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혈하지 않겠다는 환자의 명시적 의사가 존재하여 수혈하지 않음을 전제로 환자의 승낙(동의)를 받아 수술하였는데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태에 이른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

[2]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유효하기 위한 전제조건

[3] 수혈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술하는 경우에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

 

<판결요지>

환자의 명시적인 수혈 거부 의사가 존재하여 수혈하지 아니함을 전제로 환자의 승낙(동의)을 받아 수술하였는데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태에 이른 경우에, 환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혈 방법의 선택을 고려함이 원칙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때에는 이를 고려하여 진료행위를 하여야 한다.

어느 경우에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될 것인지는 환자의 나이, 지적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수혈 거부 의사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확고한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및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 대법원 2014.06.26. 선고 2009도14407 판결 [업무상과실치사]

♣ 피 고 인 / 피고인

♣ 상 고 인 / 검사

♣ 원심판결 / 광주지방법원 2009.12.2. 선고 2009노1622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상고보충이유서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수술과정에서의 수혈 거부에 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사의 진료상의 주의의무에 관하여 본다.

 

가. 진료계약에 따른 진료의무의 내용

환자가 의사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의사가 그 요청에 응하여 치료행위를 개시하는 경우에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진료계약이 성립된다. 진료계약에 따라 의사는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하여 모든 의료지식과 의료기술을 동원하여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의무를 부담하며 이에 대하여 환자 측은 보수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

질병의 진행과 환자 상태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가변적인 의료의 성질로 인하여, 계약 당시에는 진료의 내용 및 범위가 개괄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이후 질병의 확인, 환자의 상태와 자연적 변화, 진료행위에 의한 생체반응 등(이하 ‘환자의 건강상태 등’이라 한다)에 따라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이 구체화되므로, 의사는 환자의 건강상태 등과 당시의 의료수준 그리고 자기의 지식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진다(대법원 1992.5.12. 선고 91다23707 판결, 대법원 2007.5.31. 선고 2005다5867 판결 등 참조).

그렇지만 환자의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진료행위를 하는 경우에 의사는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진료행위를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그 진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대법원 1994.4.15. 선고 92다25885 판결, 대법원 2002.10.25. 선고 2002다48443 판결 등 참조). 환자의 동의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서 환자는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진료행위를 선택하게 되므로, 진료계약에 의하여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은 의사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에 의하여 구체화된다고 할 수 있다.

 

나. 진료의 선택 및 거부와 그 제한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 및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진료계약의 본질에 비추어 강제진료를 받아야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는 자유로이 진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체결된 진료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민법 제689조제1항). 그리고 진료계약을 유지하는 경우에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는 제공되는 구체적인 진료행위의 내용을 선택하고 그 내용의 변경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며, 원칙적으로 의사는 이를 받아들이고 환자의 요구에 상응한 다른 적절한 진료방법이 있는지를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생명은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 할 것이고, 의사는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하는 사명을 가지고 의료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며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므로, 의사로서는 환자가 요구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하거나 환자의 생명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구체적인 진료행위를 진료방법에서 제외할 것인지에 대하여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5.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수혈 거부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구체적인 진료행위가 그 진료 개시에 앞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치료방법에서 배제되어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는 그 진료행위를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인간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고 있고, 여기에 자살관여죄를 처벌하는 우리 형법의 태도와 생명 보존 및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취지 등을 보태어 보면, 회복가능성이 높은 응급의료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된 치료방법을 회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가장 본질적인 권리이므로, 특정한 치료방법을 거부하는 것이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침해될 제3자의 이익이 없고, 그러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는 헌법적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이러한 자기결정권에 의한 환자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환자의 명시적인 수혈 거부 의사가 존재하여 수혈하지 아니함을 전제로 환자의 승낙(동의)을 받아 수술하였는데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태에 이른 경우에, 환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혈 방법의 선택을 고려함이 원칙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때에는 이를 고려하여 진료행위를 하여야 한다.

어느 경우에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될 것인지는 환자의 나이, 지적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수혈 거부 의사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확고한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및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라. 수혈 거부에 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의 전제 및 의사의 주의의무

그렇지만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환자가 거부하는 치료방법, 즉 수혈 및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방법의 가능성과 안정성 등에 관한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과 이에 따른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어떠한 하자도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환자는 치료행위 과정에서의 수혈의 필요성 내지 수혈을 하지 아니할 경우에 야기될 수 있는 생명 등에 대한 위험성, 수혈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 방법의 효용성 및 한계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러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한 후 진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 설명 및 자기결정권 행사 과정에서 예상한 범위 내의 상황이 발생되어야 하며, 또한 의사는 실제로 발생된 그 상황 아래에서 환자가 수혈 거부를 철회할 의사가 없는지 재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의사는 수술과정 등에서 발생되는 출혈로 인하여 환자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환자에게 수혈하는 것이 통상적인 진료방법이고 또한 수혈을 통하여 출혈로 인한 사망의 위험을 상당한 정도로 낮출 수 있음에도 환자의 의사결정에 따라 그 수혈을 포기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술 방법을 택하는 것인데, 그 대체 수술 방법이 수혈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출혈 방지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만큼 수술과정에서 환자가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에 이를 위험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관하여 통상적인 경우보다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과연 수술을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방법인지 신중히 판단할 주의의무가 있다. 그리고 수술을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수혈 대체의료 방법과 함께 그 당시의 의료 수준에 따라 출혈로 인한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사전준비나 시술방법을 시행함으로써 위와 같은 위험 발생 가능성을 줄이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또한 수술 과정에서 예상과 달리 다량의 출혈이 발생될 수 있는 사정이 드러남으로써 위와 같은 위험 발생 가능성이 현실화되었다면 과연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계속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방법인지 다시 판단하여야 한다. 환자가 수혈 대체 의료 방법을 선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생명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전제 내지 기대 아래에서의 결정일 가능성이 크므로, 위험 발생 가능성이 현실화된 상태에서 그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계속하는 것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진료라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2. 가. 원심이 인정한 이 사건 수술 전 상황 및 수술의 진행 경과에 관한 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망 공소외 1(1945년생으로 이 사건 당시 62세이다.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1975년 경 우측 고관절 부위에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수술을 받았는데,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된 부위에서 통증 등이 있자 우측 고관절을 인공고관절로 바꾸는 수술을 받기를 원하였다.

망인은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이하 이를 ‘타가수혈’이라 한다) 받지 않는 방식(이하 이를 ‘무수혈 방식’이라 한다)으로 시술되는 수술을 받고자 2007.12. 초순경 ○○○○○병원에 와서 위 병원 소속 정형외과 의사인 피고인에게 문의하였는데, 피고인은 전반적인 검사와 혈액종양내과의 답변을 확인한 후 망인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해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망인에게 무수혈 방식의 수술이 가능하지만 수술 상황에 따라서는 수혈을 하지 아니하면 출혈로 인하여 사망에 이를 위험성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망인은 ‘여호와 증인’ 신도로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를 생명보다 소중히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망인이 속한 종교단체에서 역사적으로 인정되어 온 교리이다.

망인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혈을 하지 말 것을 피고인에게 요구하였고, 2007.12.17. 위 병원에, “치료에 있어 전혈수혈이나 성분수혈을 전적으로 금해 주실 것을 본 각서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 담당 의료진은 치료 도중 전혈이나 혈액성분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다는 본인의 의지는 확고하며, 설사 환자가 무의식이 되더라도 이 방침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분으로, 관련된 문제를 심사숙고한 후 본 의료적/종교적 각서를 작성합니다. 본인의 이러한 방침을 따름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모든 피해에 대하여 본인은 병(의)원 및 담당 의료진에게 민․형사상의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라고 기재된 책임면제각서를 제출함으로써, 타가수혈을 거부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였다.

○○○○○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인 공소외 2는, 수술 전날인 2007.12.19. 망인과 망인의 딸을 만나 수술 도중 대량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경우 타가수혈을 하지 않으면 장기손상 및 부전에 의한 사망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설명을 하였고, 2007.12.20. 수술 시작 직전에 다시 망인에게 타가수혈을 거부하는 의사가 유효한지 확인하였으나, 망인은 여전히 타가수혈을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피고인은 망인의 요구에 따라 무수혈 방식으로 수술하던 도중 과다출혈로 인하여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여 지혈이 되지 않고 타가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자, 정형외과 전문의 공소외 3으로 하여금 수술실 밖으로 나가 망인의 가족들에게 망인의 상태를 설명한 후 타가수혈을 할 것인지 여부를 묻도록 하였는데, 망인의 남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으므로 타가수혈을 거부한 반면 망인의 자녀들은 타가수혈을 강력히 원하는 등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타가수혈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의료진을 통해 ‘여호와의 증인’ 교섭위원회에 이 사건과 관련된 자문을 급하게 요청하였으나 별다른 답신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는 중에도 망인의 출혈이 계속되어 피고인은 수술을 중단한 후 망인을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 후 망인의 남편도 타가수혈에 동의함으로써 가족들 전부가 타가수혈을 원하였으나, 당시는 폐울혈 및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상태라 타가수혈이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병원 측에서는 망인에게 타가수혈을 시행하지 아니하였고, 망인은 결국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하였다.

 

나. 나아가 원심은, 위 인정사실들과 아울러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① 망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타인의 피를 받는 행위를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었고, ② 망인은 오래전 받은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상당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일상생활에도 상당한 지장을 겪고 있었기에 인공고관절치환술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으며, ③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 다른 3개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수술 도중 상당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 무수혈 방식의 수술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고지 받았고, ④ ○○○○○병원에서 무수혈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위 병원에 찾아갔는데, 피고인으로부터 진료를 받는 과정 및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수술도중 출혈 발생 가능성 및 그로 인한 위험성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고지를 받았으며, ⑤ 망인의 딸은 망인이 무수혈 방식의 수술을 받는 것을 반대하여 망인을 설득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망인은 결국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무수혈 방식의 수술을 결정하였고(망인의 딸이 수술 전 의료진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타가수혈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더라도 이미 망인의 의사가 명확하였고, 자기결정권의 취지와 그 일신전속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망인의 의사가 번복된다고 보기 어렵다), ⑥ 이 사건 수술과정에서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피고인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거나 망인이 미리 고려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⑦ 어떤 의미에서는 심각한 출혈 자체와 그로 인한 사망의 결과도 망인이 이 사건 수술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하고 있었고, 이를 종교적인 이유에서 전부 감내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사정들이 인정되므로, 이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망인의 치료방법 선택에 따라 수술과정에서 타가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 업무상과실치사 공소사실이 범죄의 증명이 없거나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3. 이러한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을 비롯한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판단된다.

 

가. 앞서 본 것과 같이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생명과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원심의 판단 이유 중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의사의 일반적인 의무, 즉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에 기초를 두고 있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의무 등과 직접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의사의 의무보다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시한 부분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나. 그러나 위에서 본 원심 판단의 논거는 대체로 앞에서 살펴본 수혈 거부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따른 의사의 진료의무에 관한 법리에 상응하는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또한 원심이 인정한 피고인의 무수혈 방식의 수술 및 그 위험성에 관한 수술 전의 설명 내용, 망인의 나이, 가족관계, 망인이 이 사건 수술에 이르게 된 경위, 망인이 타가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 수혈 거부에 대한 망인의 확고한 종교적 신념, 책임면제각서를 통한 망인의 진지한 의사결정, 수술 도중 타가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가족 등의 의사 재확인 등에 관한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에서는 망인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타가수혈하지 아니한 사정만을 가지고 피고인이 의사로서 진료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다고 할 수 없다.

 

다. 따라서 피고인이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망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망인에게 타가수혈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인공고관절 수술을 시행한 행위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치사에 관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4. 한편 검사는 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상고보충이유서를 통하여, 피고인이 무수혈 방식에 의하여 망인을 수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에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원심의 판단을 다투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상고이유로 주장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관한 법리 오해와는 다른 사유로서 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새로운 상고이유이므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고, 또한 직권으로 심판할 사유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결국 무수혈 방식에 의한 수술 가능성에 관한 피고인의 판단에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상고심의 심판 대상이 되지 못한다.

 

5.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대법관 신영철(재판장) 이상훈 김용덕(주심)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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