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근로자가 요양으로 인하여 취업하지 못한 기간의 휴업급여를 청구한 경우, 그 휴업급여청구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다수의견](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그 채권자들 중 일부가 이미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나) 근로자가 입은 부상이나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요양급여 신청의 승인, 휴업급여청구권의 발생 여부가 차례로 결정되고,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의 적법 여부는 사실상 근로자의 휴업급여청구권 발생의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근로자가 요양불승인에 대한 취소소송의 판결확정시까지 근로복지공단에 휴업급여를 청구하지 않았던 것은 이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근로복지공단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대법관 양승태의 반대의견](가) 신의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이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당연히 입법 과정에서도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그러한 입법 과정을 거친 실정법의 개별적 조항에 의해 명백히 인정되는 권리 의무의 내용을 위 원칙을 이유로 쉽게 변경하는 것은 심각한 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하여 법의 권위와 법적 안정성에 대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신의칙의 직접 적용에 의해 실정법의 운용을 사실상 수정하는 기능은, 비록 그 목적이 성문법의 무차별적이고 기계적인 적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하여도 형평의 원칙상 신의칙의 적용이 불가피하고 법의 정신이나 입법자의 결단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나) 근로자가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해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별도로 휴업급여청구를 하지 않은 것은, 요양승인 없이는 휴업급여청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오인하였거나 요양급여청구권과 휴업급여청구권은 별개의 청구권으로서 소멸시효가 각별로 진행한다는 법리를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므로, 이와 같은 ‘법의 부지’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 대법원 2008.09.18. 선고 2007두2173 전원합의체 판결[휴업급여부지급처분취소]

♣ 원고, 피상고인 / 원고

♣ 피고, 상고인 / 근로복지공단

♣ 원심판결 / 서울고법 2006.12.20. 선고 2006누12922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제1심은 그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종래 피고는 근로자의 요양급여 신청이 승인된 경우에 한하여 휴업급여를 지급하여 왔고 요양급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휴업급여 청구를 받아들인 적이 없는 점, 이에 원고는 휴업급여를 청구하더라도 지급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의 판결확정시까지 별도로 피고에게 휴업급여를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상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요양급여 신청의 승인 여부, 요양급여의 지급 및 휴업급여청구권의 발생 여부가 차례로 결정되므로 피고의 요양불승인처분의 적법 여부는 원고의 휴업급여청구권 발생의 사실상 전제가 되는 점, 원고는 2001.7.22. 이 사건 상병을 입고 2001.8.13.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는데 2001.9.25. 피고로부터 요양불승인처분을 받자 그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 후 2005.6.16.에 이르러서야 원고 승소의 확정판결을 받은 다음 곧바로 2005.7.21. 이 사건 휴업급여를 청구하였으므로 위 쟁송기간을 제외하면 원고가 3년의 소멸시효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다하였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휴업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2.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그 채권자들 중 일부가 이미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4.12.9. 선고 93다27604 판결, 대법원 1999.12.7. 선고 98다42929 판결, 대법원 2002.10.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07.4.11. 법률 제8373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40조제1항은, 요양급여는 업무상의 사유에 의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근로자에게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41조제1항은 휴업급여는 업무상의 사유에 의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근로자에게 요양으로 인하여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하여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근로자가 입은 부상이나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요양급여 신청의 승인 여부 및 휴업급여청구권의 발생 여부가 차례로 결정되고,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의 적법 여부는 사실상 근로자의 휴업급여청구권 발생의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점,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한 경우에 한하여 휴업급여를 지급하여 왔고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 점, 그러므로 요양급여의 신청이 승인되지 않은 경우에는 휴업급여를 청구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에 의하여 거절될 것이 명백하여 요양불승인처분을 받은 근로자로서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휴업급여를 청구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에서 비록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원고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바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한 취소판결을 받기 전에는 휴업급여를 청구하더라도 휴업급여가 지급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의 판결확정시까지 별도로 피고에게 휴업급여를 청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바, 이와 같은 상황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채권자가 권리행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원고에게는 객관적으로 이 사건 휴업급여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러한 경우까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아 이 사건 처분을 위법하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옳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소멸시효의 항변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이 사건과 동일한 사안에서 휴업급여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대법원 2006.2.23. 선고 2005두13384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

 

3.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양승태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4. 대법관 양승태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법은 그 통칙에서 신의성실과 권리남용의 금지를 기본적인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으므로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그러한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 함은 민법상 당연한 법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칙 등에 관한 조항은 그 개념이 추상적, 유동적이고 관념적인 일반조항으로서, 이와 같은 일반조항에 대하여는 자칫 확연한 이유를 대기 어려운 어떤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의적인 이론, 즉 ‘일반조항에의 도피’ 현상으로 흐를 위험이 있음이 항상 지적되고 있다. 또한, 신의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이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당연히 입법 과정에서도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러한 입법과정을 거친 실정법의 개별적 조항에 의해 명백히 인정되는 권리 의무의 내용을 위 원칙을 이유로 쉽게 변경하는 것은 심각한 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하여 법의 권위와 법적 안정성에 대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신의칙의 직접적 적용에 의해 실정법의 운용을 사실상 수정하는 기능은, 비록 그 목적이 성문법의 무차별적이고 기계적인 적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하여도, 형평의 원칙상 신의칙의 적용이 불가피하고 법의 정신이나 입법자의 결단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대법원도 이 점을 지적하여, 신의칙과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설시한 바 있고(대법원 2008.5.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또한 대법원은 그 동안 여러 판결을 통하여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권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하는 기준으로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경우,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은 경우 등을 비롯한 4가지 사유를 제시하여 왔는데, 그 중 실제로 신의칙에 근거하여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권 행사를 허용하지 않은 사례는 모두 그 사유의 발생에 있어 다소나마 채무자 측의 기여가 있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능히 수긍될 수 있는 사안에 한정된 것으로 분석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수의견에 의하면 이 사건의 경우 위의 4가지 사유 중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으므로 피고의 항변권 행사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본 견지에서 볼 때 이 사건에 나타난 사유만으로 과연 법률이 인정하는 소멸시효 제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신의칙의 법리에 부합되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이 사건은 원고가 입은 상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원·피고간의 이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피고가 근로자가 입은 상병이 업무상의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 요양급여나 휴업급여를 지급할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요양불승인처분을 하고 휴업급여청구도 거부함은 법률상 당연한 귀결로서 피고로서는 그와 달리 처리할 여지가 없다. 나아가 아무리 신의칙을 강조한다 하여도 피고에게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는 시효기간이 각별로 진행한다는 것을 안내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가 요양불승인처분을 한 다음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하거나 그 지급청구를 거부하는 것은 법에 의한 자연스러운 업무처리절차일 뿐 그러한 조치에 요양승인처분이 휴업급여의 전제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렇게 오인하도록 유발하는 내용이 있다고 볼 수는 없고, 원고가 잘못 생각한 데 대해 피고가 특별히 기여한 바가 없는 이상 그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칙이나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으며, 대법원도 2003.3.28. 선고 2002두11028 판결에서 같은 법리를 선언한 바 있다.

 

한편, 원고는 이 사건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해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별도로 휴업급여청구는 하지 않았는데, 이는 원고가 요양승인 없이는 휴업급여청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오인하였거나 요양급여청구권과 휴업급여청구권은 별개의 청구권으로서 소멸시효가 각별로 진행한다는 법리를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니, 결국은 ‘법의 부지’라는 원고의 주관적 사유로 인한 것임이 분명하고, 그러한 사유는 법률전문가에 대한 자문이나 공적 기관에의 질의 등을 통하여 쉽게 해소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아 채권자가 권리행사를 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행위자의 ‘법의 부지’는 그의 작위 또는 부작위를 정당화시키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 함은 널리 인정되는 법리로서, 대법원은 납세의무자의 세법에 대한 부지 또는 착오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두10780 판결 등 참조), 단순한 법률의 부지는 형법상 위법성 조각사유인 법률의 착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대법원 2006.4.28. 선고 2003도4128 판결 등 참조),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소멸시효에 있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대법원 2007.8.23. 선고 2007다28024, 28031 판결 등 참조) 등을 통해 이러한 법리를 받아들여 왔다.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이 설시하는 정도의 사유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권을 박탈한다면 결국, 주관적이고도 사실상의 장애에 불과한 ‘법의 부지’에 법률상의 장애와 동일한 효과를 인정하는 셈이 되어, 특별히 단기의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아니하고, 형평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아니하며, 법 해석의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종국적으로 신의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넓힘으로써 실정법이 인정한 제도를 너무나 쉽게 배제하는 결과가 되어, 향후 이러한 기조에 의한 신의칙 등의 적용이 계속된다면 법체계의 혼란과 법적 안정성의 훼손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대법원 2006.2.23. 선고 2005두13384 판결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고, 이와 결론을 달리하는 원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5. 대법관 고현철은 다음과 같이 다수의견을 보충하고자 한다.

 

반대의견은,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이 설시하는 정도의 사유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권을 박탈한다면 결국, 주관적이고도 사실상의 장애에 불과한 ‘법의 부지’에 법률상의 장애와 동일한 효과를 인정하는 셈이 되어, 특별히 단기의 소멸시효 제도를 두고 있는 법의 입법취지에 맞지 아니하고 형평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아니하며 법 해석의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 신의칙이나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실정법이 인정하는 제도를 너무나 쉽게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향후 이러한 기조에 의한 신의칙 등의 적용이 계속된다면 법체계의 혼란과 법적 안정성의 훼손이 야기될 위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멸시효 제도는 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 즉 권리 불행사의 상태가 계속된 경우에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그 권리를 소멸시켜 버리는 제도를 말한다.

 

그리고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이유는 첫째 입증곤란의 구제, 즉 일정한 사실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그동안에 진정한 권리관계에 대한 증거가 없어지기 쉬우므로 그 계속되어 온 사실상태를 그대로 진정한 권리관계로 인정함으로써 과거사실을 증명하는 곤란으로부터 채무자를 구제한다는 점, 둘째 권리행사의 해태에 대한 제재, 즉 오랫동안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채 방치한 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 등의 고려에 의하여 법률관계의 안정을 도모하고 증거보전의 곤란을 구제함으로써 분쟁을 적정하게 해결하는 데 있다.

 

그러나 소멸시효 제도의 위와 같은 취지나 존재이유에도 불구하고, 위 제도가 구체적인 사례에서 실질적 정의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법률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는 기존의 법리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채권자가 권리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는 상황에 있거나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유로 사실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경우까지 획일적으로 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아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은 채권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권리구제라는 사법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와 존재이유를 존중하면서도 일정한 경우 그 예외를 인정하여 왔다. 즉,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채권자가 권리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고 과실 없이 이를 알지 못한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청구권의 발생을 알 수 있게 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아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뒤로 늦추거나, 소멸시효의 중단을 폭넓게 인정하는 해석론을 채택하거나, 또는 다수의견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소멸시효 제도의 폐단을 완화하기 위하여 일정한 경우 소멸시효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음을 선언하여 왔는바, 이는 구체적 사안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형평과 실질적 정의를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하고도 합리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근로자가 요양급여청구권과 휴업급여청구권을 각기 별개로 청구할 수 있으므로 요양급여 신청의 승인 여부가 휴업급여 청구의 승인 여부의 법률상 전제가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위 두 보험급여청구권은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에 의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것을 공통의 요건으로 하고 있는 데다가, 기록에 의하면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질의응답란에 ‘산재가 발생한 경우 요양승인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요양승인을 받아야만 이후 제반절차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취지의 응답을 게시하는 등으로 근로자의 요양급여 신청을 받아들인 경우에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 요양급여 신청을 거부한 경우에는 휴업급여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을 가지고 있었던바,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해 보면 피고의 요양불승인처분의 적법 여부는 근로자의 휴업급여청구권 발생의 사실상 전제가 되고 있었다 할 것이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에 의하여 요양급여 신청이 거부된 근로자에게 이와 별도로 휴업급여까지 청구하기를 바라는 것은 근로자로 하여금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요양불승인처분을 받은 근로자가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오랫동안의 쟁송 끝에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다음 휴업급여를 청구하였다고 하여 이를 곧 근로자가 그 권리를 방치한 경우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반대의견은 이 사건에서 원고가 피고의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도 별도로 휴업급여를 청구하지 않았던 이유가, 원고가 요양급여 신청에 대한 승인 없이는 휴업급여를 청구할 수 없는 것으로 오인하였다거나 또는 요양급여청구권과 휴업급여청구권이 별개의 청구권으로 소멸시효가 각별로 진행된다는 법리를 알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보았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피고 스스로 상고이유서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신청하였으나 어떠한 이유로 피고로부터 요양불승인처분을 받은 경우에는 이와 별도로 휴업급여를 청구하더라도 그 청구가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던 관행이 있었고 원고가 그러한 관행의 존재를 믿었다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경우에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권 행사를 신의칙에 의하여 제한하려는 다수의견은 반대의견의 지적과 같이 신의칙이나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넓히거나 혹은 법체계의 혼란이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오히려 소멸시효 제도를 획일적으로 운용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폐단을 유효·적절하게 시정하여 실질적 정의와 국민의 권리구제를 도모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대법원장 이용훈(재판장) 대법관 고현철(주심) 김영란 양승태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 차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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