화성경찰서 교통지도계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동행된 피고인의 안면이 상기되어 있고 술냄새가 나는 등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음주측정을 요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2. 제1심과 원심의 판단

 

제1심판결에 의하면, 제1심은 그 내세운 증거들에 의하여 위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하였다.

 

그러나 원심판결에 의하면 원심은, 위 ① 공소사실 중 치상 후 도주의 점에 대하여, 피고인의 경찰, 검찰 및 제1심 법정에서의 진술, 이◌진의 경찰, 검찰에서의 진술, 이◌임과 전기식의 경찰에서의 진술, 양◌두 작성의 진술서의 기재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전날 23:00경 소주 1병을 마신 후 승용차 안에서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위 승용차를 운전하여 집이 있는 성남시로 가다가 이 사건 사고 장소에 이르기 전 피고인의 승용차가 그 후방에서 오던 승용차에 추돌을 당하여 피고인의 승용차 뒷부분이 부서지는 사고가 있었던 사실, 위 사고를 수습한 피고인은 다시 이 사건 사고 지점으로 진행하다가 전방주시를 태만히 한 잘못으로 앞서 신호대기로 정차중인 피해자 이◌진 운전의 포터 화물차를 추돌하고, 그 충격으로 위 화물차가 밀리면서 앞서 정차하고 있던 피해자 양◌두 운전의 그랜저 승용차, 피해자 이◌임 운전의 크레도스 승용차를 연쇄적으로 충돌한 사실, 그러자 이◌진이 먼저 피고인에게 다가와 “뭐하는 짓이냐”라고 큰소리를 쳤고 곧 이어 다른 피해자들도 차에서 내려 피고인에게 다가왔고 피해자들에게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던 사실, 당시 피고인의 입에서 술냄새가 나자 피해자 중 성명 불상자가 “술먹었구먼”이라고 말한 사실, 피고인은 피해자들과의 시비 도중 전날 먹은 술로 인하여 음주운전이 들통날까 두려워 피고인의 승용차를 사고 현장에 그대로 둔 채 이 사건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50m 정도 떨어진 슈퍼마켓으로 가서 약 10분 정도에 걸쳐 소주를 맥주잔으로 1잔 정도 마시고 다시 사고장소로 돌아온 사실, 피고인의 승용차 안에는 피고인의 지갑,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이 그대로 있었던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사실들을 모아보면, 피고인이 비록 이 사건 사고를 야기한 후 피해자들을 구호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현장을 이탈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전날 마신 음주로 인하여 가중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근처 가게에서 다시 음주를 함으로써 음주운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피고인이 그와 같은 목적으로 음주를 한 후에는 곧바로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 온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음주 목적으로 사고 현장을 이탈할 당시에 위와 같은 도주의 범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밖에 검사의 모든 입증에 의하여도 피고인이 사고 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려는 도주의 범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원심은 직권으로 제1심판결을 파기한 다음, 위 ① 공소사실 중 손괴 후 미조치의 점과 위 ② 공소사실을 각 유죄로 인정하고 경합범가중을 하여 피고인을 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에 처함과 동시에 위 ① 공소사실 중 치상 후 도주의 점에 포함되어 있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의 점에 대하여는 피고인의 승용차가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한 공소를 기각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소정의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때’라 함은 사고 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대법원 1994.10.21. 선고 94도2204 판결, 1996.4.9. 선고 96도252 판결, 1996.8.20. 선고 96도1415 판결, 1996.12.6. 선고 96도2407 판결 등 참조), 여기에서 말하는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반드시 확정적임을 요하지 아니하고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하면 족한 것이다(대법원 2000.3.28. 선고 99도5023 판결 등 참조).

 

나. 그런데 기록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이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할 것인바,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원심이 내세운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직후 사고 승용차의 운전석에 앉은 채로 피고인에게 다가온 피해자 이◌진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곧바로 사고 현장을 이탈하여 사고 현장에서는 보이지도 아니하는 위 슈퍼마켓으로 갔는바, 당시 피고인의 승용차는 강력한 충격으로 말미암아 폐차 지경에 이를 정도로 손괴되어 엔진 부분에서 연기가 나오고 바로 불꽃이 났으며 승용차 전면 하반부에서 윤활유가 나와 길바닥에 흐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차량도 그 파손의 정도가 매우 심하였고, 이에 따라 피해자 이◌진과 이◌임은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상해를 입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들이 사상을 당하였으리라는 사정이나 당시의 현장 상황이 매우 급박하였다는 사정을 능히 알았다고 할 것이므로, 마땅히 도로교통법 제50조제1항에 의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어야 하고,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에는 원심의 설시와 같이 이 사건 사고 당시에 피해자들에게 특별한 외상이 없었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이러한 의무가 면하여 질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며, 나아가 피고인이 음주운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다시 음주를 하였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를 내세워 피고인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소정의 도주의 범의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위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위와 같이 사고 현장을 이탈함에 있어서 스스로 피해자에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알려준 바가 전혀 없으며, 심지어는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 온 후에도 피고인의 승용차가 추돌을 당한 사실을 들먹이면서 자신이 이 사건 사고의 야기자가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피고인이 당한 종전의 추돌 사고를 우연히 목격한 바 있었던 피해자 이◌진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고인이 말하는 사고는 이 사건 사고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의 야기자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이미 출동한 119대원과 경찰은 이 사건 사고를 수습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피고인이 위와 같은 음주 후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쉽게 알 수 없는 상태는 여전히 계속되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고인의 승용차 안에 피고인의 지갑,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이 그대로 있었다고 하여(그것도 피고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달리 볼 것도 아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은 제1심 법정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하여 제1심 법원은 간이공판절차에 의하여 심판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였고, 피고인은 이러한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함에 있어서도 그 항소이유로 심신장애 주장과 양형부당 주장만을 내세웠던 것인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를 들어 피고인에게 도주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필경 도주차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다. 따라서, 원심판결 중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3 제1항 위반죄에 대한 무죄 부분은 파기를 면하지 못할 것인바, 원심이 공소를 기각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의 점은 위 죄에 포함되어 있고,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위 ① 공소사실 중 손괴 후 미조치의 점은 위 죄와 상상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으므로, 이 부분 역시 파기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이 사건에서 검사는 유죄 이외의 부분에 대하여만 상고를 제기하였고,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위 ② 공소사실은 위 죄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지만, 원심이 이를 위 ① 공소사실 중 손괴 후 미조치의 점과 경합범 처리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한 이상에는 위 ② 공소사실에 관한 도로교통법위반죄에 대한 형만을 분리하여 이 부분 원심판결이 별도로 확정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모두 파기되어야 할 것이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조무제(재판장) 이용우 강신욱(주심) 이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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